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밀레니얼인 우리는 왜?

나도 밀레니얼?

언젠가 'X세대'니 'Y세대'니 하는 말들이 있었다. 이런 얘기가 나오던 시절에는 아직 학생 때이기도 했고 뭣도 몰랐으니까, 으레 언론에서 내세우는 이런저런 키워드의 하나일 뿐이라고만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란다. 이것도 그냥 기반이 되는 단어의 특성으로 미루어(Millennium,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는 시기) 2000년대생인가보다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 걸? 점점 이 세대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심지어 <밀레니얼 이코노미>라는 책이 나왔다. 어떤 세대의 이름이 붙는 경제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경제 시스템 내에서 그 세대의 영향력이 주요한 수준이어야 할 것 같은데, 2000년대 생들이면 아직 경제활동을 할 나이가 아니다. 그제서야 내가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나 해서 찾아봤더니..
"통상 밀레니얼 세대는 1981~1996년에 탄생한 이들을 의미한다."
- 밀레니얼 이코노미, p10.
어, 나네? 내가 1982년생이니까, 이 정의에 의하면 '밀레니얼 세대'의 앞 줄에 서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 부서에 최근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1994년생이라고 했으니까, 딱 내 얘기, 우리 얘기인 셈이다. 그렇다, 학위를 마치고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나이부터 이제 십 년 너머 사회 생활을 영위하여 각자의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나이 정도니까, 딱 우리나라 경제의 주요 세력으로서 위치를 확보하기 시작(해야)하는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인 것이다.

왜 '밀레니얼 이코노미'라는 말이 어색할까?

홍춘욱, 박종훈, 2019, 밀레니얼 이코노미, 인플루엔셜.

이 책은 내 세대, 그러니까 밀레니얼 세대가 이끌어 가야 할 2020년 이후의 대한민국 경제의 다양한 면에 대해서, 두 명의 전문가가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2020년대부터는 한국 경제의 소위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데 이견을 표하기는 어렵다. 제일 앞 줄에 서 있는 81년 생이면 올 해 마흔이고 나는 그 바로 다음인데, 당연히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40대에 접어들면서도 내 세대의 경제활동의 규모가 한국 경제 전체에서 무시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슬프니까. 하지만 동시에 정말 내 또래의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상당한 수준의 소득을 얻고 원활하게 자산을 축적해나가고 있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을 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책에 따르면, 현재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한국 경제의 주요 세력으로 올라서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은 상태인 모양이다. 책은 이를 '지연된 밀레니얼 이코노미'라는 말로 정의하는데, 여기에는 베이비 붐 세대의 향상된 건강과 부족한 노후대비에 의한 은퇴 지연, 숙련 지향적인 경제 구조에서 선배 세대들의 생산성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데서 발생하는 경쟁력 부족, 고용 유연성 부족에 영향을 받은 기업의 신규 채용 적극성 저하 등의 원인이 작용한다고 한다. 그 결과 밀레니얼 세대는 소득 기준으로는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대책 없이 과소비를 하는 철 없는 세대도 아니지만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자연스럽게 누적된 소득 및 신용 면에서 이전 세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서울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 가격의 상승 흐름에 올라타지 못함으로써 일정 수준의 자산을 취득할 전망이 한층 어두워진 상태인 것이다.
 제법 수긍이 가는 진단이다. 내 주변에서 느껴지는 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아직 한국 경제의 주요 세력이 되기는 부족한 밀레니얼 세대의 일원으로써 나는, 그리고 내 친구들, 후배들은 어떻게 노동 시장에 진입하고, 소득을 늘리고, 자산을 축적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기, 승, 전, 학습

최근 어떤 글을 쓰고 어떤 말을 써도 항상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다를까 했지만, 결국 도돌이표다. 책에서도 첫 장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위 문단에서도 언급했지만, 결국 밀레니얼 세대가 노동시장의 진입이 늦어지는 것은 숙련 편향이 일어난 산업 구조에서 경력 없이 실력을 쌓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개인 레벨에서 극복하고 빠르게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은 학습능력과 노력으로 쌓이는 것이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한 경력은 꼭 직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나서도 학습은 여전히 중요하다. 책에 따르면, 이전 세대 대비 밀레니얼 세대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의 하나는 높은 기대 여명과 노령화에 따른 노동 가능 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가 이전 세대를 밀어내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늦어지는 이유가 뭐였을까? 낮은 숙련도이다. 거꾸로 얘기해서, 노동시장에 진입한 밀레니얼 세대가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긴 노동 기간을 통해 오랜 시간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얻으려면, 스스로의 숙련도가 다음 세대에 의해 대체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긴 기간에 걸쳐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학습이 필수적이다.
 재테크를 통해 자산을 불려나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책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 세대 대비 더 세계화되어 있는 세대로, 해외 자산 및 투자 정보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문제는 내가 속한 세대가 평균적으로 뭔가를 잘 한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책의 진단을 개인의 차원에서 구현하려면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학습을 해야 하고, 예시로서 해외 자산에 대한 접근을 들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금융과 자본주의, 경제라는 시스템 자체를 이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개인이 1) 노동 시장에 진입하고, 2) 노동 시장에 오래 머무르며, 3) 자산을 효과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가져야 할 능력은 학습 능력이다. 꾸준히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변화에 대응하며, 시스템에 휘둘리지 않는 능력을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 개개인이 더 배양할수록,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지연 정도도 점차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외국보다 한국 초코파이가 초코 함량이 더 높은 이유

