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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

" 창백한 푸른 점 ", from wikipedia.org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칼 세이건 언젠가 이 사진과 함께 칼 세이건의 코멘트를 접했을 때, 절로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저 작은 점 위에서 아옹다옹하는 것에 대한 덧없음, 앞으로 한동안도 우리에게 유일한 터전일 곳을 잘 지켜야겠다는 막연한 사명감 같은 것도 함께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더 이상 장수가 축복이 아닌 사회를 어떻게든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에게 저 작은 점은커녕 대한민국조차도 걱정하기에는 너무나 넓고, 나와 내 가족의 미래를 도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히 저 창백한 작은 점의 - 더 정확히는 그 위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 안녕은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토비 오드, " 사피엔스의 멸망 ", 커넥팅, 2021. 그 와중에 '사피엔스의 멸망'이라니, 복잡미묘한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때 걱정했던 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는 한편 이게 과연 내가 걱정할 일인가 하는 양가적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지난 2주가 평소보다 복잡한 문제들로 더 혼란스러웠던 반면 책에서는 인류가 우리 은하를 가득 채우는 미래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주선 속도가 광속의 1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새 터전을 닦는 데 1,000년이 걸리더라도, 지구가 더 이상 거주할 수 없게 되기 훨씬 전인 1억년 안에 은하 전체에 인간이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사피엔스의 멸망, p311. 제목이 '멸망'인데 왠 장밋및 '미래'냐고? 이게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다. '인류'가 - '인간'이 아니라 - 갖고 있는 잠재력이 어마어마하게 큰 만큼 그 잠재력을 없

느리게 인생 읽기

또 이런다. 처음 책을 읽을 때, 연신 '기가 막히네!'를 내뱉으며 온 페이지에 마구 밑줄을 그어대며 읽긴 하는데, 챕터 두 개 연달아 읽기가 어렵고 걸핏하면 핸드폰에 손이 가곤 했다. 입사하고 처음 연달아 일주일을 쉬는데 어디 여행도 안 가서, 에어컨 튼 거실 소파에 혼자 자리잡고 앉아 몇 시간씩 독서에 부을 수 없었다면 다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서평을 쓰려면 책을 훑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감을 잡아가야 되는데, 아니나다를까 온통 딴 생각 뿐이고 생각이 정리가 안 된다. 나름 한 해에 30권 이상씩은 책을 읽고 서평을 쓴지도 몇 년 되어서, 괜히 욕심 부리다 글이 산으로 가는 경우는 있어도 책을 읽는데 이렇게 산만해지는 경우는 없었는데 환장할 노릇이다. 앨자베스 스탠리, "최악을 극복하는 힘", 비잉, 2021. 문제의 책은 이런 예쁜 표지에 < 최악을 극복하는 힘 >이라는 다소 심각한 제목이 붙어 있는데, 원제는 < Widen the Window >, 즉 '창을 넓혀라'이다. 여기서 창이란 '인내의 창'으로, 스트레스를 다루면서 현실에 머물고 최적의 수행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이게 넓을수록 스트레스를 적절히 다루면서 그 에너지를 이용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고, 상황이 종료되고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회복할수록 이 창이 다시 넓어진다. 또 어린 시절 직계가족 외의 지인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적 학대, 스토킹, 수차례의 폭행, 강간을 당했는데 대부분 대학 입학 전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 최악을 극복하는 힘, p29. 스트레스만 얘기하면 별 것 아닌 느낌이지만 이 책은 스트레스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깊게 다루는데, 저자 소개를 보면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엄청난 일을 겪었다! 책에서 저자는 스스로 심각한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온갖 문제들로부터 스스로 회복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비슷한 일을 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