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21세기의 준비된 인재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여전히 지난 세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아이들을 놀게 하라, p340.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대체로 내 아이가 나보다 나은 미래를 살아가길 원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인이라면 대체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뭘 주면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낙관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인지 발달, 사회적-정서적 건강, 신체 건강, 주의력 강화, 기억력 발당, 조망 수용 능력, 협동, 협상, 도와주기, 나누기, 문제 해결, 트라우마 극복, 계획 능력, 의사 결정 기술, 배움의 동기, 친목 쌓기, 학습 준비, 사회적 기술 및 나누고자 하는 태도, 순서 지키기, 자기 절제, 공동 작업 및 친구와 원만한 관계 만들기, 창의력과 다양한 사고(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법 생각해 내기), 건강한 두뇌발달, 정서 안정 및 회복탄력성, 공감 능력, 행복감, 운동능력, 빠른 언어발달 및 읽기, 자기 규제, 아이-부모 간 애착 과학 및 수학 학습, 실행 능력 개선 등이 포함된다.
— 아이들을 놀게 하라, p88.
미래까지 갈 필요도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일하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의 특징을 찾아보자. 내 문제에 공감해주는 사람,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 내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를 정리해주는 사람, 여유가 있는 사람, 온화한 사람, 건강한 사람 정도면 어디에서 만나도 환영할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사람이 내 문제만 잘 해결할 리는 만무하니 다른 사람의 문제도 잘 해결해줄 것이고, 나한테만 좋은 사람일 리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일 것이며, 이런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이고,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지금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도 환영받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모든 능력에서 우리가 소위 '공부'라고 부르는 학업 성취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파시 살베리와 윌리엄 도일의 <아이들을 놀게 하라>는 바로 이러한 능력 — 미래에만 필요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과거에도 필요했던 — 의 핵심에 '비정형화된 놀이'가 존재하며, 우리가 아이들에게 놀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의 권고
흔히 학업에 치중하다보면 간과하기 쉬운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 아동의 발달과 건강의 관점에서 최고의 전문가 집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미국소아과협회가 발간한 임상보고서의 주요 내용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제법 길지만, 요는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충분히 놀고 쉬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놀이는 아동 교육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다. 부모들과 학교, 지역 기관들에게 놀이 시간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모든 형태의 놀이는 아이들에게 이상적인 교육과 발전의 배경이 되어 준다.
- 놀이가 주는 이익은 광범위하고 충분히 입증되었다. 거기에는 실행 기능, 언어, 초기 수 연산(숫자 세기 및 공간 개념), 사회적 발달, 동료 관계, 신체 발달 및 건강, 자아 통제감 증진 등이 포함된다.
- 놀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점점 더 복잡하고 협력이 중시되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운동능력, 사회-정서 능력, 언어능력, 실행 기능, 수학, 자기규제능력 등을 발달시킬 기회를 얻는다. 가장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상상 속의 환경과 역할에 맞게 협동하면서 자기 통제 능력을 발달시키고, 가상의 사건을 추론하는 능력을 기른다.
- 아이들에게 놀이를 빼앗는다면 그 영향은 상당할 수 있다. 유아기부터 놀이는 아동의 사회적, 정서적, 인지적, 신체적 행복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 부모들이 자녀에게 행복하고 성공적인 성인기를 마련해 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들을 온갖 학원에 이리저리 데려다주는 것도, 수많은 교외 활동과 학습 활동으로 스케줄을 빽빽하게 채우는 것도 아니며, 그저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 주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함께 놀고, 아주 어린 나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보살피고 대화하고 책을 읽어 주며, 발달 과정에 적합한 효과적인 훈육을 통해 아이들을 이끄는 것이다.
- 어린이들의 학업 준비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저비용의 독서 시간일 것이다.
- 어린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은 블록, 공, 양동이, 줄넘기, 인형, 미술 도구 등 가장 기본적이고 저렴한 장난감을 통해 길러진다. 비싼 장난감일수록 놀이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몸을 쓰는 경험을 줄어들게 한다.
