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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는 착각

 

예를 들면 이런 것. <링크의 한겨레 기사에서 발췌(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802674.html)>


‘정경 분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속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국가에서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특정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정책 운영을 차단하는 ‘정교 분리’라는 표현을 경제에 적용한 것일텐데, 북한이나 일본 등과의 정치적 갈등과 별개로 경제적 협력은 지속적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이나, 혹은 ‘정경 유착’이라고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쌓음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문제의 반대급부로 언급되는 그런 개념인 듯 하다.

이런 개념을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은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 반대급부로 이를 분리하자는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을까. 미리 얘기해두지만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특히 어떤 정치 권력이 특정 경제주체와 결탁하여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정의롭지도 않고, 혹은 누군가 호도하듯이 전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내 관점이다.



재커리 D. 카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로크미디어, 2022년.

재커리 D. 카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로크미디어, 2022년.


하지만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에서 당위성을 느끼는 것만큼 이 둘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명확히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했다.


통화 안정의 진정한 원천은 금을 교환 매체로 선택한 정치권력의 공적 정당성에 있었다. 정치권력 없이 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p291.

정의로운 통화 정책을 위해 ‘금본위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둥, 이런 주장이 한 번씩 보인다. 애초에 금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기반한 화폐 발행이야말로 정부가 마음대로 화폐를 발행하여 화폐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실물자산을 갖지 못한 ‘서민’들의 부를 강탈하거나, 고소득층 혹은 자본가들의 부채 부담을 덜어 그들의 부를 더 키워주는 정의롭지 못한 행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도 금본위제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폐기된 것이고, 이를 부활시키려는 몇 번의 시도는—무려 그 처칠(!)이 이 짓을 했다 —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금본위제가 동작하던 시절의 경제는 결코 ‘서민’에게 친화적이지 않았으며, 경제라는 시스템이 휘청였을 떄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것도 이 ‘서민’들이었다. 더 자세한 얘기가 궁금하면 직접 책을 읽어보자. 나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지식과 글솜씨로 많은 사례와 그 배경에 존재하는 정치, 경제적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금의 가치가 정치적 정당성에 의해 선택되고 유지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말 자체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이거야말로 곰곰히 따져볼 일이다. 물리학적으로 금이라는 건 그냥 우주에 널려있는 원소 중 하나일 뿐이고, 반응성이 낮아 잘 보존되고 노랗게 반짝여서 괜히 사람 마음을 홀리는 장점을 제외하면 어디다 갖다 쓰기도 물성이 나빠 별다른 가치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결국 ‘돈’의 최상위 버전으로 ‘금’을 바라본다면, 그보다 위에는 ‘정치권력’ 혹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얘기한 ‘허구를 만들어내고 믿는 우리의 능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파시즘의 근본 원인은 실업이었다. 실업은 쉽게 무력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불안정과 분노의 근원이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p523.

내 수준에서 이해하기로, 경제에서 ‘돈’이라는 건 가치의 측정 수단이다. 다양한 가치의 교환 효율성에 있어 그 교환비를 단일 단위로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한데, 이게 돈의 역할인 것이다. ‘화폐’는 돈과는 조금은 다른 개념일텐데, 그 옛날을 조개껍데기든, 주화든, 지폐든, 수표든, 암호화폐든, 돈의 단위로 측정된 가치를 매개할 수 있으면 그걸 화폐라고 하는 것이고, 가치를 매개하려면 짧든 길든 저장하는 기능도 존재하기 떄문에 화폐라는 건 물질적으로 아무 가치가 없더라도 그게 매개하는 돈의 액수만큼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내가 뭔가 일을 해서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주고—가치를 이전시켰다—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내 문제를 누군가가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고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여기서 돈이 없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와 거래 상대방이 이를 가치있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 역이 일치하지 않는 한 가치의 교환은 일어나지 않거나, 극히 비효율적인 형태로만 일어날 것이다. 무슨 얘기냐면, 사회 전체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교환의 효율에 의해 증폭되고, 이는 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화폐의 유통 속도’라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생산의 총 가격을 높이고, 가치의 교환이 용이해지는만큼 동일 가치의 값이 저렴해지며, 개인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의 총량을 높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개인의 만들어내는 가치의 양이 극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면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더 많은 가치를 ‘누린’다는 뜻이다—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 ‘화폐’라는 것은 정치 권력이 좌우한다.


케인스는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문제들은 불평등을 완화할 때 가장 잘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p746.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거시경제학이라는 경제학 분야를 창시하고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생애와 업적, 그의 경제학 이론 혹은 사상이 양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세계에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세계경제의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정치/경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공격당하고, 오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케인스는 전통 경제학에서 생각하던 절대적 생산부족에 의한 빈곤이 산업혁명 이후의 세상에서 더 이상 사실이 아님을 보였고, 정치적 문제인 분배 불균형에 의한 빈곤이 경제를 불황에 빠트리고, 경제적 불황이 대중적 분노를 일으킴으로써 다시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정치가 분배에 개입함으로써 빈곤을 해소하고, 해소된 빈곤은 수요를 진작시키고, 진작된 수요는 생산을 증가시키며, 이로써 경제 내의 가치 교환 속도와 교환량이 모두 증가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한편으로 빈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과 그 이론이 적용된 정책적 도구들은 미국의 정치권력에 의해 채택되어 마법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뤄냈으나, 그의 사상은 냉전 시대의 정치적, 사상적 대립의 과정에서 억압되고, 축소되고, 왜곡되었으며, 그 결과 분배 불균형은 엄청나게 성장한 경제의 이면에 존재하는 정치적 불안으로 여전히 남아있게 됐다.

이 책을 통해 케인스가 살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세상을 엿볼 수 있고, 정치와 뗄 수 없는 경제, 그리고 경제학의 역사를 개관할 수 있다. 이 역사를 개관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경제, 사회,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 배경과 쟁점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슨 얘기냐면, 무조건 읽으라고 강요하고 싶은 책이라는 얘기다. 876쪽(!)이라는 분량의 벽만 통과할 수 있다면, 정말로 세상에 대해서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ps. 도저히 저 분량을 넘어설 수가 없다고 느낀다면, 스스로 ‘케인스주의자’로 밝히는 홍춘욱 박사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를 읽어보자.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역사적—정치적이라는 뜻이다— 사건들 이면에 존재하는 돈의 힘을—경제적인 영향을 말한다—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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