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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19의 게시물 표시

일상은 어떻게 정체성을 만드는가

정체성? "변화는 다음의 간단한 두 단계로 이뤄진다: 1.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한다. 2. 작은 성공들로 스스로에게 증명한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p63. 말은 쉽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만 빼면. 내 기준에서는 이게 소위 말하는 '꿈'이라는 것이다. 흔히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희망 직업 같은 것 말고, 내 삶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목표, 혹은 '가치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내 가치관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 이렇게 글로 밝히자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실제로 그런 것을 어찌할 도리는 없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은, 나만 특별할 리는 없으니 많은 다른 사람들도 가치관이나 꿈 따위 모르고 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최근에 인지한 '떳떳한 사람이고 싶다'는 이전보다는 조금 구체화된 바람 뿐이다. 물론 이렇게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인생의 최상위 목표가 아니라, '옷 맵시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혹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수준의 단편적인 목표만으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최상위 목표를 운운하는 이유는, 첫째로 상위 목표 없이 하위 목표들에 변화의 방향과 동기를 분산시킬 경우 궁극적으로 효과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일단 덤빈 후 시행착오를 거쳐 효율을 높이기에는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누구에게 떳떳한 사람이고 싶은 것이고,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떳떳함의 정체는 뭘까? 회사에서, 나는 동료에게 떳떳한 동료, 후배에게 떳떳한 선배이고 싶다. 회사에서의 떳떳함은 실무적으로 동료에게 도움이 되고, 후배들의 삶을 위협하는 조직의 부조리를 걸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업무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은

저작권법 제 28조의 적용 대상에 대한 고민 결과 정리

(*덧붙임#1) 아래 댓글에 Justin 님이 의견 남겨주신대로, <제28조>의 '등'에는 상업성 출판이 포함되지 않고, 따라서 출판되는 도서에서의 인용에 저작권 침해 이슈는 <제35조의3>이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해당 지적을 명시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를 아직 찾지는 못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수용은 보류하고 있습니다만, 아래 제 글의 취지 또한 명시적인 증거는 못 찾겠으니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저작권협회'의 기대되는 권위에 기대어 제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제35조의3>이 아니라 <제28조>의 적용을 받는다는 주장을 적당히 납득하고 넘어가겠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 감안해서 읽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덧붙임#2) 심야에 부랴부랴 쓰느라 놓쳤는데, 다시 읽어보니 법적인 책임에 대한 해석을 근거로 도의적인 책임이 없다는 식의 헛소리를 해 놓은 걸 발견해서, 해당 문장을 조금 가다듬었습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이 짓을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은총(?)과 공휴일 없는 7월, 조용한 주말에 집중도 있게 업무를 하고 싶은 내 필요의 3박자가 딱 맞아떨어져서 간만에 해 떨어지기 전에 퇴근한 금요일이다. 얼마 전에 시작한 <씽큐ON>의 두 번째 책인 "아주 작은 습관의 힘" 1회차 독서를 퇴근길에 겨우 끝내고, 이 미친 책을 갖고 도대체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하나 고민하면서 2회차 독서를 시작했어야 하는 밤인데, 저작권법 제 28조의 적용 범위에 대해 자료를 뒤지고 있다. 나 참.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는 이유> - 신박사TV 이 영상 때문이다. 내가 딱히 졸꾸러기는 아니지만 신영준 박사에게 제법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유튜브 채널의 포스팅으로 뭔가 K교수 사태의 부스러기가 - 무려 뉴스데스크 보도를 부스러

어떻게 후회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부모님이 두 분 다 살아 계시는 너희는 절대 몰라."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재테크에 대한 얘기에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한 친구가 자기는 너무 정신없이 일만 해서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돈을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 '정답'을 알려주면, 아니 아예 누가 알아서 돈을 관리해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누가 봐도 헛된 기대라 거기 있던 모두가 저마다의 생각을 꺼내 놓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흘러 흘러 그 친구가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 하고 싶은 마음에 지출이 통제가 안 되는 상황과, 그 이면에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 그리고 그 간병 과정에서 고생하신 어머니께 더 잘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들어보니 능력 있는 프리랜서 통·번역사인 그 친구가 번아웃을 염려해야 될 정도로 일해서 번 돈의 상당 부분이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 현재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소비에 쓰이고 있는 상황이었고, 본인도 그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이 된 다른 친구들이 그 부담을 어머니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먼저가 아니겠냐, 일을 하는 양도 조금은 줄이는 게 어떠냐 등의 의견을 냈는데 거기에 대한 그 친구의 대답이 이 말이었다. 그렇다. 무리가 되더라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어머니께 최대한 잘 해드리고 싶은 친구의 절박함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방법은 우리에게 없었다. 물론 만에 하나 내가 그 친구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 친구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친구의 대답이 논리적으로 적절치는 않았지만, 어찌 됐건 이것 한 가지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어머니도 언젠가 떠나실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떠나신 다음 느끼는 후회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하고 있었다. "애통 과정에는 늘 후회가 따른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책과 친구, 그리고 일

'떳떳한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는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다는 나이를 앞두고, 내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실패하지 않는 실패만을 쌓아 온 내가 최근에서야 발견한 내 바람이다. '꿈' 같은 거창한 것 말고, 흘러가는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어찌할 수도 없는 부조리에 열만 올리다가 문득 내가 그 부조리의 한 부분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이후로 쫓기듯 살다 보니 어느덧 구체화된 내 바람. '리더가 되어야 리딩을 하지.' 내가 기여했다고 생각한 것에 비해 박한 고과를 받아든 고과 면담 자리에서 부서장으로부터 '상위 고과를 받으려면 동료들을 리딩할 수 있어야 한다,' 는 피드백을 받고 그 시절의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때 그 부서장이 대단한 통찰을 갖고 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됐건 그 말 자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리더의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고, 팔로워의 위치에 있을 때 팔로워십과 함께 리더십을 키워두지 않으면 정작 리더의 위치에 올라갔을 때 한 없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법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연공서열제인 조직에서는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리딩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리더가 곧 조직의 부조리를 만들에 내는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비참한 것은 쓰일 데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소중한 줄도 모르고 낭비하는 것을 넘어 주변을 망치는 데 사용하는 '기회'라는 것은, 분야는 다르지만, 조선시대의 서출들에게는 꿈에서조차 주어지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는 치열하게 준비했고 기회가 왔을 때 그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무인인 백동수는 조금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꾸준히 걸어간 책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