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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미래에 투자하라는데..

 흔히들 ‘정해진 미래’에 투자하라고들 한다. 무엇이 정해진 미래일까? 내가 앞으로 살아갈 최대 60년이나(100살까지 산다면!), 내 아이가 살아갈 세계까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제력이 유지될 2~30년 정도만 내다보자고 하면 제법 명확한 것 같다. 첫째, 앞으로 2~30년간 기후변화의 방향은 역전되지 않을 것 이다. 둘째, 비슷한 기간에 걸쳐 세계 인구는 더 증가할 것 이다. 셋째, 비슷한 기간에 걸쳐 농업 생산은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할 것 이다. 넷째,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먹어야 하고, 아무리 잘 먹더라도 늙으며, 언젠가는 죽는다. 마지막으로, 인류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칠 것이다. 그렇다면 정해진 미래 속에서의 경제적 수혜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곳은 어디일까? 첫째,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그린 산업 은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나 암, 인구 고령화와 관련된 바이오 및 헬스케어 산업 도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셋째, 세계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에 연관된 농산물 가격과, 농업의 중요성 은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투자의 대상은 '나 자신' 이다. '정해진 미래'라는 것은 방향성을 말하는 것이지 과정에서의 무변동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래는 정해져 있을 지언정 내가 충분한 기간동안 충분한 금액을 투자할 수 없다면 내 투자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건강해야 하고, 다음으로 계속해서 소득을 유지해야, 내가 생각하는 ‘정해진 미래’에 ‘투자’라는 걸 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높은 확률로 건강을 유지하려면, 지금 수면과 식사, 운동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더 높은 확률로 소득을 유지하려면, 지금 업무 내, 외적으로 공부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결국, 뭔가 알아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 만이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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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이 생산성을 망치는 방식

오랜만에 회사에 갔다가 새벽 1시가 다 되어 퇴근했다. 가뜩이나 사람이 부족한 부서에 일이 몰린 와중에 내가 떠날 것이 예정되어 있어 원래라면 내가 했을 일을 떠안고 있는 친구를 두고 그냥 퇴근할 수가 없었다. 사정은 어찌됐든, 회사에서 택시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누운 게 새벽 1시 반, 아침 영어공부를 해 5시간만 자고 일어난 게 6시 반이다. 아무튼 일어난 직후라고 한 시간 영어공부는 어떻게 했는데, 아이 어린이집 등원시키기 전에 아이 밥먹는 옆에서 쓸데 없이 유튜브 피드를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과 10~20분이었지만, 평소에 바빠서 아이와 시간도 얼마 못 보내는 주제에 금쪽 같은 시간을 버렸구나 싶고, 버린 시간에 할 일 못하면 그 일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고, 시간이 모자라면 체력이 부족하고, 체력이 부족하면 괜한 보상심리에 시간을 쓸 데없이 쓰는 악순환이 뻔히 보여서 재빨리 아이에게 사과하고 핸드폰을 껐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하지 못한다고 변명한다. 정말 그런지는 각자 스스로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일이 아닐까. 시간 관리든 데일리 리포트든 마음 챙김이든, 약간의 문제의식이라도 느껴지면 뭐라도 하나는 시도하는 게 선순환으로 들어가는 좋은 시작이 될 것 같다.

미국 응급실에서 PCR 검사 받기 - 이 악물고 영어공부를 더 해야 하는 이유

출장지랑 큰 상관은 없는 경유 공항에서. (직접 촬영) 4월말에 뜬금포로 미국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일이야 뭐, 늘 그렇듯이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잘 해달라’는 류의 일이라 멋대로 상황 판단하고 해야겠다고 판단한 일들을 멋대로 하면 됐는데, 문제는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모든 입국자에게 요구한 ‘출발 48시간 전에 검사한 PCR 음성결과확인서’였다. 출발 48시간 이내에 검체 체취한 NAAT 기반 검사 결과를 요구한다. (아마도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캡쳐) 미국은 3세 초과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무려 PCR 검사를 해 준다. (월그린 홈페이지에서 캡쳐) 하지만 예상시간(48시간)에 나온다는 보장 없음ㅡ.ㅡ; (월그린 홈페이지에서 캡쳐) 검사는 출발 48시간 이내에 받아야 하는데, 검사 결과는 48시간 이내에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오늘 코 찌르면 내일 아침에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한 우리나라에서나 지킬 수 있는 규정 아닌가? 아무튼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대부분 30시간 즈음해서는 결과가 나온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출발 이틀 전 월그린이라는 약국체인에서 제공하는 드라이브스루 PCR 검사를 받고, 당일 아침까지도 결과 안 나오면 회사에 욕 좀 먹고 비행편을 바꾸지 뭐, 이렇게 편하게 생각했었는데.. 웬 걸, 출발 전날 저녁까지도 결과가 안 나오는 와중에, 먼저 결과 나온 출장자 분들이 ‘너만 못 돌아가면 어쩌냐’며 이런 옵션, 저런 옵션을 찾아주기 시작하니까 당장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역시 사람 마음이라는 건 예측이 불가능하다. 뭐든 마음 굳게 먹는 것으로는 대체로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구글맵에서 캡쳐) 그 와중에 Signature Care Emergency Center라고, 2시간이면 결과가 나온다는 무려 PCR 검사 광고가

