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대박 책을 읽고 있어서, 어줍잖은 서평이 아니라 책 자체의 소개 및 조악한 요약을 해두려고 한다.
책의 구성을 보면,
1부가 "배움이란 무엇인가?"로, 기계학습이 모방하고자 하는 인간의 학습특성으로 살펴본 배움의 7가지 정의와 우리의 뇌가 기계보다 효율적인 학습 능력을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2부는 "우리의 뇌가 배우는 법"인데,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수준에서 갖고 태어나는 지식과 배움을 통해서 획득하는 지식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특정 영역의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신경가소성이 극대화되는 시기와 교육이 이 시기를 활용하는 방법 등을 설명한다.
3부는 "배움의 네 기둥"인데, 우리 뇌가 지식을 습득하는 메커니즘으로 볼 때 어떠한 학습에 필수적인 네 요소인 주의, 적극적 참여, 에러 피드백, 통합에 대해서 얘기한다.
내 기억 효율을 위해 조악하게나마 요약한
- 1부 내용은 여기: [책 얘기]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1부. 배움의 정의)
이번 글은 2부에 대한, 마찬가지로 조잡한 요약이다.
3. 아기들의 보이지 않는 지식
표면적으로 볼 때 새로 태어난 아기는 지식이 전혀 없는, 일종의 백지 상태로 보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생후 몇 개월만 되어도 아기들은 세상이 '일관성 있게 움직이고, 공간을 차지하며,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고, 동시에 서로 다른 두 곳에 있을 수 없는 물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아이들의 직관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거듭 확인되고 있으며, 아기 스스로도 다양한 실험들 - 이라고 쓰고 실수 혹은 사고라고 읽는 - 을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차차 가다듬는다.
아기들은 숫자에 대한 추상적인 직관 또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들려준 음절의 수와 동일한 수의 물체가 담긴 사진에 더 관심을 가지는 실험 결과로 이를 알 수 있다. 물체와 숫자에 대한 개념들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핵심적인 지식'의 일부로, 이후 보다 복잡한 사고의 밑바탕이 된다.
아이들은 확률적으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상황을 접할 때 더 '놀란다'. 이 자체가 '놀라운' 일인데, 놀란다는 것은 아이들의 뇌가 관찰 중인 일의 일어날 법한 정도를 예측하고 그들이 '놀란'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관찰된 결과로부터 어떤 원인이 관여했을 확률을 계산하는 maximum a posteriori (MAP) 추정, 다른 말로 베이지안 이론에 따른 사고를 하는 것인데, 이 베이지안 이론은 현재 인공지능 분야의 핵심적인 기반 이론이다.
이외에도 아기들은 생명이 있는 물체와 없는 물체를 구분할 수 있으며, '비열하'거나 '착하'다는 말을 알기 한참 전부터 어떤 대상의 행동으로부터 이러한 의도를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은 얼굴을 민감하게 인식하며, 이는 대상의 의도를 구분하는 능력과 함께 높은 효율의 교육을 가능케 하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언어에 대한 엄청난 민감도를 갖고 태어나는데, 태어난 직후의 아기들은 세상 모든 언어의 거의 모든 음소를 구분하며, 해당 음들을 범주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들의 모국어 습득은 백지 상태에서 모국어에 대한 정보가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에 대한 수용성을 가진 상태에서 모국어 외적인 정보에 대한 민감도를 잃으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는 바이링구얼이 가능한 이유를 잘 설명한다.
4. 뇌의 탄생
아기들의 뇌는 어떠한 학습신호 없이도 자기조직화를 통해 상당한 지식을 가진 상태로 발달하며, 자기조직화는 자연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자기조직화를 통해 구성된 특정 신경세포의 구조는 공간에 대한 인지나 수 개념에 대한 직관이 가능하게 하는데, 이러한 직관은 학습을 통해 다듬어져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으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내후각피질의 격자 세포들은 2차원적인 평면을 그려내 암호화와 공간 탐색에 적합하며, 두정엽 같은 다른 영역들은 선을 그려 숫자, 크기, 시간의 흐름 같은 선형 특성을 인지하는데 적합하고, 브로카 영역은 트리 구조를 투영해 언어 구문을 암호화하는 데 적합하다.
실제로 정교한 자기공명영상 장치를 통해 신생아의 뇌를 살펴본 결과, 사실상 성인 뇌 회로의 전부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아직 문장도 이해하지 못하고, 단어들과 문법 규칙도 알아내지 못하는 생후 2개월된 아기들에게 모국어 문장을 알려주면, 이 아기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뇌 영역 활성화는 성인의 경우와 아주 유사하게 수행된다. 즉, 언어의 습득이라는 관점에서 인간 아기들의 뇌는 이미 정해진 뇌 회로로 조직화되어, 적절한 입력만 주어진다면 어떠한 언어라도 그 음과 단어, 문장, 글에 대한 통계적인 규칙성을 학습해낸다.
여기서 개인적 차이는 뇌의 자기조직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임의성에 따른 정도의 차이일 뿐, 종류의 차이인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임신 초기부터 진행되는 뇌의 발달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공통의 학습 능력과, 학습 체계를 공유한다.
5. 교육의 몫
우리의 뇌는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의 발현과, 초기 뇌 발달 과정의 자기조직화에 의해 공통의 물리적 구조를 가지지만, 그 이후의 양육 또는 교육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데, 신경세포의 물리적 연결이 경험을 통해 개선되고 강화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경세포들은 많은 가지를 가진 나무와 같은 돌기를 수천개씩 가지고 있고, 이 말단이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되는 '시냅스'를 가지는데, 우리의 시냅스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계속 변화한다. 이 변화는 각 시냅스의 크기, 모양, 신경전달물질의 양이나 전기적 신호로의 변환 효율 등 모든 면에서 이루어져, 신경세포 간에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와 강도에 영향을 주고, 학습한 정보에 필요한 저장 공간을 제공한다.
