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일상의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를 때

일상의 쳇바퀴를 빠르든 늦든 정신 없이 돌다 보면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르는 순간이 온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혹은 혼자서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 오면 - 꼭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더라도 -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도저히 쳇바퀴에서 내려올 짬이 나지 않으면? 아니면 잠깐의 휴식 기간에 쳇바퀴가 더 크고 무거워져 있으면?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세요,'라는 구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이럴 때는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쳇바퀴에서 내려오거나 돌리는 속도가 현저히 늦어지지 않는 선에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에게는 그 방법이 농구였다. 근 30년 전에 처음 농구공을 만져본 뒤로, 내 인생의 대부분에서 농구는 내 첫 번째 취미였다. 격렬한 운동인데다 전문 선수처럼 몸 관리를 하지는 못하기에 부상의 위험도 경험도 많지만, 삶의 더 중요한 영역에 집중하기 위해 온갖 취미들을 포기하는 와중에도 농구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일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잠깐의 짬이 나거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꼭 체육관에 가서 픽업 게임을 잠깐이라도 하고 왔다. 이럴 때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한 말은 '체육관에 가서 빡세게 몇 게임 뛰고 나면 강제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이었다.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잠을 줄이게 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매우 피곤한 상태가 된다. 그 와중에 나름 격렬한 운동인 농구를 잠깐 짬을 내서 급하게 하다 보면 부상 위험이 제법 높다는 것은 오랜 구력을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후의 피로감이 업무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견 불합리해보이는 선택을 계속해온 것은, 그저 좋아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얻는 만족감과, 그 활동이 경쟁이 동반된 운동인 탓에 기대할 수 있는 아드레날린 분비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 효과 - 지금 보면 뻘소리인 것 같지만 - 가 쳇바퀴를 계속 돌릴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농구에 그렇게 집착했나

코로나19 사태로, 그리고 그 전부터도 쳇바퀴를 더 빨리 돌리다보니 최근 몇 달 간은 농구를 전혀 못 했다. 대신 심박수를 늘리는 활동 - 14층에 있는 사무실까지 빠르게 걸어올라가거나, 소위 타바타라고 부르는 운동 프로그램을 1세트만 소화하는 등 - 은 꾸준히 하는데, 아무래도 농구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정도는 아니다. '당연히 좋아서 하는 활동과 필요해서 하는 활동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라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켈리 맥고니걸의 <움직임의 힘>을 읽고 그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켈리 맥고니걸, 2020, "움직임의 힘", 안드로메디언

"성인에게 임의로 일일 보행 수를 줄이게 하자 88퍼센트가 더 우울해졌다. 활동을 더 줄이게 하자 일주일도 안 돼 삶의 만족도가 31퍼센트나 감소했다."
- 움직임의 힘, p30.

처음으로는 조금 딴 얘기. 농구든 계단 오르기든 달리기든 산책이든, 사람에게 있어서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동물(動物)은 움직이기 때문에 동물인 것이다. 진화의 압력은 움직임에 대해서 보상하는 방향으로 작용했고, 움직임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 보상하는 방향으로도 작용했다. 동물의 하나인 인간 또한 움직임을 통해 즐거움을 얻도록 진화했다. 나도 농구를 통해, 그리고 다른 운동들을 통해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저 적당히 힘든 일을 20분 이상 꾸준히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 움직임의 힘, p33.

러너스 하이에 대한 얘기다. 꼭 달리기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중간 강도의 어떤 움직임이라도 20분을 초과하면 엔도카나비노이드 분비가 촉진되면서 굉장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엔도카나비노이드가 정신에 미치는 굉장한 영향은 책을 보도록 하자. 아무튼, 농구를 하면 상당한 강도의 움직임을 근 한시간 가까이 가져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적당히 힘든'의 기준에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농구를 할 때마다 느끼는 좋은 기분에 이 엔도카나비노이드가 기여하는 바가 제법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최근 연구에선 이 젖산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결과마저 나왔다. 근육에서 분비된 젖산이 혈류를 타고 뇌로 이동하면, 불안감을 덜어주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식으로 신경화학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 움직임의 힘, p90.

