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을 불문하고,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가 "나는 빼고!"라고 말한다. 그럼 누구도 남의 말을 쉽게 믿는 맹신자가 아니다."
- 대중은 멍청한가?, p399 (옮긴이의 글).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이면서 평범한 존재이다. 아이 때는 아이다운 상상력으로 번개보다 빠르게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하늘을 나는 초능력이 자신에게 어느날 생길 것 같은 망상에 빠져들곤 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그런 능력이 생길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는 것이 보통의 어른이 되는 과정일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적 관찰로부터 이끌어낸 주장이기 때문에 틀릴 수 있지만, 만약 틀린다면 어떤 면에서는 내가 특별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이것 또한 재밌는 얘기가 아닐까.
아무튼,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과신하거나 사업 능력을 과신하는 등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인 것 같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정통한 자기 과신은 역시 '대중은 멍청하다, 나만 빼고'인 것 같다.
위고 메르시에의 <대중은 멍청한가?>는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이 틀렸다는 것을 조목조목 논증한 책이다. 나만 빼고 모두가 멍청하다는 명제가 거짓이라면, 나도 멍청하거나 모두가 멍청하지 않아야 하는데 다행히 이 책의 입장은 후자 쪽이다.
"중세 유럽의 농민들은 기독교 계율에 대한 완강한 저항으로 많은 신부를 절망에 빠뜨렸다."
- 대중은 멍청한가?, p9.
이 책에 따르면 대중은 멍청하지 않다. 대중은 어떤 신호에 대해서든 그 타당성을 의심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면밀히 따져서 그 신호를 수용하거나, 무시한다. 정치 선동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중이 그에 설득됐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거나, 그 외에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상업 광고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돈이 무색하게, 대중은 그 광고의 메시지에 설득됐기 때문이 아니라 경쟁 제품에서 옮겨오는 비용이 적을 때만 그냥 눈에 띄었기 때문에 해당 제품을 구입한다. 선거 운동에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노력 - 그러니까, 돈 - 은 기존의 정치 철학을 갖고 있는 유권자의 결정을 바꾸지 못한다. 이게 효과를 발휘하는 영역은 대중 설득이 아니라 유권자 집결이다. 심지어 가톨릭이 유럽을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조차, 사제들의 가르침은 대체로 씨나락까먹는 소리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농민들은 종교적 축일에 이뤄지는 축제를 일탈과 방종의 기회로 삼았다.
"임신한 산모조차 태아가 보내는 화학적 신호를 믿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한둘이 아니다."
- 대중은 멍청한가?, p9.
대중의 이런 완고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열린 경계 기제'라는 개념을 통해 진화론적 관점에서 어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도태되는 특성들과 그 반대되는 특성들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대중 설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논증한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중의 맹신성이 사실이라면, 어떤 신호를 보내는 발신자는 그 신호를 위장함으로써 한정 없는 이득을 취할 것이다. 이런 관계가 유지된다면 모든 사람이 위장된 신호를 보낼 것이고, 모든 사람이 모든 신호를 거부하게 될 것이므로, 이런 커뮤니케이션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수신자는 발신자가 보내는 신호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발신자의 전문성을 가늠하며, 발신자의 의도를 의심하고, 신호의 유용성을 검토하고, 사후의 결과를 통해 발신자에 대한 판단을 조정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대체로 무의식 영역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런 수신자의 특성을 감안할 때 대중을 원하는대로 설득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겐델만은 탈옥병을 추적하는 독일군의 총격을 피하려면 키르슈너의 도움이 필요했고, 키르슈너는 조만간 전선에 들이닥칠 미군의 총격을 피하려면 겐델만의 도움이 필요했다."
- 대중은 멍청한가?, p137.
그렇다면 설득은 언제 가능할까? 설득은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만 가능하다. 극적인 예로,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 탈출한 미군 병사와 독일군 부상병이 독일의 패전 시점에 전선을 벗어나기 위해 협력한 것을 들 수 있다. 만약 이 둘이 각자의 정부의 선전에 진정으로 설득된 상태였다면, 명확한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신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역학관계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당시 대기근의 시발점이 됐던 정책을 '잘못된 줄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따랐던 농민들이나, 김정일이 축지법을 쓰고 날씨를 부른다는 찬양이 '진정한개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역시 달리 방법이 없어' 동조하는 척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독자들에 의해 내 주장이 틀렸다는 게 입증되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 대중은 멍청한가?, p13.
이렇게, 이 책은 통념과 달리 대중 설득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 겉으로 보기에 '설득'된 것처럼 보이는 대중의 행동이 왜 그러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대중의 맹신성에 대한 관점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부터, 열린 경계 기제의 진화론적 메커니즘, 이 기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들과 그 이면의 진짜 원인들, 그리고 우리의 열린 경계 기제가 실제로 잘 작동하기 어려운 사례들과 이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차근차근 논증한다. 이를 통해 세상에서 정보가 발생하고, 전달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관점을 하나 가질 수 있고, 덤으로, 그 풍부한 논증의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나만 빼고!'가 얼마나 단단한 착각인지 알 수 있게 되어 약간의 겸손함을 가질 수도 있겠다.
보통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거나, 심지어 옮긴이의 글을 목차에서 확인하는 일도 거의 없는데, 옮긴이가 강주헌 씨라면 얘기가 다르다. 번역의 질도 탁월하다고 생각하지만, 옮긴이의 글이 가장 훌륭한 서평이라 지적 자극이 굉장하다. 이번 책은 옮긴이의 글이 맨 뒤에 배치되어 있는데, 책을 읽기도 전에 너무 훌륭한 평을 보고 오히려 편향이 생길 것을 우려한 건가 하는 근거 없는 생각도 해본다.
요는, 서문부터 시작해 심지어 옮긴이의 글까지도 훌륭한 책이라는 것이고, 이런 대단하지만 절대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 같은 책의 판권을 들여 오고, 좋은 번역을 해서 출판해주는 출판사와 그 모든 관계자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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