기억이란 어떤 상황에 대해서 뇌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진행된 신경세포 활성화가 해부학적 변화를 통해 다시 일어나기 쉽게 생성된 후 외부 단서에 의해 동일한 신경세포 활성화 패턴을 재연하는 것이다. 학계의 구분에 따르면 기억은 크게 작업 기억, 일화 기억, 의미 기억, 절차 기억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각각 작업을 위한 단기 기억,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한 장기 기억, 반영구적인 세상에 대한 지식, 그리고 몸에 체화된 습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생물학적 변화를 동반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영양의 공급과 육체적 운동이 필요하며, 특정한 시기에 단 몇 주만 특정 영양분과 에너지가 결핍되어도 영구적 장애에 이를 수 있다. 즉, 뇌의 가소성은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고, 뇌의 각 영역에서 서로 다른 제한된 기간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를 '민감기'라고 하며, 이 시기를 지나는 해당 뇌 영역은 학습의 효율이 극대화되는데, 예를 들어 모든 언어의 음운 체계를 인지해내는 생후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충분한 자극만 주어진다면 복수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성인이 이런 능력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민감기는 언어의 음운 체계와 같이에 경우에 따라 '결정적'일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결정적 시기'와는 다르며, 효율의 감소는 있을지언정 일정 수준의 가소성이 유지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역의 뇌 발달 과정에 존재하는 민감한, 혹은 거의 결정적인 시기를 고려하면 교육 혹은 양육의 긍정적인 개입은 이른 시기에 이루어질수록 좋다.
6. 당신의 뇌를 재활용하라
뇌의 자기구조화 및 제한된 신경가소성과 민감기를 고려할 때, 고차원적인 개념을 우리 뇌가 이해한다는 것은 역설적일 수 있다. 이런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주장하는 '신경세포 재활용 가설'에 따르면, 읽기나 계산을 배우기 위해 아이들은 원래 다른 용도로 진화된 기존의 뇌 회로들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이는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는 머리 속에 일종의 숫자 축을 갖고 있어, 계산할 때 그 축 위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데, 신생아가 하나, 둘, 세 개의 물체를 보거나 아이들이 숫자 세는 법을 배울 때 활성화되는 회로는 고차원의 수학 공식과 정의를 접한 수학자들의 뇌에서 활성화되는 회로와 동일하다. 심지어 맹인인 수학자도 시각이 정상인 수학자와 동일한 회로를 사용해 수학을 탐구하는데, 이는 수학이 감각 경험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개념에 기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읽기는 원래 시각과 음성 언어를 관장하는 광범위한 뇌 영역들을 재활용하는데, 일련의 글자를 시각 피질에서 인식한 후 음성 언어 영역으로 넘겨서 처리하고, 이를 어떤 의미와 결부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때 글 읽기가 능숙해질수록 단어들에 대한 반응이 이루어지는 좌뇌의 영역에서 얼굴에 대한 반응이 줄어들고, 이 반응들은 우뇌 쪽으로 옮겨간다. 이러한 변화 또한 민감기에 극대화된 신경가소성을 활용하여 이루어지므로, 적절한 시기에 읽기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 이미 늘어난 얼굴에 대한 반응 영역에서 새로운 단어에 대한 반응을 만들어내기 어렵게 된다.
즉, 학교 교육이 마법의 약은 아니지만, 아기들이 인간의 유전적 한계 안에서이긴 하지만 모든 언어와 모든 글씨, 모든 가능한 수학에 열려 있을 때 적절한 교육의 개입을 통해 더 나은 뇌를 가질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이렇게 1부에 이어 2부의 내용도 요약해봤는데, 2부의 제목이 곧 책의 제목인 것이 이해가 되는 장이다. 책의 핵심 메시지인 '신경세포 재활용 가설'이 2부의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미 날 때부터 자기구조화를 통해 형성되거나, 어린 시절에 민감기가 지나가는 뇌 구조를 활용해 성인이 되어서야 이해 가능한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들을 학습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이를 통해 어린 아이에게 제공해야 하는 교육의 시기와 질, 성인에게 필요한 학습의 전략 등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모든 학습의 네 가지 핵심요소를 설명하는 3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완벽한 공부법>을 통해 정립한 학습의 요소와 방법론에서 크게 벗어나는 얘기는 없다.
이 신경세포 재활용 가설을 갖고 나름대로의 가설을 다시 세워보면, 재활용되는 특정 뇌 영역의 신경세포 구조에 맞게 이해해야 하는 주제를 투영(projection)하는 것이 효과적인 학습법, 혹은 교수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일한 2차원 행렬에서 00~99를 어떻게 배치할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000~990, 0000~9900으로 확장함으로써 10씩 세기, 100씩 세기, 더 나아가서는 곱하기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데, 이제 1~100을 세는 방법을 배우는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이 개념에 대한 직관을 동일한 방법론을 통해 획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일, 십, 백, 천과 만, 억, 조, 경,의 단위 조합 또한 2차원 행렬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류의 가설은 대단한 시험을 통해 검증할 방법은 없지만, 내 6살짜리 아들한테는 적용해봐서 손해볼 것은 없는 얘기다. 최소한 무작정 구구단을 외우거나, 온갖 단위의 숫자 사이에서 무작정 헤매게 하는 것보다 더 늦게 이런 체계를 익히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어차피 하는 기초개념 학습에서부터 적용 가능한 기본 개념을 접한 것이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혜택이고, 나에게는 3장보다도 2장이 핵심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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