- 자유놀이는 아동기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모든 어린이가 창의력을 발휘하고, 반성하고,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는 자유놀이 시간이 풍부해야 한다. 또한 놀이는 어른들의 지시보다 아이들 주도로 이루어져야 하며,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게임처럼 수동적인 놀이보다 적극적인 놀이가 필요하다.
- 부모들은 아이들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해 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사랑과 이해로 격려해야 한다. 혼자 놀 때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 때나 긍정적인 격려는 부정적인 반응보다 효과가 크다.
- 자연에서 먼지, 나무, 풀, 바위, 꽃, 곤충과 함께하는 정형화되지 않은 놀이는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영감과 신체적, 정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 어린이들에게는 자신만의 필요와 능력에 기반을 두어 도전의식을 북돋우는 균형 잡힌 학습 스케줄이 마련되어야지, 외부의 압박과 경쟁적인 공동체의 요구, 대학 입학을 위한 요구사항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동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은 '학업 준비'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 하고, 사회적, 정서적 기술도 길러 주어야 한다.
- 어린 시적의 배움은 시험 점수와 같은 외적 동기부여보다는 놀이를 통한 어린이 내면의 동기에 의해 더 잘 이루어진다.
- 가장 효과적인 교육 모형은 학생들이 자신의 근접발달영역 안에서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이는 쪽지시험이나 수동적인 암기 학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놀이, 지도에 따른 놀이, 대화, 지도, 활발한 참여, 즐거운 발견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 쉬는 시간은 아동의 사회적, 정서적, 신체적, 인지적 발달을 최대한 능률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하다. 쉬는 시간은 아이의 개인적인 시간이며, 발달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본 요소이므로, 벌로 쉬는 시간을 빼앗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쉬는 시간을 줄이거나 취소하면 학업 성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체육 교육은 쉬는 시간을 보충할 수 있지만, 대체할 수는 없다. 오로지 비정형화된 쉬는 시간만이 놀이와 창의적, 사회적, 정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 쉬는 시간은 학교에서 하는 경험의 근간을 이루며, 평생 동안 쓰게 될 의사소통, 협상, 협동, 공유, 문제 해결의 기술을 발달시켜 준다.
- 아동과 청소년들은 쉬는 시간을 가진 후에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인지 활동 능력도 개선된다.
- 신체 활동을 줄이면 남자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남자아이들은 정적인 학교 환경에 적응하기가 더욱 어려울 수 있으며, 이는 남녀 간 학업 성취도에 차이를 유발할 수도 있다.
- 어린이들은 정형화된 체육 수업보다 자유로운 쉬는 시간을 보낸 이후에 학습에 더욱 집중한다.
- 학업과 인지 능력은 수업 사이사이에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 달려 있으며, 이는 어린이나 청소년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쉬는 시간은 학생들이 심적으로 긴장을 풀 수 있을 정도로 자주, 길게 주어져야 한다.
- 학교와 지역 공동체와 가정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의 놀이를 보호하고 지지해야 한다.
- 학교는 아이들에게 안전하고도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 학교에서의 실패는 자칫하면 우울증, 청소년 범죄, 지속적인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놀이와 창의적 예술 교육, 체육 교육, 사회 정서적 학습을 통해 참여가 적극 장려되어야 한다.
- 어린 시절의 과도한 압박, 성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한 강도 높은 준비는 아동과 청소년들 사이의 불안, 스트레스, 우울 등 정신 건강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학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있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 저소득층을 포함하여 모든 아이들은 쉬는 시간과 체육 수업, 예술 교육을 누림으로써 잠재적인 인지, 신체, 사회 발달 능력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입장
책에 소개된 스타리 그라드의 놀이터. 유튜브나 구글에서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어서 구글맵으로 찾아냈다.
책에는 수 년간 놀이터가 없던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의 스타리 그라드라는 작은 도시 — 언젠가 방문한 적 있는 아름다운 섬인데, 나처럼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스타리 그라드는 배가 정박하는 항구 이상의 의미는 없었더랬다 — 에 생긴 놀이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곳의 놀이터가 새로 생기고, 책의 저자가 아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인데, "어른들이 '놀이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요?"에 대한 답변들이다. 책의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취사 선택된 면도 없지는 않겠으나, 아이들 스스로에게 놀이가 어떤 의미인지 엿볼 수 있다.
