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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밀레니얼인 우리는 왜?

나도 밀레니얼? 언젠가 'X세대'니 'Y세대'니 하는 말들이 있었다. 이런 얘기가 나오던 시절에는 아직 학생 때이기도 했고 뭣도 몰랐으니까, 으레 언론에서 내세우는 이런저런 키워드의 하나일 뿐이라고만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란다. 이것도 그냥 기반이 되는 단어의 특성으로 미루어(Millennium,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는 시기) 2000년대생인가보다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 걸? 점점 이 세대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심지어 <밀레니얼 이코노미>라는 책이 나왔다. 어떤 세대의 이름이 붙는 경제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경제 시스템 내에서 그 세대의 영향력이 주요한 수준이어야 할 것 같은데, 2000년대 생들이면 아직 경제활동을 할 나이가 아니다. 그제서야 내가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나 해서 찾아봤더니.. "통상 밀레니얼 세대는 1981~1996년에 탄생한 이들을 의미한다." - 밀레니얼 이코노미, p10. 어, 나네? 내가 1982년생이니까, 이 정의에 의하면 '밀레니얼 세대'의 앞 줄에 서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 부서에 최근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1994년생이라고 했으니까, 딱 내 얘기, 우리 얘기인 셈이다. 그렇다, 학위를 마치고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나이부터 이제 십 년 너머 사회 생활을 영위하여 각자의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나이 정도니까, 딱 우리나라 경제의 주요 세력으로서 위치를 확보하기 시작(해야)하는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인 것이다. 왜 '밀레니얼 이코노미'라는 말이 어색할까? 홍춘욱, 박종훈, 2019, 밀레니얼 이코노미 , 인플루엔셜. 이 책은 내 세대, 그러니까 밀레니얼 세대가 이끌어 가야 할 2020년 이후의 대한민국 경제의 다양한 면에 대해서, 두 명의 전문가가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밀레니얼 세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느님께서 맺어 놓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 마르코 복음, 10장 9절.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아주 독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혼과 가정에 대한 관점만큼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다.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내 삶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고, 실제로 사랑하는 아내와 5살 된 아이는 나에게 큰 행복일 뿐만 아니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의 원천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는 내가 연휴 첫날 아침부터 책 읽고 서평 쓰러 나오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조던 피터슨이 <인생의 12가지 법칙>에서 주장한대로 하느님의 일견 변덕스러운 의지에는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라면, 결혼 생활이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배우자를 더 사랑함으로써 극복해야지 갈라서는 것을 선택하지 말라는 것이니 맥이 통하는 가르침이긴 하다. 현실은 가르침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일단은 이혼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이 얘긴 접어두기로 하자.  정말 문제는 따로 있다. 하느님이 맺어 놓으신 것을 하느님은 갈라 놓으실 수도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죽음을 통해서일 것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서로 사랑하고 아끼더라도 나와 아내 중 누군가는 먼저 하느님 곁으로 갈 것이다. 그러면 남은 사람은 재혼을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는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 재혼의 가능성을 무시한다면 요즘 같이 기대 수명이 긴 시대에는 일찍 사별해서 오래 혼자 살거나, 노년에 혼자 살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혼, 비혼, 이혼, 사별 연도별 혼인건수 및 조혼인율(인구 1천명 당 혼인 건수) 추이. 직전 40년간 조혼인율이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인 것을 볼 수 있다. 통계청 제공 <2018년 혼인 이혼 통계>

저녁 있는 삶을 위한 재테크를 가르쳐 드립니다

일과 삶의 균형 "저녁 있는 삶" 언젠가 어느 대선 후보의 공약이었던가. 당시에는 이게 얼마나 어렵고 복잡하고 중요한 얘기인지 몰랐다. 저녁 없는 삶을 산 지난 7년 반 - 회사만 그렇고, 사실 사실상 대학원생 때도, 대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딱히 저녁 있는 삶을 살았던 기억은 없다 - 을 지내면서야 비로서 '저녁 있는 삶'이라는 것이 보통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 있는 삶을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처음에는 누군가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매니저가 완벽하게 짜여진 업무 할당과 성과 배분으로 만들어주든, 정부가 강제로 업무 시간을 제한해서든.  완벽한 매니저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진작 깨달았다. 사실 당연한 것이다. 그들도 불완전한 사람일 뿐이고, 조직의 위에서 보면 실무자에 불과했다. 그럼 이 나라에서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는 주체인 정부는? 마침 이번 정권 들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다. 조직이나 업무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이거라도 있어서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고 한다.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평일에 해 지기 전에 퇴근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일반적으로 퇴근 시간은 밤 10시고, 주말 중 하루는 거의 대부분 출근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한다. 주 52시간을 가득 채우는 것을 넘어 시스템에 카운트되지 않는 업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심지어 집에서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일을 한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내 일과 삶의 균형 - 앞으로는 짧게 워라밸이라고 하자 - 관점에서 최선이라고 내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주 6일 52시간 초과해서 일하고 매일 자정에 집에 돌아오는 게 어떻게 최선의 워라밸일 수 있을까?  처음으로 이런 개념을 떠올린 건 '경쟁'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쟁'을 전제로 한다. 아니, 조던 피터슨에 따르면

돈의 가격

돈은 가치의 측정 수단이자 저장 수단이다. 돈의 정의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든, 이것이 가장 정석에 가까운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돈' 하면 떠올리는 지폐나 동전 등의 화폐는 액면가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할 수 있음을 나타낼 수 있는 증서일 뿐이고, 화폐를 교환할 때 실제로 이동하는 것은 교환되는 화폐로 표시되는 분량의 돈 - 혹은 돈으로 측정된 가치 - 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은 가치를 측정하고 저장함으로써 어떤 가치의 교환, 즉 거래를 편리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떤 거래를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가치'이다. 즉, 가치의 측정 및 저장 수단인 돈은 그 자체로 다시 어떤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돈의 가치는 다시 돈으로 측정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돈의 가격, 즉 금리이다. 돈은 여기서 교환되는 가치를 측정함으로써 거래를 성사시킨 다음,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거래를 성사시킨다. 이렇게 누군가의 소비가 누군가의 소득이 되는 경제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돈의 가격, 즉 금리에 대한 이해는 문맹보다도 해롭다는 금융맹에서 탈출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 교양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염상훈, 2019, 나의 첫 금리 공부 , 원앤원북스 이 책은 '금리'라는 관점에서 돈과 경제를 설명한 책으로, 재테크의 기본이 되는 돈과 돈의 가격 자체에 대한 교양을 쌓고자 한다면 처음으로 읽어봐야 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경기와 물가, 신용, 환율 등 우리가 다양한 경제 기사를 통해 자주 접하고 각자 이런저런 논평을 내놓는 다양한 주제에서 금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흔히 관심을 갖는 주식 시장보다도 채권 시장이 더 크다는 점,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제도와 국고채 30년물 금리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실현시키는 방법과 양적완화의 방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