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도우미 노래방
몇 주 전부터 뭔가 뚝딱뚝딱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를 짓더니 드디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백신 접종 200만명을 돌파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인구 5000만명에 비하면 4% 수준으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우리나라도 일단 코로나19에의 집단면역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마스크를 벗으려면 빨라야 올해 겨울은 되어야 할 것이고, 사회와 경제가 돌아가다보면 운 나쁜 누군가는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이고, 더 운이 나쁜 누군가는 소중한 것을 잃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든 삶을 영위하는 한편으로 방역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한편으로는 각오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게 아닐까.
그 와중에 분당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그 반 학생들을 비롯해 여러 아이들이 감염되었다고 하여 난리가 난 모양이다. 감염된 아이들의 부모님들,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님들, 그 선생님의 자녀가 다녔다는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님들의 걱정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한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나도 6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고, 이 시국에도 가정보육을 할 형편은 안 되니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고, 얼마 전부터 수영 강습을 시작했고, 곧 영어 학원에도 보내려고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운이 좋은 경우고 그 분들만큼 코로나19의 위협을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감염된 아이들이나 그 선생님도, 큰 후유증 없이 건강을 회복하고, 더 이상의 감염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몇 가지 요소가 더해지면서 이 선생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조금은 과해지지 않았나 싶은데, 이 개념이 최근 읽은 흥미로운 책, <똑똑하게 생존하기>의 소재인 '헛소리'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관련된 기사를 보면 이 선생님이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래방이 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는 점과, 이 선생님이 세 아이의 엄마라는 점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제법 보인다. 당장 구글 검색어를 '분당', '노래방', '초등학교', '교사'에서 '교사'를 '여교사'로 바꿔보면, 검색화면에 노출되는 기사나 게시글의 기조가 사뭇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교사가 노래방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게 이 선생님이 받아 마땅한 비판의 정도에 얼마나 영향을 줘야 하는 것일까?
검사의 오류 - ML과 MAP
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에 간 여자 선생님 얘기에 앞서 책에 소개된 가상의 법정 드라마 얘기를 해 보자. 지문검사의 결과가 범죄 용의자가 실제 유죄일 확률을 얼마나 설명해주는지에 대한 얘기인데, 검사는 지문 검사의 정확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용의자가 유죄일 가능성 또한 매우 높음을, 변호사는 지문 검사가 일치하더라도 용의자가 무죄일 확률은 여전히 매우 높음을 주장한다.
전자를 Maximum Likelihood (ML, 최대 가능도), 후자를 Maximum A Posteriori (MAP, 최대 사후확률) 기반 추정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확률이론을 배우거나, 아마도 고등학교에서 통계 및 확률을 배워도 잘하면 나올 얘기긴한데, 조악하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ML은 어떤 현상이 얼마나 발생할법한지, MAP는 발생한 현상을 두고 어떤 원인이 현상을 일으켰는지에 집중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데이터베이스에 약 5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있고 범인이 1명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니 지문 일치율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을 확률은 약 6분의 1입니다."
- 똑똑하게 생존하기, p337.
여기서는 범죄현장에 남은 지문과 용의자의 지문이 일치한다는 검사결과가 현상이다. 이 현상을 놓고 검사는 서로 다른 사람의 지문이 검사결과가 일치할 가능성이 1천만분의 1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용의자가 무죄이려면 99.999%로 가장 발생할법한 결과인 지문 불일치가 나왔어야 하므로 유죄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반면 변호사는 검사결과 일치라는 현상이 주어졌을 때 용의자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0.001% 확률이라도 일치라는 결과는 이미 나온 것이므로 주어진 조건으로 보고, 전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5천만명 중 다섯 명이 확률적으로 용의자와 동일한 논리로 용의선상에 놓일 수 있으므로 현 시점에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닐 확률은 여전히 83%(5/6)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무죄로 봐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와 유사한 - 같지는 않다 - 관점의 차이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녀가 있는 여성으로서 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에서 감염되었다는 사실과 이 선생님이 받아 마땅한 비판의 크기 사이에도 존재할 수 있다. 지문 검사에서 거짓 양성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데는 운적인 요소가 작용한다. 우리 모두는 방역의 관점에서 각자 허용 가능하다고 느끼는 수준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생활한다.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환경에 자신을 노출하고도 운 좋게 감염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정말 조심하면서도 운 나쁘게 감염된다. 