농구를 하고 나면 확실히 피곤하다. 워낙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정도가 높아 피곤하다고 졸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피곤한 건 피곤한 거다. 도저히 못 견디겠을 때는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10~20분 정도 낮잠을 잔다. 격렬하게 움직인 근육에 쌓인 - 여기서 나온 건지는 몰랐다 - 젖산이 몸을 노곤하게 만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게 감정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책에 보면 '마이오카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운동 시 골격근이 내분비기관으로 작용하면서 분비하는 단백질로 이 중 이리신이라는 물질은 뇌의 보상 체계를 자극해 의욕을 고취시키고 학습 효과를 높이며 우울감을 낮춘다고 한다. 운동 후의 소위 '기분 좋은 피로감'에는 이런 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연결된 느낌을 경험할 최고의 방법 중 하나가 동기화된 움직임이다."
- 움직임의 힘, p98.

책에서 얘기하는 동기화된(synchronized) 움직임과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팀 스포츠인 운동은 상대팀과 경쟁하는 한 편 같은 팀원들과의 협력을 요구한다. 종종 한 개인의 출중한 능력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영웅을 만들기 좋은 스포츠라는 평가도 있고, 나 또한 상대적으로 실력이 낮은 분들과 게임을 할 때는 영웅 놀이로부터 즐거움을 얻을 때도 있지만, 농구 또한 본질적으로 팀 스포츠기 때문에 적절한 협력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이 때, 소위 약속된 움직임이든 순간적인 합이든 팀원들과 맞춰져서 점수를 획득하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동기화된 움직임의 하나로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개개인의 역량의 합은 우리 팀이 부족하지만 좋은 팀플레이로 승리를 가져가는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팀플레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험은 정말 큰 만족감을 느끼게 해 준다. 책에서 말하는 동기화된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팀플레이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승패와는 무관하게 긍정적인 기분을 제법 오랫동안 유지시킨다.

"당신이 우아하게 움직이면, 당신의 뇌는 팔다리의 신장과 발걸음의 부드러움을 지각한 다음 "난 우아해"라고 인식한다. 힘차게 움직이면, 뇌는 근육의 폭발적 수축을 부호로 변환하고 행동의 속도를 지각하여 "난 강력해"라고 파악한다. 힘이 필요한 방식으로 움직일 때, 뇌는 근육의 저항과 힘줄의 작용력을 감지한 다음 "난 힘이 세"라고 결론 내린다."
- 움직임의 힘, 184.

움직임이 정체성을 정립한다는 말이다. 농구를 하다 보면, 플레이가 영리하든, 안정적이든, 강력하든, 정교하든 저마다 하나씩의 장점은 있기 마련이다. 협력의 본질은 각자가 제일 잘 하는 것으로부터 시너지를 내는 것이므로, 플레이 중에는 누구나 자신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책에 따르면 이러한 특성들이 정체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운동이 자기효능감을 포함한 자존감을 높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일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읽고 나면 '아, 그렇지' 하는 순간이 오는 말들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무릎을 탁 친 후견지명의 순간이 이 문장을 읽을 때였다.
 그동안 나는 내 자아상을 '문무겸비(文武兼備)'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의 영역은 지식 노동자로써의 내 직업, 무의 영역은 나름 괜찮은 수준의 동호인 농구선수로써의 내 취미에 기대고 있었다. 특히 나 스스로가 상대적으로 빠르고 강하다는 느낌은 사람을 대할 때 여유를 더 갖는 데 도움을 줬는데 이게 다 근거가 있는 얘기였던 것이다.

나는 다시 농구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도 언젠가는 종식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바이러스의 위협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수준의 강도 높은 언택트를 지속할 방법은 없고, 사람들은 상존하는 위협을 수용할 것이며, 당장은 아니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치료제와 백신도 점차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 때가 되면, 잠깐씩은 쳇바퀴에서 내려와 다시 농구를 즐길 것이다. 돌던 쳇바퀴가 멈추기 전에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더 강하게 쳇바퀴를 돌릴 수 있으며, 심지어 더 즐겁게 돌릴 수도 있으니 잠깐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당연히 농구가 완벽한 운동도 아니고, 농구만이 유일한 정답일 리는 더더욱 없다. 나는 농구를 하겠지만, 혹시라도 여기까지 글을 읽어준 여러분들도 저마다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움직임의 힘>을 통해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