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칼 세이건
언젠가 이 사진과 함께 칼 세이건의 코멘트를 접했을 때, 절로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저 작은 점 위에서 아옹다옹하는 것에 대한 덧없음, 앞으로 한동안도 우리에게 유일한 터전일 곳을 잘 지켜야겠다는 막연한 사명감 같은 것도 함께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더 이상 장수가 축복이 아닌 사회를 어떻게든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에게 저 작은 점은커녕 대한민국조차도 걱정하기에는 너무나 넓고, 나와 내 가족의 미래를 도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히 저 창백한 작은 점의 - 더 정확히는 그 위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 안녕은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 와중에 '사피엔스의 멸망'이라니, 복잡미묘한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때 걱정했던 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는 한편 이게 과연 내가 걱정할 일인가 하는 양가적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지난 2주가 평소보다 복잡한 문제들로 더 혼란스러웠던 반면 책에서는 인류가 우리 은하를 가득 채우는 미래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주선 속도가 광속의 1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새 터전을 닦는 데 1,000년이 걸리더라도, 지구가 더 이상 거주할 수 없게 되기 훨씬 전인 1억년 안에 은하 전체에 인간이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사피엔스의 멸망, p311.
제목이 '멸망'인데 왠 장밋및 '미래'냐고? 이게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다. '인류'가 - '인간'이 아니라 - 갖고 있는 잠재력이 어마어마하게 큰 만큼 그 잠재력을 없애거나 심각하게 훼손하는 재앙을 막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그 방법을 숙고해야 한다는 것. 이 주장을 펼치기 위해 저자는 존재의 재앙과 위험을 정의하고, 존재 재앙을 몇 가지로 범주화하며, 각 범주의 존재 재앙이 향후 100년간 일어날 가능성을 추산하고, 이를 막기 위해 어떤 사업에 현 세대의 한정된 자원을 우선 투입해야 할지 제안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우리 세대의 행복보다 어떤 부분에서는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나는 딸이 태어나고 몇 달 뒤 내 부모님이 내게 얼마나 많은 걸 베풀었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 사피엔스의 멸망, p72.
그 주장의 한 조각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 아이(1세대 후손)의 가능성을 보존하고 잠재력을 개발해주기 위해 우리의 노후를 일정 부분 희생하는 것이나, 인류의 미래(수천~수만 세대 후손)의 잠재력을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 일부를 투입하는 것은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우리 부모에게 받은 것을 부모에게 보답하기보다는 아이에게 물려주는 것처럼, 지난 1만 세대에 걸쳐 우리의 조상들이 조금씩 쌓아 올린 문화, 제도, 관습, 지식, 기술, 부를 매 순간 누리는 우리가 이후 수십만 세대에 이를 넘겨주는 것 또한 자연스러우며, 인류의 장기적 잠재력이 훼손되는 재앙에 굴복하는 것은 미래 세대뿐 아니라 과거 세대에 대한 잘못이기도 하다.
이는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의 안녕이 멀리 있는 사람들의 안녕보다 본질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최소한 이성적으로는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말들이다. 당연히 우리는 예를 들어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혼란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우리 친구나 가족의 일처럼 생각하지 못하고, 불과 한 세대 전후의 인구집단과도 경제적 갈등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구조를 이성적으로나마 받아들일 수 있다면 행동의 한 켠에서라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존재 위험은 지혜, 의사 결정 능력, 국제 사회 협력의 전반적인 증진을 목표로 한 포괄적인 간섭으로도 줄일 수 있다."
- 사피엔스의 멸망, p247.
그리고 꼭 직접 대단한 문제를 해결해내지 않더라도 - 여전히 당면한 큰 존재 위험 요인을 줄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 개인의 차원에서도 존재 위험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혜'와 '의사 결정 능력'이 핵심이 아닐까. 직전에 읽은 책 <최악을 극복하는 힘>에서도 '지혜'와 '용기'를 강조하는데, 사실 이 책은 개인의 레벨에서 스트레스를 다루며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현재에 머무는 능력'으로써 이 두 자질을 말하는 것이지만, 존재 위험의 대처라는 관점에서도 이 두 자질은 동등하게 중요하다. 더 넓고 긴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뿐, 어떤 상황을 이해하는 지혜와 이 상황에 머무르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면 더 나은 의사결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우리가 정치 이슈를 판단하고 한 표를 던질 때 발휘될 수도 있을 것이고, 우리의 아이들을 더 지혜롭게 가르침으로써 발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공부하고 나누는 것이 전부다.
"문명을 건설한 수천억 과거인에게,
문명의 운명을 결정할 70억 동시대인에게,
존재가 벼랑에 서 있는 수조의 미래인에게."- 사피엔스의 멸망, 헌정사.
토비 오드의 <사피엔스의 멸망>은 나에게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큰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다. 읽는 내내 '나랑 상관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고 싶었'다는 것은 글에서도 고백한 바 있지만, 동시에 거대한 관점을 고민하고, 답 없어 보이는 문제를 정량화하고, 그 모든 위험을 헤쳐나갔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보면서 간만에 설레는 감정을 즐길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스펙트럼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이 책이 쓸데 없이 큰 문제를 얘기하는 불편한 책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외면하고 있던 큰 문제를 직시하는 계기가 되는 인상적인 책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 책이 담고 있는 윤리/철학적 논리의 흐름과 위험의 정량화 과정, 한정된 자원의 배분 문제는 한 번 따라가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라건데 10년 정도 뒤면 나와 내 가족의 미래에 대해 조금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때가 되면 나라도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조금은 더 기여할 수 있을텐데, 그 때가 될 때까지 자원봉사 형식으로 조금씩 더 기여를 해 보고 싶은 단체가 있는데, <칸 아카데미>이다. 지금까지 관심만 갖고 엄두는 못 내고 있었는데, 더 많은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도록 기여하는 것 자체가 인류의 존재 위험을 낮추는 포괄적 개입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더 욕심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https://support.khanacademy.org/hc/en-us/sections/200497594-Volunt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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