여느 몹쓸 공돌이 개그  언젠가 돌아다니던 초코파이 초코 함량 계산식. 답은? 무려 약 31.8%다. 이 정도면 빈츠보다도 높은 함량일지도.. 자고로 무릇 공대생 혹은 공돌이라 하면 '일반인' - 여기서는 비 공대인 -이라면 알 필요도 없는 기호로 범벅이 된 수식을 붙들고 밤을 샌다든지, 거기서부터 파생된 온갖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샌다든지,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들끼리' 머리를 싸메고 수시로 밤을 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밤을 샌다는 건 낮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고 곧 '일반인'들과의 소통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면 시나브로 쌓이는 전공 지식과 함께 '바깥 세상'에 대한 환상 그리고 '일반인'들과의 유머적 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씩 키우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비틀어 탄생한 것이 공대 개그 혹은 공돌이 개그이다. 예를 들어 '외국보다 한국의 초코파이가 초코 함량이 더 높은 이유'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도 훌륭한 공돌이일 가능성이 높은데(힌트는 위 수식을 영어로 바꿔보라는 것이고, 답은 마지막에..), 무릇 공돌이라 하면 이렇게 공돌이를 위한 개그를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소양을 갖추게 되고, 일반인들은 해설이 있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개그까지도 즐기면서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시 일반인들과의 유머적 단절은 더 공고해진다. 이런 거에 웃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 출처: 나무위키 ' 공대개그 ' 페이지. 나 또한 정통한 공돌이로서 - 입사 전까지 같은 건물에 10년을 들락거렸다! - 유사한 과정을 거쳤고, 일요일 밤을 지배하던 주류 개그는 1도 모르지만 각종 공돌이 개그에는 피식거리는 단계에 도달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런 상황에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질량이 없는 물질'만 만날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 날로 있는

차멀미가 날 때는 앞을 봐야 한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가족 여행을 가면 나는 꼭 어디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깨곤 했다. 그 때마다 조수석의 어머니께서는 좋은 경치는 하나도 못 보고 밥 먹을 때만 일어난다고 핀잔을 주곤 하셨는데, 아무리 깨어 있으려고 해도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난 여지 없이 곯아떨어졌다. 성인이 된 후에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나는 차멀미를 했던 것이었다. 멀미라는 건 눈과 귀 - 정확히는 전정기관 - 에서 감지되는 움직임에 대한 정보 불일치를 뇌가 불편하게 느끼는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얼추 맞을텐데, 차에서 스마트폰을 볼 때 속이 더 메슥거리거나, 운전자는 멀미를 하지 않는 걸 생각해보면 된다. 차멀미를 할 때는 먼 산을 보라거나,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마시라거나 하는 민간요법이 전해지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다 소용 없는 일이다. 달리는 차 창문을 열고 머리 날리게 바람을 맞으면서 볼 것도 없는 먼 산을 아무리 노려보고 있어도, 멀미는 잦아들지 않았다. 조수석에라도 앉을 수 있다면 좀 나았겠지만 조수석에 갈 짬은 전혀 아니었으니 가장 확실히 멀미를 피하는 방법은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는데, 이걸 어느 정도 인지한 다음에는 메슥거림이 느껴질 때는 일부러 눈을 감고 잠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마 이 기전이 몸에 쌓이면서 차만 타면 자는 식으로 몸이 반응한 게 아닐까.  ""과학의 속도가 윤리적인 이해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각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표현하느라 애를 먹게 된다." 2004년 하버드 대학교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쓴 글이다." - 유전자 임팩트, p620. 어른이 되면서 멀미 자체에 대한 민감도도 떨어진데다 이제는 어디 갈 때 거의 운전석에 앉기 때문에 멀미에 시달릴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과 기술의 발전을 보고 있으면 가끔 속이 울렁거릴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케빈 데이비스, " 유전자 임팩트 &qu

호르몬 불균형과 지방, 그리고 치즈

 호르몬 불균형은 건강에 좋지 않다.  주로 호르몬이 부족하니 뭔가로 보충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주장에 동의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뭐든 균형 잡힌 게 좋은 법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부족하니 보충해야 한다는 말은 많은데 너무 넘치니 줄여야 한다는 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글에 '에스트로겐'과 '식품'을 한글과 영문으로 검색해보면, 어느 쪽이든 건강과 미용에 좋은 에스트로겐이 부족한 갱년기에 이것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라는 소개 페이지만 잔뜩 검색된다. 물론 여기에 소개되는 음식은 거의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함유한 호박, 쥐눈이콩, 석류 같은 것들이긴 하지만, 아무튼 과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페이지는 보이지 않는다. 닐 바너드,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 브론스테인, 2021. 닐 바너드의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는 에스트로겐을 비롯한 호르몬의 불균형, 그 중에서도 주로 과다한 호르몬이 어떤 건강 문제들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호르몬 과다를 일으키는 원인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식습관을 알려주는 책이다. 호르몬 불균형이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과 식습관 개선을 통해 극적으로 개선된 사례들, 그리고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학적 연구 결과들을 다양하게 알려준다. 물론 우리가 <영양의 비밀>을 통해 이미 알고 있듯이 우리 몸이 어떤 영양소에 반응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여기 소개된 극적인 사례들이 당장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호르몬과 건강에 대해 현대 과학이 밝혀낸 가장 신뢰성 높은 지식을 바탕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식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은 '행복에 있어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안티프래질한 전략일 것이다. "밝혀진 바로 유방암의 최대 위험인자는 호르몬, 그 중에서도 에스트로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