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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팽창하는 혁신 속의 과학과 예술

  가속팽창하는 우주 (from pixabay) "예술에서든, 과학에서든, 혼자서 하든, 팀을 이루어서 하든, 디테일과 씨름하며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은 솟구치는 상상력과 용기 있는 우상파괴적 행동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한 부분일 것이다." - 혁신의 뿌리, p10. 그렇다. 사실은 이게 전부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을 보면, 수상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예술 쪽의 취미를 함께 갖고 있는 비율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누군가는 이게 직관적이지 않다고 얘기하더라마는, 우리의 뇌에서 어떤 연결이 일어나면서 새로워 보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위해서는 적당한 휴식과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야기인데... 과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까? 혹은 예술적인 취미가 과학적인 성취에 주는 영향은 줄어들지는 않을까? 이언 블래치포드, 틸리 블라이스, " 혁신의 뿌리 ", 브론스테인, 2021. 사실 그럴 것이라는 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야 하는 점인 것 같은데, 거꾸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과 기술, 그에 수반한 산업의 발전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를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감만을 심어준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은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그 원리를 알지는 못했던 많은 자연현상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설명되는 것에 경탄했고, 그 존재조차 그려보지 못했던 수단을 통해 행동이나 사고의 반경이 확장되는 것에 열광했다. 이 시기의 과학은 모두가 보고 느낀 것을 하나하나 조악하게나마 설명해나가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예술은 과학이 탐구하는 영역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과학이 탐구하는 영역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138억 광년의 반경을 갖는 공간으로 확장됐고, 찰스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생물 다양성의 기본 메커니즘 단계로 깊어졌고, 양자역학으로 인해 우주의 기본입자를 찾아내는

힘센 개돼지들의 역사

  철거되는 로버트 E. 리 동상, 출처: npr.org "세상은 예산이 지배하는 법이다." 아마도 고등학생 시절에 읽은 수많은 판타지 소설 혹은 만화에서였을 것이다. 아직 머리가 굳기 전에 그저 '쿨'해보이면 좋구나 하던 많은 말 중 하나였을텐데, 그 와중에 이제와 돌이켜봐도 진실을 한 자락 품고 있나보다 하는 그런 말이다. 돈이란 뭐냐고 물으면 '가치의 측정 수단'이라고 답을 하겠지만, 측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환의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에 돈은 '가치의 저장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돈 자체를 가치로 혼동하기도 하는 게 아닐까. 어찌됐건, 사람이란 살아가기 위해 일정 수준의 자원을 필요로 한다. 그 자원은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며, 이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므로 누구의 생활도 돈의 지배 — 지배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면 영향 — 을 받는다고 얘기할 수 있다. 수렵채집인이 살아가던 세계에서, 돈은 자연이 만들어냈다. 자신과 가족, 혹은 무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돈 — 자원 — 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채집하고 소비하고 죽는 것이 그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농업혁명 — 유발 하라리가 얘기하는, 농경 — 이 발생하면서 사람은 땅으로부터 돈을 만들어내고 잉여 생산물이라는 형태로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업혁명은 인류를 더 번성하게 해 주었고 잉여 생산물로만 생활함으로써 문화와 과학을 발전시키는 엘리트 계층으 형성함으로써 과학혁명의 발판을 놨지만, 대부분의 농부는 더 고되게 일하고 더 적은 돈을 손에 쥐었으며, 질병에 더 취약해졌다. 이 시기의 돈은 땅이 만들어냈으므로 한정된 땅에서 나오는 돈 역시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한정된 돈의 생산이나 분배에 문제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만약 땅이 무한하다면? 누구든 자신의 땅을 찾아 충분한 돈을 생산해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한정된 땅에서 생산되는 돈이 삶을 영위하기에 부족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