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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개돼지들의 역사

 

철거되는 로버트 E. 리 동상, 출처: npr.org


"세상은 예산이 지배하는 법이다."

아마도 고등학생 시절에 읽은 수많은 판타지 소설 혹은 만화에서였을 것이다. 아직 머리가 굳기 전에 그저 '쿨'해보이면 좋구나 하던 많은 말 중 하나였을텐데, 그 와중에 이제와 돌이켜봐도 진실을 한 자락 품고 있나보다 하는 그런 말이다.

돈이란 뭐냐고 물으면 '가치의 측정 수단'이라고 답을 하겠지만, 측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환의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에 돈은 '가치의 저장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돈 자체를 가치로 혼동하기도 하는 게 아닐까. 어찌됐건, 사람이란 살아가기 위해 일정 수준의 자원을 필요로 한다. 그 자원은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며, 이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므로 누구의 생활도 돈의 지배 — 지배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면 영향 — 을 받는다고 얘기할 수 있다.

수렵채집인이 살아가던 세계에서, 돈은 자연이 만들어냈다. 자신과 가족, 혹은 무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돈 — 자원 — 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채집하고 소비하고 죽는 것이 그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농업혁명 — 유발 하라리가 얘기하는, 농경 — 이 발생하면서 사람은 땅으로부터 돈을 만들어내고 잉여 생산물이라는 형태로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업혁명은 인류를 더 번성하게 해 주었고 잉여 생산물로만 생활함으로써 문화와 과학을 발전시키는 엘리트 계층으 형성함으로써 과학혁명의 발판을 놨지만, 대부분의 농부는 더 고되게 일하고 더 적은 돈을 손에 쥐었으며, 질병에 더 취약해졌다. 이 시기의 돈은 땅이 만들어냈으므로 한정된 땅에서 나오는 돈 역시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한정된 돈의 생산이나 분배에 문제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만약 땅이 무한하다면? 누구든 자신의 땅을 찾아 충분한 돈을 생산해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한정된 땅에서 생산되는 돈이 삶을 영위하기에 부족해지면? 또 다른 땅을 찾아서 이주하면 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충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이주해서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사실은 부족하고, 내가 정착하고 싶은 땅에 원래 주인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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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그랜딘, "신화의 종말", 커넥팅, 2021.


"잭슨파에게는 이론 혹은 욕망을 행동으로 옮길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인디언을 제거하고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고 노예제도를 수호하고 확대하면 됐다."

- 신화의 종말, p86.

17세기(?) 영국령 식민지 아메리카의 정착민들이 찾은 답은 서부로의 확장이었다. 에팔레치아 산맥 동쪽의 대서양 연안에 갇혀 있던 그들은 미시시피 강 유역의 넓고 비옥한 땅을 원했고,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없는 사람 취급했으며, 이를 막는 영국 왕실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여 미국을 세웠고,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준주를 매입했으며, 확장에 물리적으로 방해가 되는 원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이들을 몰아냈고, 다시 멕시코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태평양까지 이르는 땅을 차지했고, 이 땅에 살던 멕시코인과 원주민 그리고 동부와 중부에서 밀려난 원주민들을 다시 몰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폭력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했다.


"자유의 무한한 이상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멕시코계 미국인, 멕시코인, 아메리카 원주민을 지배했기에 가능했을 뿐이다."

- 신화의 종말, p404.

이 과정에서 '주인 없는 미개척지'를 말하는 '변경'은 자연이 부여한 권리인 '자유'가 발현되는 곳이자 그 원천, 혹은 '자유 그 자체'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이 자유는 백인만의 자유였고,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멕시코인, 아프리카계 흑인의 자유는 아니었다. 즉, 미국의 백인들이 보기에 이들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거나, 올바르게 자유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신의 섭리를 저버렸기 때문에 착취당해도 무방한 존재들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구속에서 벗어날 자유였다. 노예 소유를 금지하는 구속에서, 남의 땅을 빼앗지 못하게 막는 구속에서, 서쪽으로의 이동을 가로막는 구속에서 벗어날 자유를 의미했다." 

- 신화의 종말, p144.

