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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리더십을 함양해야 하는 이유

도리스 컨스 굿윈, 2020,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커넥팅.

'아무 말 필요 없고, 그냥 읽으세요, 제발.'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내내 서평은 이렇게 쓰고 치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책에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아는 건 없던 네 명의 미국 대통령들 -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즈벨트,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린든 존슨 - 이 어떻게 시대의 리더로서 성장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지, 그들의 리더십으로 시대의 주요한 문제들 - 남북 전쟁과 노예해방 선언, 석탄 파업과 , 대공황과 '뉴딜' 정책, 공민권법 제정과 '위대한 사회' 정책 - 을 풀어내는 과정과 그 과정마다 얻을 수 있는 리더십의 교훈들이 너무나 깔끔한 구조와 평이한 문장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져 있었다. 나는 이 한 문장조차 깔끔하게 정리를 못하는데 말이지.
 코로나19 사태와 회사 일로 정신 없이 흘러간 지난 2주에 걸쳐 틈틈히 이 책을 보면서, 이 네 명이 보여준 치열하게 노력하는 삶, 시련을 극복하는 정신력, 그 밑바탕에 자리한 이타적인 야망에 끊임없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일어났던 거대한 사건들과 이들의 리더십이 절묘하게 만나서 말 그대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경이감을 느꼈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고민하고, 해답을 만들어가는 어려움에 공감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너무 많은 걸 배우고,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돌아다녔는데, 이 중 뭘 잡아올려서 글로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아닌데.

"통찰력 있게 노예제도라는 쟁점을 파고들며, 청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해시키려 애썼다. 링컨은 진실하고 명료하며, 확신에 찬 열정적인 이야기로 청중을 설득하고,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p211.
링컨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가 노예제도의 확산을 야기할 캔자스-네브라스카 법에 대한 반대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그는 미국의 건국 헌법의 이념에서부터 당시 노예제도의 불가피성, 캔자스-네브라스카 법의 법리적 영향과 이에 반대해야 할 당위까지 연결된 복잡한 논증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제시한다. 이에 비하면 이렇게 배울 게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하나 설명하는 것조차 못하겠다고 내빼는 것은 너무 비루한 행동이 아닌가.

우리가 리더십을 함양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누구나 리더가 된다. 성인이 되어 조직에서 일을 한다면, 경험과 실력이 쌓임에 따라 작은 조직이라도 이끌게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지면, 가정을 이끌고 중심을 잡아야 할 책임은 어른인 부모에게 주어진다. 심지어 혼자 살면서 혼자 일한다고 하더라도, 나라는 유일한 인적 자원을 관리하고 리딩하는 역할을 나 스스로 가지는 것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리더라는 위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조직에서의 중간/최종관리자만이 리더라고 생각하고, 리더십은 리더만 가져야 하는 덕목이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가 리더십을 '아직'은 내 일이 아니라며 외면하게 되면, 보통 자기 규율이라고 부르는 스스로에 대한 리더십이나, 부모의 양육 혹은 교육이라고 부르는 아이에 대한 리더십 등 삶의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영역을 놓치기 쉽다. 이러한 영역들을 보면 리더십이라는 것이 어떤 지위에 종속되거나 어느 때에 갑자기 필요가 생겨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범위를 확장시켜나가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옛말이 딱 이걸 의미하는 말인 것 같다. 자신을 가다듬는(修身) 것이 가장 먼저라는 것에 주목하자.

'나는 과연 그 자리에 어울리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적절한 리더십을 함양하지 못한 채로 어떻겐가 리더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주변에서 이러한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쉽게는 각자 다니는 회사의 소위 부장님이다. 우리가 '부장님'이라는 단어에 흔히 부여하는 부정적인 의미들은 그 분들이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부장님'들은 나름대로의 열심한 회사생활을 거쳐 그 자리에 올랐을 것이고, 그 나름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부장님들은 지금 그 자리에 어울리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
 질문을 바꿔보자. 나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내가 그 자리에 갔을 때, 과연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것이 지난 몇 년간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요구받는 리더십과 발휘되는 리더십 간의 간극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리더십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경험과 책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현실의 부조리를 넘어서는 비전 제시와 실행 전략'이 한 가지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애초에 부조리하지 않은 영역은 리더십이 부재하더라도 알아서 굴러간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쌓여서 나타나는데, 우리가 마주하는 부장님이나 링컨이 마주한 노예제도,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마주한 석탄파업,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마주한 대공황, 린든 존슨이 마주한 인종차별정책 등은 그 스케일은 다를지언정 만들어지는 방식은 동일한 것 같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근본적인 가치에 집중함으로써 사회나 조직이 도달해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시키는 능력인데, 이를 달성해내는 사람은 위대한 대통령이나 훌륭한 부장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신이 확신에 차 연설한 까닭에 청중에게도 확신을 심어주었다."
-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p212.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은 차치하고, 작게는 훌륭한 부장님이나 부모가 되기 위해서도, 무엇이 근본적인 가치이고, 어떤 목표를 통해 이를 추구할 수 있으며, 어떤 방법을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학습이 동반되지 않은 고민의 결과는 십중팔구 망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으므로, 리더십의 기본 전제는 학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도 네 명의 대통령들은 그 방법은 달랐을지언정 치열한 학습자였고,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는 전문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그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지식이 더하면서 통찰과 지혜의 영역에 도달하였고, 이를 대중에 전달하는 것으로 대중을 이끌고, 다시 대중의 지지를 목표를 실현시키는 수단이자 목적으로 삼음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내가 조직의 중간관리자로서 조직원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가정의 어른으로서 자녀에게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더 작게는 나 자신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하더라도, 가치와 비전, 실행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소위 말과 행동을 일치시킨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삶의 작은 영역부터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함으로써 그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에 확신을 갖는 것이 우리가 리더십을 추구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시작으로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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