삼성의 네트워크 사업이 망하는 날

 4G니 5G니 하면서 모두가 스마트폰을 하나씩은 들고 다니는 오늘에도, 자신의 최신 스마트폰이 정말로 ‘스마트’하기 위해서는 ‘기지국’이라는 무선 연결 네트워크 장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도체와 스마트폰, 티비로 대표되는 삼성전자가 이 장비를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더 많지 않을까. 삼성전자의 네트워크 사업 소개 페이지에서 발췌. 최대한 깔끔한 이미지를 뽑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출처: 삼성전자 홈페이지) 이런 무시무시한 게 필요하다. 맨 위의 그나마 매끈한 게 안테나로, 홈페이지의 제품에 그나마 가까운 것. 이게 우리의 스마폰을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는 인프라다. (출처: 카카오맵 로드뷰) 위의 사진 같은 물건이 필요하다. 전파를 쏴주고, 받아주는 안테나와, 이 입출력을 담당하는 유닛 — 사진에는 딱 여기까지만 있어서, 그나마 깔끔한 것이고, 이거 이상으로 깔끔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 그리고 전파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얼마나 어떻게 주고받을지 관리하는, 일종의 두뇌 역할을 하는 유닛이 존재하고, 이를 또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하여 장비를 관리하고, 가입자 정보를 관리하고, 사용자의 트래픽을 전달하는 등등등… 오만가지 역할을 하는 장비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것이 우리가 스마트폰을 스마트폰답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다. 우리가 집에서 랜선이 꽂힌 PC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때는, 물론 모뎀이라는 게 필요하지만, 이런 장비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물리적인 연결 — 사실 전파도 ‘물리적’이지만, 여기서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리선이나, 광섬유 같은 것만 얘기하자 — 을 통해 인터넷이라는 어떤 관념적인 것에 접속하면, 그걸 실제로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광랜’보다는 ‘LTE-A’가, ‘기가랜’보다는 ‘5G NR’이 그렇게 프로모션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기존의 손에 잡히는 케이블을 통한 연결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인터넷’을 확장시키는 것 자체가 거

사랑을 베풀기 위해 필요한 것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은 소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소위 훌륭한 고전 문학이든, 싸구려 무협지든. ‘이야기’ 자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머니께서 이런저런 동화를 읽으시는 걸 녹화해둔 카세트 테이프다. 여섯 살 즈음의 기억이어서 형님한테 물어보니 산업의 역군으로 사우디에 나가 계시던 아버지께 보내는 음성편지 개념으로 내가 네 살 즈음 시작해서 힘들이지 않고 동화책을 반복해서 읽어주는 수단으로 변화한 모양인데, 내용도 제목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카세트라는 걸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제법 좋아했었나보다 싶게 거의 3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읽기’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초등학교 때였나, 부엌과 화장실을 가르는 벽면에 세워진 책장 가득 꽂혀 있던 수많은 책 중에 세계 위인전, 공상과학소설, 추리소설의 전집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제일 쉬운 위인전부터 — 실질적으로 픽션에 가까운 — 공상과학소설, 그리고 조금 더 어려운 추리소설 전집을 읽어나가면서, 소설의 전개를 참을성 있게 읽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며 극적인 마무리로 이어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그 당시 동네에 많았던 ‘도서대여점’이라는 곳을 통해 무협지라는 장르에 탐닉했더랬다. 나름 3권짜리 장편소설을 하루이틀 밤새 다 읽고 다음 책을 빌리고 하느라 용돈 부족에 허덕였는데, 그 때 읽은 책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신무협’이라는 장르의 초기작으로 분류되는, 거의 신적 존재로 성장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미녀들로 가득한, 약간 B급 작품이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제 깐에 조금 더 문학성을 따졌는데, 결국 다시 무협지와 — 이 때 김용의 작품들이나, 국내 신무협 작가들 중에서도 괜찮은 작가들 작품을 따져가면서 읽었더랬다 — 조금 더 장르를 넓혀서 판타지 소설들이 내 주요 관심사였다. 여기에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까

