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몹쓸 공돌이 개그
자고로 무릇 공대생 혹은 공돌이라 하면 '일반인' - 여기서는 비 공대인 -이라면 알 필요도 없는 기호로 범벅이 된 수식을 붙들고 밤을 샌다든지, 거기서부터 파생된 온갖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샌다든지,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들끼리' 머리를 싸메고 수시로 밤을 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밤을 샌다는 건 낮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고 곧 '일반인'들과의 소통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면 시나브로 쌓이는 전공 지식과 함께 '바깥 세상'에 대한 환상 그리고 '일반인'들과의 유머적 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씩 키우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비틀어 탄생한 것이 공대 개그 혹은 공돌이 개그이다.
예를 들어 '외국보다 한국의 초코파이가 초코 함량이 더 높은 이유'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도 훌륭한 공돌이일 가능성이 높은데(힌트는 위 수식을 영어로 바꿔보라는 것이고, 답은 마지막에..), 무릇 공돌이라 하면 이렇게 공돌이를 위한 개그를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소양을 갖추게 되고, 일반인들은 해설이 있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개그까지도 즐기면서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시 일반인들과의 유머적 단절은 더 공고해진다.
나 또한 정통한 공돌이로서 - 입사 전까지 같은 건물에 10년을 들락거렸다! - 유사한 과정을 거쳤고, 일요일 밤을 지배하던 주류 개그는 1도 모르지만 각종 공돌이 개그에는 피식거리는 단계에 도달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런 상황에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질량이 없는 물질'만 만날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 날로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다 끌어 모아서 소개팅이란 걸 미친듯이 했다. 다행이 한 톨은 정상적인 감각이 남아 있던 덕인지 질량이 있는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지금은 일반인 행세를 제법 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 때 느꼈던 위기 의식은 여전히 날 사로잡고 '공돌이 개그'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두게 만든다.
공돌이를 거르고 거르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부분이 핵심이다"
- 유머의 마법, p112.
그렇다. 어느 범위의 집단에서 보편적인지가 문제일 뿐, 공돌이 개그도 공돌이라는 나름의 집단 내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 혹은 진실에 기반하기 때문에 재밌는 것이다. 그 날의 소개팅 이후 의식적으로 거리를 둬 왔지만, 이 글을 쓰느라 찾아본 공돌이 개그는 여전히 재밌었다(몇 가지를 아내에게 보여줬는데, 돌아온 가장 좋은 반응은 헛웃음이었다).
"웃음은 일터에서 옥시토신을 분비시키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이며 인사과에서 허용한 행위이기도 하다."
- 유머의 마법, p70.
어떤 조직의 '공돌이다움'에 순위를 매긴다면 내가 일하는 곳은 학교, 연구소 다음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약 100명 가까이 되는 조직에 아마도 90% 이상이 공학 박사, 나머지도 다 석사니까, 무리한 추정은 아닐 것이다. 요는 뭐냐면, 거르고 거른 공돌이를 모아둔 조직이다보니, 각자 나름대로 일반인 행세를 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인 감성이 공돌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성에서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의학적으로 권장되지 않거나, 사회의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방법은 배제하고 호르몬 레벨에서 유대감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집단의 감성을 일반인 수준으로 변화시키거나, 다시 내 개그코드를 집단의 감성에 맞춰야 한다.
전자가 후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텐데, 문제는 후자에 대한 내 거부감이다. 우리 조직에서 먹히는 공돌이 감성의 개그라는 게 정말로 별 거 없다는 건 이미 여러차례 관찰된 결과다. 우리 부서장이 열심히 써먹는 개그코드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온갖 이벤트에 업무적/기술적인 요소를 대입하는 것인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신기할 정도로 일단은 수월하게 웃음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나는 막 부서에 합류한 신입이 - 그래도 정통한 공돌이다 - 부서장의 몹쓸 개그에 웃는 게 정말로 재밌기 때문인지 그 자리에 존재하는 지위 차이 때문인지를 모르겠다. 아재개그 남발하는 부장님과 웃어주느라 고생하는 신입사원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린다.
작은 조직일수록 다면적 관계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고, 다면적 관계란 업무 외적인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고, 업무 외적인 요소란 웃음과 함께 할 때 효과적으로 관계를 강화시킨다.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고민인 것이다. 정제된 공돌이들이 판치는 조직에서 마음을 내려놓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다른 뭔가를 찾을 것인가.
방향은 알아도 갈 길은 멀다
"직장에서 유머를 더 많이 활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재미있으려 애쓰는 대신 웃을 순간을 찾는 것이다."
- 유머의 마법, p40.
유레카!
'육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해해주는 것이다,'라는 어느 육아서의 주장이 떠오른다. 그걸 누가 몰라서 못하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건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게, 알기만 하는 것 보다는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염두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직장에서의 유머란 기준이 높지 않고, 높을 필요도 없다는 것은 중요한 인사이트다. 몹쓸 공돌이 개그도 용납할 여지를 만들어주니까.
하지만 직장에서 웃음의 혜택을 찾으려면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는 거지? 웃을 순간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웃음을 만드는데 실패한 시도는 어떻게 주워담을 수 있을까?
제니퍼 에이커와 나오미 백도나스의 <유머의 마법>은 특히 엄중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유머를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지침과 사례를 다양하게 제공한다. 나 자신과 동료의 유머 스타일을 범주화하는 법부터, 개인적인 업무의 영역에서 웃음의 순간을 찾아내고 활용하는 간단한 방법, 팀 차원에서 웃음을 장려하고 유머를 문화에 녹이기 위한 방법, 실패한 유머에 대한 대처법까지, 강력한 리더십 도구로서 유머를 활용하기 위해 알아야 할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실제 강의 내용을 책으로 구성한 것이다보니 기본적으로 실질적인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인데, 애덤 그랜트, 에릭 슈미트, 아리아나 허핑턴, 칩 히스 등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굵직한 리더들의 찬사에 비해 실망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내가 어느 조직에 막 합류한 신입사원이라면, 이 책의 혜택은 이메일 추신에 콜백을 활용하는 팁을 얻는 정도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내가 어떤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고 그 조직원들의 동기나 시너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책에서 정말로 많은 힌트와 고민 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라 하더라도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하는 이유는, 유머의 마법이 조직에 줄 수 있는 혜택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경력과 함께 리더십을 배양하는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어떤 조직의 어떤 위치에서든 발휘할 수 있는 것이지 리더의 위치에 있을 때만 요구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머는 우리의 힘을 강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 수 있다."
- 유머의 마법, p84.
[부록] 외국 초코파이가 한국 초코파이보다 초코 함량이 더 낮은 이유
- 한국: 초코/초코파이 = 1/파이 = 1/π = 0.318... (31.8%)
- 외국: choco/chocopie = 1/pie = 1/(πe) = 0.117... (11.7%)
- π (원주율) = 3.141592...
- e (자연로그의 밑) = 2.7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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