방역의 관점에서 누군가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그 크기는 그 사람이 감염에 있어 얼마나 조심했는지에 반비례해야 할텐데, 지문검사 결과가 양성이라고 해서 그게 곧 범인이라는 증명은 아닌 것과 유사하게,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조심성의 정도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물론 이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사적 모임을 자제하라는 정부나 소속 학교의 권고를 무시했을 것이므로, 그 모든 권고를 충실히 따르는 많은 사람들보다 조심하지 않은 것이 맞다. 이 부분은 본인의 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스스로 감수한 리스크이므로 더 조심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비판도 있을 수 있고, 스스로도 반성이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만큼 조금 더 조심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다. 자택격리 기간에 셋째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냈다는 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실 관계에 따라서는 추가로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인들과의 사적인 모임을 가졌다는 공간이 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이었다고 해서, 이 선생님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방역 관점에서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함께 리스크에 노출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노래방을 이용하거나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르는 행위 자체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방역 당국에서 해당 업종에 대해 영업정지처분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많은 행동들 중에도 분명히 노래방에 준하거나 혹은 더 감염에 취약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즉, 이 선생님이 받을 비판에 있어 장소가 노래방이었다는 사실은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
하물며 이 선생님이 교육자로서 도덕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업소를 이용했다는 점, 그리고 이 선생님이 세 아이의 엄마라는 점은 어떨까? 이 요소들이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하는 코로나19의 위협을 증가시켰을까? 다들 각자의 가치 판단이 있겠으나, 대체로의 판단에 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즉, 우리가 이 사건을 바라보고 각자의 촌평을 할 때, 각자의 가치 판단이 방역의 관점인지 일반적인 도덕의 관점인지는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내면의 헛소리
"그래서 이제 헤드라인은 기사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으려고 분투한다."
- 똑똑하게 생존하기, p56.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따르면, 우리는 허구를 믿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대규모 협업을 통해 현재의 지배적인 지위를 갖게 되었다. 허구를 믿는다는 것은 호기심을 검증되지 않는 이야기로 충족시키려는 갈망으로 풀어쓸 수도 있을텐데, 이 얘기는 우리를 지구의 지배종으로 만들어준 능력이, 세상에 헛소리를 만연하게 만드는 핵심 기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진실이 아니라 호기심(클릭)이 돈이 되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는 따분한 진실보다는 흥미롭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더 효율적이다.
"헛소리에 대한 이 같은 개념의 공통점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진실로 인도하기보다 그를 설득하거나 감동시키는 걸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 똑똑하게 생존하기, p80.
세 아이의 엄마인 초등학교 선생님이 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에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 선생님이 결과적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되었고, 그 전후의 안일한 처신으로 인해 자신의 어린 학생들이 포함된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따분한 사실보다 더 흥미로울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암시한다. 하지만 거기에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가 존재하든 그건 어디까지나 그 선생님 개인의 사정이지 우리가 흥미 본위로 소비할 컨텐츠도, 우리가 더 큰 비판을 할 근거도 아니다.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가장 널리 퍼지는 게시물은 대개 충격적이거나 경이롭거나 의분을 불러일으키거나 가장 극단적 주장을 하는 것들이다."
- 똑똑하게 생존하기, p394.
1년 넘게 코로나 시국이 이어지는 동안 복수의 학교 선생님, 혹은 어린이집 보육 교사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텐데, 이번만큼 시끄러웠던 적은 없지 않았나 싶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일 뿐으로 어떠한 주장의 근거로 삼기는 부족하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인상을 줘서 내 귀에까지 들어온 정보는 그 인상만으로도 한 발 물러나봐야 할 동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헛소리를 반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그런 헛소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몇십 배나 많다."
- <브란돌리니의 법칙> from 똑똑하게 생존하기, p34.
이렇게 우리 사회에 만연했다고 모두가 한탄하는 - 이것도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 헛소리에 대응하고, 나 자신이 헛소리의 적극적인 생산자나 소극적인 전달자로서 기여하고 싶지 않다면 헛소리 자체에 대해서 인지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칼 벅스트롬과 제빈 웨스트의 <똑똑하게 생존하기>는 여기에 대한 최선의 해법이다. 이들이 정의하는 헛소리의 의미에서부터, 다양하고 전문적인 헛소리 전략과 이를 알아차리고 반박하는 방법들을 읽어나가다보면, 남의 헛소리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헛소리에 대해서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야말로 나와 내 주변에 존재하는 헛소리의 위협을 줄이는 효과적인 생활 방역 전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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