- 저는 어른들에게 "부끄러운 줄 아세요. 놀이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당신은 그걸 아셔야 해요."라고 말할 거에요. — 일곱 살 소녀
- 저는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에게 순전히 거짓말이라고 말해 줄 거에요. — 열한 살 소년
- "네."라고 대답할 거예요. 우리는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하니까요. "네."라고 말한 다음에 그냥 계속 놀 거에요. — 여섯 살 소년
- 저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냥 자녀분들에게 그 말을 들려줘 보세요. 그럼 알 수 있을 거예요."라고요. 저는 놀이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여덟 살 소년
- 어른들에게 당신들은 더 이상 재미가 없다고 말해줄 거예요. — 아홉 살 소년
- 저는 어른들에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거예요. 친구와 함께 놀고 신선한 공기를 쐬는 건 누구에게나 엄청 중요하니까요. — 열한 살 소년
- 말도 안 돼요! 저는 어른들에게 놀이가 중요하다고 말해 줄 거예요. 놀이는 당신에게도 우리에게도 중요하다고요! — 아홉 살 소녀
- 저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이리 와서 같이 놀아요! (그러고는 다정하게 웃었다.) — 다섯 살 소년
- 저는 어른들이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해 줄 거예요. 어른들은 놀이가 뭔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저는 어른 들 말을 듣지 않을 거예요. 어른들이 뭐라고 하든 저는 그냥 밖으로 나가서 계속 놀 거예요. — 열한 살 소년.
정리하면, 모두가 같은 문제의식 —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길러줘야 하는 자질은 단순한 읽기, 쓰기, 수학 문제 풀이 능력보다는 종합적인 문제해결능력이다 — 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부터 당사자까지 같은 해답을 갖고 있는데 정작 부모인 우리만 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혹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거나.
아이들은 원래의 용도는 완전히 무시하고 물건을 부수고 합치며 다양한 방식으로 놀이를 즐긴다. 과거에 누가 어떻게 사용하던 물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직접 만지고 느끼며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쓰임새를 바꾼다. — 후츠파, p35.
쓰레기장 놀이터에는 힘을 합쳐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흔했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협력해 한 팀을 이뤄 행동했다. — 후츠파, p40.
우리는 수다를 떨고, 노래를 부르고, 농담을 하며 사이렌 소리가 멈추길 기다렸다. 사이렌이 그치고 3분 뒤,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놀이를 계속했다. 미사일이 떨어져도 아이들의 여름은 그대로였다. — 후츠파, p117.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아이들이 길러야 할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 그 결과로서의 혁신의 사례로 꼽히는 이스라엘의 문화에 대한 책, 인발 아리엘리의 <후츠파>가 계속 생각났다. 팔레스타인과의 무력분쟁에 따른 공습이라는 확실한 불확실성에 적응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협력하여 책임 있게 위험을 통제하며 '놀'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이스라엘의 사례가, 미래의 확실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협업과 위험 관리, 창의성 등을 길러주는 놀이의 힘을 잘 이해하고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역시 홀로코스트의 와중에도 놀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는 아이들이 세운 나라답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우리의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목소리를 내고 발전 방향을 찾아봐야겠지만, 한 아이의 부모로서도 어떻게 아이를 대하고, 아이에게 어떤 기회를 주며, 아이가 앞으로 다닐 학교라는 환경에 어떤 식으로 개입할 수 있을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궁리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의 주된 내용이 미국의 교육 정책에 관한 것이다보니 우리와는 멀기도 하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실천할 여지는 많지 않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럽게 넓은 스펙트럼의 분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다만 교육에 종사하시거나, 학부모이면서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일정 수준 이상 고민해본 분들은 앞서 언급한 <후츠파>, 그리고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 스타니슬라스 드엔의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와 함께 읽으면 자신의 교육관을 가다듬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가로 캘리 맥고니걸의 <움직임의 힘>도 함께 읽으면, 어른은 어떻게 놀아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도 함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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