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도 평균 이상
'어디에 데려다놔도 평균 이상은 할 아이.'돌이켜보면, 이 이상으로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평가가 있을까 싶다.
내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당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뻤고 자부심을 느꼈노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 말을 들은 이후 -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렸다는 기쁨과, 존경하던 선생님의 평가에 기댄 자신감과, 두 분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런 복잡한 감정 때문에, 이 평가는 나에게 있어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동기였던 동시에,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 평균만 넘으면 되니까, 최고를 추구할 필요는 없었다 - 핑곗거리였으며, 무엇보다 도전을 피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벽이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생물학적, 문화적으로 부모님께 물려 받은 재능이 소위 학교 공부에 더 적합했던 운이 있었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가정 내 불화나 어려운 살림 등의 환경도 없었다. 이런 커다란 운에 힘입어 공부라는 선형적인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기 시작하자, 지식의 부익부빈익빈적인 특성에 의해 의도했던 것보다 더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고, 수능이라는 단발 시험에서의 운이 더해져 결국 상위 1%(!)에 해당하는 실력 대비 과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당시에는 소위 '수능 특차'라는, 수능 시험 점수가 깡패인 전형이 존재하던 시절이었고, 그 해 이과 응시자 총 수가 20만명 수준이었으니, 전국 2천등 수준의 점수면 대충 계산해보더라도 어딘가의 의대나, 서울대학교 공학계열 정도는 충분히 노려봄직한 점수였다.
하지만 내 선택은 연세대학교 공학계열이었다. 나는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사는 지루한 직업이고, 서울대는 산구석이라 놀기 불편하고, 포항공대나 카이스트는 너무 시골이라 놀 게 없다는 식의 쿨함을 내세웠다. 하지만 내심 나는 소위 최고레벨의 학교에서 경쟁하는 것이 두려웠고, 같은 관점에서 연대 정도면 어떻게든 되겠다고 생각했으며, 나에 앞서 줄줄이 서울대, 연고대 진학에 성공한 엄친아들에 - 52년생인 어머니는 당시에는 흔치않은 대졸 여성이었고, 자연스럽게 똑똑하고 돈 많은 친구들이 많았으며, 그 아이들은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의 혜택을 많이 누렸으며, 그 때문인지 온통 소위 명문대에만 진학했다 - 비해 어머니의 체면을 차려드리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평균의 시대
그렇게, 그리고 그 후에도 나는 '어디에 데려다놔도 평균 이상은 할 아이'가 되기 위해 있는 곳에서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평균 이상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에만 도전함으로써 이 평가를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만들어왔다.무엇이 이 말을 그토록 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었을까?
토드 로즈, 2015, 평균의 종말, 21세기북스. |
"케틀레는 이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천문학적 연구법을 사람들의 연구에 적용해보며 사회물리학계의 아이작 뉴턴이 되자고."이 책은 천문학자로서의 야심이 좌절된 아돌프 케틀레라는 인물이 그 시작이라고 말한다. 케틀레는 복수의 측정 결과의 '평균'을 통해 측정 오차를 줄여가던 천문학의 연구 기법을 사람에게 적용하면서 평균이 참값이고 개개인은 오류라는 철학을 내세웠는데, 개개인의 다양성에 혼란스러워하던 당시 사회연구의 상황과, 설사 오류더라도 어떻게든 패턴을 찾아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이 철학을 대대적으로 수용하면서 평균이라는 개념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책에 따르면, 고전적 기체역학의 이론이나 공중위생 분야의 정립 뿐만 아니라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경제 이론도 '평균적 인간'이라는 케틀레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당시 이 개념이 얼마나 대대적으로 환영받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 평균의 종말, p50.
"반면 골턴의 입장에서 보면 평균보다 50퍼센트 더 빠른 사람은 50퍼센트 더 느린 사람보다 우월한 사람이다."
- 평균의 종말, p61.
평균의 시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이 프랜시스 골턴이다. 골턴은 평균을 '정상'으로 바라본 케틀레의 철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평균을 '평범함'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주장이 소위 지성계를 사로잡으면서 -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평균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한테 당신들이 오류가 아니라 우월한 것이라고 하면 이를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 사회의 지배적인 개념이 된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려고 기를 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쓴다."
- 평균의 종말, p93.
'어디에 데려다놔도 평균 이상은 할 아이'라는 선생님의 평가가, 어머니의 자부심이 되고, 내 인생의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다. 케틀레와 골턴을 통해 퍼진 '평균의 향상과 그 이상의 추구'가 실현된 학교 교육이라는 시스템의 일원인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평가 중 하나가 '어디에서도 평균 이상을 할 자질'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교육 시스템의 정점인 대학까지 경험한 어머니께서 - 심지어 당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힐만한 명문대를 나오셨다 - 이 평가를 자랑스럽게 여기신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조금 미묘한데, 이 평가는 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유지하고 꾸준히 노력하기 위한 동기를 제공해준 한편, 나 자신을 어느 한계 안에 가두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서두에 언급한 '운'적인 요소가 부족하여 성과가 부족했다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 수도 있었던 위험한 평가이기도 했다.
이 책을 보면, '평균'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둬왔는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얼마나 많은 실패자들을 양산함으로써 사회적인 비용을 가중시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고과 시스템은 왜 이따위일 수밖에 없는지, 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맹목적인 입시 경쟁에 내몰리게 됐는지, 여기서 자유로워지려면 뭘 인지해야 하고 대안은 뭔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책의 주장은 교육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지만, 책을 읽는 대부분의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관점은 개인적인 영역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역사와 시스템을 아는 것은 개개인의 행동 지침을 세우는 데 기본이 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개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평균 중심 주의'가 어떤 역사를 거쳐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으로 자리잡았는지, 현대 사회의 시스템은 어떤식으로 이를 반영하고 있는지, 이런 관점으로부터 사회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은 무엇이었고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무엇이었는지 알려줌으로써 우리에게 각자의 관점을 가지는 데 밑바탕이 되어 줄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용어에 조금의 공감이라도 느꼈던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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