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라는 건 대게 준비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의미가 넘치지만 사람들은 남의 결혼식에 별 관심이 없는 법이다. 더구나 지금 같은 코로나 시국에서는, 청구서 처리하듯 간편송금 서비스로 청첩장을 처리하는 게 더 익숙한 것도 같다.
그런데 지난 주말, 부서에 새로 들어온 후배 결혼식에 참석했는데(마땅히 참석할 자리긴 했지만, 시기가 시기니만큼 제법 고민을 했다), 이게 괜히 감흥이 일고 의미 부여가 되는 것이 묘한 느낌이었다.
결혼식에 참석하려 이동하는 중에 읽었던 꽃분홍색 표지의 책 때문이었을까? 묘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움직이는 걸 관찰하다가, 문득 열흘 뒤면 결혼 10주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간, 아내와 나는 제법 잘 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부부로서 아이를 키우며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쉽다고는 못하겠다. 아마도 나와 10년의 간격을 두고 결혼하는 후배가 아내와 맞이할 10년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묘한 감정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상대에게 미칠 듯 화가 나는 이유는 원래 그 상대에게서 좋아했던 점들과 관련이 있다."간만에 정장 차려입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중에 차마 손에 당당하게 들고 다니지는 못했던 꽃분홍 표지의 책, 벨린다 루스콤의 <결혼학개론>은 첫 번째 장을 익숙함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인지하고 극복하기 위해 오래된 부부일수록 조금씩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통의 결혼생활은 가장 화려한 행사인 결혼식을 시작으로, 점차 배우자와 함께하는 긴 여정을 기념하는 빈도가 줄어든다. 물론 10주년이라든지, 25주년이라든지 하는 굵직한 숫자는 더 크게 기념하긴 하지만, 어느 쪽이든 0주년의 화려함에는 비할 바는 아니지 싶다.
- 결혼학개론, p38.
"어떤 바보라도 1년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신혼여행의 추억만으로도 3년은 버틸 수 있다. 결혼기념일 선물이 정말로 필요한 시점은 15년째부터이다."- 결혼학개론, p9.
후배가 세상 화려하게 결혼 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한구석에서 10주년을 앞둔 내 결혼생활을 돌아봤다. 연애시절부터 지속 불가능한 정성은 처음부터 쏟지 않겠다며 아내를 섭섭하게 하는 만용을 부렸고, 결혼 생활 내내 어차피 오고 또 올 기념일 빡세게 챙길 거 있냐며 비협조적으로 굴었는데, 고맙게도 아내는 잠깐의 투덜거림 외에는 대체로 내 태도를 수용해주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태도가 익숙함이 갉아먹는 색다름의 낙차를 줄여줬던 건가 싶긴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기념일도 챙기고 아이 없는 데이트도 더 종종 계획해야겠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결혼식장 근처 유명한 빵집에 들러서 아내와 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조금 사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건강한 싸움의 기술에 대한 챕터를 읽었다. 운전 중에 싸우는 것이 왜 위험한지, 왜 내가 그 때 그런 충동에 휩싸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알았으니 최소한 운전 중에 싸우는 일은 적극적으로 피해야겠다.
결혼생활에서 익숙함의 문제와 부부간의 건강한 싸움의 기술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결혼 생활에서의 리스크를 많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그리고 나를 선택해준 배우자와의 백년해로를 다짐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한 게 아닌가.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책 한 권 읽고 몇 가지를 돌이켜보는 정도의 수고로움은 충분히 좋은 투자가 아닐까. 이에 더해 이 책은 돈, 육아, 섹스의 문제 및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법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 부부를 비롯해 많은 부부와 예비 부부들이 이 책을 통해 건강한 결혼 생활에 대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한 부분에 결혼, 혹은 그에 준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올려둔 모든 분들께 강력히 일독을 권한다.
이번에 결혼한 후배에게도 이 책을 선물로 줬는데, 결혼식에서 보여준 밝고 행복한 모습을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도 이어나가갈 수 있길 바란다.
소소한 일상을 바꾸는 행복이 책과 함께 했다면, 큰 교훈을 얻은 것이겠네요 ^^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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