유레카 모먼트는 없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모먼트 (from Wikipedia) 유레카 모먼트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철학자라고 해야겠지?) 아르키메데스가 왕으로부터 순금으로 만들었다는 왕관의 순도 증명 방법을 고민하다가 목욕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면서 답을 깨달으면서 외쳤다는 유명한 말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크든 작든 이런 순간을 겪기 때문에 더더욱 직관적으로 잘 와닿는 표현이고, 그만큼 대중적으로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은 — 이 주장을 입증할 시간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 표현이기도 하다. 핵심은 ‘고민하다가’이다, ‘깨달으면서’가 아니라.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신경회로의 연결이 변화하는 — 형성되거나, 강화되거나, 쇠퇴하는 — 과정이다. 우리가 어느 순간 이전에 몰랐다고 생각했던 것을 깨닫는 경험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연결되는 경험이다. 이야기 속의 아르키메데스는 통에 가득찬 목욕물에 몸을 담그기 이전에 이미 부피와 질량에 대해 알고 있었고, 물질마다 이 비율이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단지 순금 왕관의 순도를 측정하는 문제에 있어 왕관과 동일 질량의 순금이 밀어내는 물의 양을 비교하는 비파괴적 검사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자신의 몸이 밀어내는 물의 양을 보면서 원래 알고 있던 지식들이 연결되며 오래 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는 확신을 느꼈을 때 아르키메데스가 얼마나 짜릿했을까. 왕이 의뢰한 것이라 하니, 어쩌면 이 해답에 그의 안녕이 달려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발가벗은 채로 뛰쳐나갈만하지 않을까ㅎㅎ). 그리고 그가 찾아낸 방법으로 왕관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훈훈한 이야기 뒤에 왕관을 만든 장인의 안녕이 위태로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지만, 여기까지는 나가지 말자. 아무튼 이게 혁신의 아이콘인 잡스가 ‘커넥팅 닷’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 것이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연결할 점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대중적으로 간과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기를

정의란 무엇인가

  “이 중에 첫째로 태어난 사람 손들어 보세요.” <EBS 하버드특강 ‘정의’ 영상에서 캡쳐> 기억에, 언젠가 마이클 샌댈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어디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EBS에서 ‘하버드 특강—정의’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제작해줘서 이걸 보고 책도 사 보고 했었는데, 그 중에 ‘능력주의’에 대한 수업 중 한 장면이 계속 머리에 남아있었다. 어떤 학생이 ‘하버드’라는 졸업후 소득 기대값이 매우 높은—이걸 명문대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누리는 기회의 어느 정도가 그 학생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 중 샌댈 교수가 “이 중에 첫째로 태어난 사람 손들어 보세요.” 라고 했다. 결과는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느낌상 과반을 훌쩍 넘어선다. 물론 어딘가의 기사에서는 어떤 하버드 강의—이거 아니었을까— 에서 첫쨰가 80%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고, 또다른 기사에서는 입학생 설문 결과 외동을 포함한 첫째의 비율은 55%로 조사됐다는 얘기도 있다. 하버드에 입학하는 인구집단별 가구당 출산율 등을 따져보면 저 체감적 비율이 정당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본인의 ‘능력’을 따지는데 있어서도 출생순서와 같이 전적으로 ‘비자의적’인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한 덕분에 하버드 입학이라는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마치 첫째로 태어난 것이 노력하고 정진하는 능력에도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앤서니 워너, “비만 백서”, 브론스테인, 2022.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의’라는 관념은 단순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는 문제는 사회가 복잡한만큼 한없이 복잡하다. 마찬가지로 ‘비만’이라는 관념은 단순하지만 개인과 사회가 ‘비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우리의 몸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