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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아이를 올바르게 키워낸다는 것

요시노 겐자부로, <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 양철북, 2012. 이런 책을 100년 가까이 전에 쓰다니, 일본이라는 나라가 대단하긴 하구나 싶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군국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의 1937년에 발간된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사상을 전달하려고 기획된 16권의 '일본 소국민 문고' 중 마지막이자 가장 근본적인 사상을 담은 책으로 출간되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의 입장에서는 가증스럽게 보이는 얘기일 수 있지만, 스스로 이룩한 성취에 취해 패전으로 막을 내린 태평양 전쟁으로 달려가던 당시 일본 사회 속에서도 인본주의와 긴밀히 연결된 세계, 내면의 양심 등의 가치를 역설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2021년에 와서도 전혀 흐려지지 않은 것 같다. '코페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15살, 중학교 2학년생인 혼다 준이치가 친구들과의 일화, 외삼촌과의 대화, 내면의 성찰을 통해 세상과 자신에 대한 인식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은,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성 및 흐름, 요즘 말로 글로벌 밸류 체인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시장과 분업이 만들어내는 진보, 빈부 격차와 이에 따른 사회 정의의 문제, 신의와 용기와 반성과 용서의 문제 등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이런 과정 속에서 혼다 준이치는 그의 별명의 기반이 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사람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과 같이,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는 아이의 관점에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겪는다. 중2병, 질풍노도의 시기 등으로 대변되는 시절에, 코페르의 인식을 넓혀주는 것은 외삼촌이다. 코페르의 외삼촌이 코페르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노트를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코페르를 훌륭한 인격체로 키워내겠다는 좋은 의도, 코페르의 감정을 살피고 적절한 감정적, 지적 자극을 통해 코페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해리포터 느낌의 안경 소년이 묻는다. '너희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 참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장편 나무위키에서 캡쳐. 제작사가 지브리,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인 것을 제외하면 아무 정보도 없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넷플릭스를 거쳐, 나무위키를 헤매다가 여기에 도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장편. 이미 몇 차례 은퇴를 번복한 그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 될 거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살 거냐니, 제목부터 묘하게 훈수를 두는 느낌이다. 내가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제법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대단한 팬심이 있지도 않아서 평소 같으면 감흥 없이 스쳐지나갔을 제목이다. 그런데 나는 왜 굳이 이 제목을 붙들고 어렵게 글까지 쓰고 있는 것일까? 미야자키 월드 "미야자키는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가족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부유하게 살았다는 죄책감, 부모가 여자와 아이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분노를 비롯해 갖가지 감정이 뒤엉킨다." - 미야자키 월드, p46. 1941년생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패전 후의 일본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제법 나이가 있나보다는 했지만, 이제 80살이나 됐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이 대여섯 살 무렵인 걸 감안하면, 전쟁 말미에 미군의 공습에서 피난하던 기억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의 기억에서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비현실적인 아이를 발견한다." - 미야자키 월드, p47. 그의 가족은 군수 업체를 운영하던 큰아버지와 아버지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 풍족했고, 그 돈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하게 공습의 위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했다. 그 나이의 아이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는 어지간하면

남의 결혼식에서 내 결혼을 돌이켜보다

결혼식이라는 건 대게 준비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의미가 넘치지만 사람들은 남의 결혼식에 별 관심이 없는 법이다. 더구나 지금 같은 코로나 시국에서는, 청구서 처리하듯 간편송금 서비스로 청첩장을 처리하는 게 더 익숙한 것도 같다. 그런데 지난 주말, 부서에 새로 들어온 후배 결혼식에 참석했는데(마땅히 참석할 자리긴 했지만, 시기가 시기니만큼 제법 고민을 했다), 이게 괜히 감흥이 일고 의미 부여가 되는 것이 묘한 느낌이었다. 벨린다 루스콤, " 결혼학개론 ", 비잉, 2021. 결혼식에 참석하려 이동하는 중에 읽었던 꽃분홍색 표지의 책 때문이었을까? 묘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움직이는 걸 관찰하다가, 문득 열흘 뒤면 결혼 10주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간, 아내와 나는 제법 잘 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부부로서 아이를 키우며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쉽다고는 못하겠다. 아마도 나와 10년의 간격을 두고 결혼하는 후배가 아내와 맞이할 10년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묘한 감정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상대에게 미칠 듯 화가 나는 이유는 원래 그 상대에게서 좋아했던 점들과 관련이 있다." - 결혼학개론, p38. 간만에 정장 차려입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중에 차마 손에 당당하게 들고 다니지는 못했던 꽃분홍 표지의 책, 벨린다 루스콤의 < 결혼학개론 >은 첫 번째 장을 익숙함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인지하고 극복하기 위해 오래된 부부일수록 조금씩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통의 결혼생활은 가장 화려한 행사인 결혼식을 시작으로, 점차 배우자와 함께하는 긴 여정을 기념하는 빈도가 줄어든다. 물론 10주년이라든지, 25주년이라든지 하는 굵직한 숫자는 더 크게 기념하긴 하지만, 어느 쪽이든 0주년의 화려함에는 비할 바는 아니지 싶다. "어떤 바보라도 1년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