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언젠가 마이클 샌댈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어디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EBS에서 ‘하버드 특강—정의’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제작해줘서 이걸 보고 책도 사 보고 했었는데, 그 중에 ‘능력주의’에 대한 수업 중 한 장면이 계속 머리에 남아있었다. 어떤 학생이 ‘하버드’라는 졸업후 소득 기대값이 매우 높은—이걸 명문대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누리는 기회의 어느 정도가 그 학생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 중 샌댈 교수가 “이 중에 첫째로 태어난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했다. 결과는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느낌상 과반을 훌쩍 넘어선다.
물론 어딘가의 기사에서는 어떤 하버드 강의—이거 아니었을까— 에서 첫쨰가 80%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고, 또다른 기사에서는 입학생 설문 결과 외동을 포함한 첫째의 비율은 55%로 조사됐다는 얘기도 있다. 하버드에 입학하는 인구집단별 가구당 출산율 등을 따져보면 저 체감적 비율이 정당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본인의 ‘능력’을 따지는데 있어서도 출생순서와 같이 전적으로 ‘비자의적’인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한 덕분에 하버드 입학이라는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마치 첫째로 태어난 것이 노력하고 정진하는 능력에도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의’라는 관념은 단순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는 문제는 사회가 복잡한만큼 한없이 복잡하다. 마찬가지로 ‘비만’이라는 관념은 단순하지만 개인과 사회가 ‘비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우리의 몸 그리고 사회가 복잡한만큼 한없이 복잡한 문제다.
살이 찌지 않는 것. 현재 이 일은 내가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성취가 됐다.
<비만백서>, p24.
비만하지 않는 것이 칭송받는 ‘성과’가 된 사회에서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과연 얼마나 비만 해소에 영향을 주는지 인식하는 것은, 개인의 경제적 지위가 능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능력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의 의지와 노력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인식하는 문제와 닮았다. 내가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었던 배경에 첫재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무시 못 할—개인적으로는 부정하고 싶겠으나, 통계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줬다는 점이나, 내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그저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나, 부모님이 제공해준 환경에 영향을 받은 식습관,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나 생활하는 환경적 요인 등이 결정적인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점은, 공통적으로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운적 요소 없이 성과를 얘기할 수 없는, 그런 문제이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나는 이 분야에서 가장 명석하고 전문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고 그들 가운데 누구도 해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만백서>, p13.
그런 점에서 앤서니 워너의 <비만 백서>는 복잡계를 다룬 책이면서, 나에게는 마이클 샌댈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워너는 이 책에서 우리 몸이 뚱뚱해진다는 것에 대해 현대 과학이 알아낸 것들—그리고 여전히 모르는 것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집단적 비만 증가라는 현상을 규정하고, 우려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영향들을,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나름의 방안까지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비만에 얽힌 유전자, 마이크로바이옴, 열량, 게으름, 지방, 탄수화물, 음식 중독, 환경, 가난 등의 영향에 대해 알 수 있고, 이로써 체중조절에 관여하는 우리 몸의 복잡성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가정, 공동체, 사회, 산업, 문화, 정치 등—의 복잡성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어렵지만 어떤 문제의 전부를 규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량이 유한한 ‘난해한 문제’와, 그 정보량 자체가 무한한 ‘복잡한 문제’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비만은 개인의 수준에서나 사회의 수준에서 모두 ‘복잡한 문제’라는 것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체중 감량처럼 매우 실현하기 힘든 목표를 추구하기보다 건강 향상처럼 확실히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중점 목표를 전환하는 편이 낫다.
<비만백서>, p485.
다행스러운 점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하면 ‘비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문제라는 점인 듯하다. ‘정의’는 답을 찾기 어렵다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문제지만, ‘비만’은 ‘건강’이라는 더 본질적인 문제로 관점을 전환한 수 있기 떄문이다. 완벽한 ‘건강’은 마찬가지로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전반적인 건강의 향상이라는 목표는 책에서 얘기하듯 체중의 감소보다 그 혜택도 방법도 명확하다.
따라서, 비만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 대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게 어떨까—건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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