따라서 '무한한 변경'이 만들어내는 백인의 자유란 폭력과 착취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경쟁에서 뒤쳐진 이들이 변경에서 솟아난다는 자유 — 돈 — 를 찾아 그곳의 땅을 차지하려면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쫓아내야 하고, 차지한 땅을 일궈 자유 — 돈 — 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내려면 노예를 착취해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기존의 경쟁에서 앞서가며 잉여 자원 — 돈 — 을 축적한 자본가들은 한 발 이상 앞서 땅을 차지하고 더 많은 자원을 독식했다.


"그러나 미국은 위를 향해 — 귀족과 소유주를 상대로 — 계급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변경에서 외부로 인종 전쟁을 벌였다."

- 신화의 종말, p143.

기존의 경쟁 체제에서 뒤쳐진 가난하고 못 배운 백인들이 국가의 보호조차 받지 못해 더 약한 이들을 폭력으로 밀어내고 그 몫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무한한 변경의 환상은 증기기관의 안전밸브 역할을 훌륭하게 해 냈다. 땅과 땅에서 생산되는 돈이 한정되어 있던 유럽에서 계급 투쟁이 일어나고 혁명의 결과로 사회권이 확립되는 동안, 미국에서는 무한한 자유의 변경이라는 환상에 호도된 이들이 인종 전쟁을 벌인 것이다. <대중은 멍청한가?>에서 위고 메르시에는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유효할 때는 그 메시지가 대중의 이해관계에 부합할 때 뿐이라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미국의 역사는변경의 자유 토지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돈이라는 이해관계가 일치한 선동가와 힘센 개돼지들이 만들어온 폭력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미국의 국경은 국가 안보 문제가 아니라 '절망적인 빈곤과 막대한 부를 가르는 경계선'이었기 때문이다."

- 신화의 종말, p384.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더 이상 땅 자체가 돈의 원천이지도, 더 이상 원주민을 밀어내고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게 되자 이제는 시장이 미국의 변경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을 넘어 변경을 차지하는 것은 더 이상 가난한 저학력 백인들이 아니라 자본가들 뿐이다. 이 백인들이 가로막힌 멕시코 국경지대에서는 이들과, 자본가들이 개척하는 변경에서 땅과 경쟁력을 잃고 쫓겨난 경제적 난민들이 뒤섞인다. 이들은 결국 한정된 일자리 —이전에는 땅이던 것이 바뀐 — 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고,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큰 힘을 가진 백인들은 멕시코에서 넘어온 이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와 임금을 위협받고, 멕시코에서 넘어온 이주 노동자들은 이 백인들의 폭력에 위협받는다.

그렉 그렌딘의 <신화의 종말>은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무한한 자유를 약속하는 변경의 신화에 얼마나 기대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왜 그렇게 무수히 많은 전쟁을 수행했고, 왜 그렇게 많은 증오를 만들어냈으며, 왜 이제는 이 신화가 폐기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무려 퓰리쳐 상 수상작답게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내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이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비도덕적인 호도의 역사이기 때문에 읽는 내내 감정적으로는 제법 힘들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흔히 '좋다'고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자체인 미국의 역사에 어떤 신화적 바탕이 깔려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이 놓친 기회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 답을 알아내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인 것 같다 — 좋은 책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비틀린 독재국가와 마주하고, 자유주의 그 자체인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는 좋은 것, 사회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맹목이 형성된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고, 보수단체 집회에 왜 늘 성조기가 등장하는지 — 남부연합기가 등장하지 않는 게 어디냐 싶다, 그리고 그 모든 태도가 자유주의의 원조격인 미국의 역사에 비추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일 수 있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통일이 정말로 된다면, 북한의 좋은 땅을 싸고 빠르게 매수해서 부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우리도, 변경을 개척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백인 정착민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겠다.

어떠한 폭력도 없이 생각의 변경을 크게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는 아주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티모시 와인가드의 <모기>, 도리스 컨스 굿윈의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과 함께 읽으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콜롬부스의 교환이 일으킨 영향, 그리고 시어도어 루즈벨트,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린든 존슨에 대한 극명히 갈리는 평가를 통해 더 재밌는 독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경이 무한하다면 부도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난다." 

- 신화의 종말, p11.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무한하지 않았다."

- 신화의 종말, p13.

"전쟁이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 신화의 종말,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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