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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론과 진화론, 그리고 건강

생명의 탄생, 진화, 그리고 건강

약 138억년 전 우리 우주가 탄생했다.
약 46억년 전에는 우리의 태양과, 지구가 탄생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약 46~38억년전 사이에 무수히 지구와 충돌하던 운석의 수가 줄어들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면서 바다가 형성되고, 화성만한 원시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며 이 때 떨어져나간 덩어리가 달이 되었고, 최초의 생명이 탄생했다.
최초의 생명인 박테리아와 단세포생물들은 산소 없이 번성했으나, 약 25~5억년전 사이에 광합성을 하는 남조류가 출현하며 엄청난 양의 산소를 발생시켜 대규모 멸종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박테리아는 다른 단세포생물 속으로 들어가 숙주인 세포에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산소로부터의 보호를 받는 형태의 공생관계를 구축하도록 진화하여 진핵세포를 만들어내고, 또 다른 일부의 박테리아는 진핵세포 기반의 다세포 동물들이 진화함에 따라 그들의 장으로 자리를 옮겨 살아남았다. 이들이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와 장내 미생물군인데, 모든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에도 똑같이 존재하고, 이들과 이들의 숙주인 우리 몸의 공생관계가 우리의 건강과 장수를 좌우한다.

솔직히 말해 제법 급진적인 느낌의 이야기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의 몇 년 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우주론, 태양과 지구의 탄생, 생명의 탄생과 진화 등이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 느낌은 신선하고 매끄럽기까지 하다. 소위 말하는 '후견지명'이 발동하는 느낌인데, 내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고 해서 이 가설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는 완벽히 설득당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쉽고 간단한 얘기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왜 누구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찌고, 누구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가? 왜 비슷한 식습관을 갖는 가족들은 비슷한 건강 상태를 갖는가? 왜 몸에 좋다는 것이 넘쳐나는데 건강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을까?.. 습관과 건강에 대해 머릿 속에서 혼재하던 것들이 많이 - 전부는 아니다 - 정리되는 기분이다.
 당연히 이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괜찮은 가설이고, 받아들여서 잃을 것은 별로 없다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프로/프리바이오틱스, 항산화, 디톡스, 간헐적 단식, 타바타, 저탄고지...

스티븐 건드리, 2019,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 브론스테인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건드리 박사는 문자 그대로 '세계적인' 심장 전문의로서 주류의학계에서 자타공인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일각에서는 대체의학이나 혹은 미신 취급을 받는 장투과성과 전반적인 건강의 관계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 자체가 매우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고 밝혔던 장 누수에 대해서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으며 나아가 이것이 노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인정한다. 사실 나조차 장 누수에 관해 처음 들었을 때는 회의적인 태도였다. 15년 전 나에게 묻는다면 장 누수 증상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그것도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임을 이제는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운영한 치료 프로그램에서 수천 명의 환자가 보여 주었듯이 입, 코, 피부에서 일어나는 '누수'를 포함한 장 누수는 노화와 질병의 근본 원인이다."
-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 p56.

그가 장 건강, 더 정확하게는 장내유익균의 건강이 그 숙주인 우리 몸의 건강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설명하고, 장내유익균에게 유익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전략을 통해 어떻게 건강한 삶을 도모할 수 있는지 설명한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동안 이러저러하게 접해온 쏟아지는 건강 정보들이 -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 항산화 효과, 디톡스, 간헐적 단식, 타바타 운동, 저탄고지 다이어트, 케토제닉 다이어트 등 - 다 나름의 근거가 있긴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 몸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건강과 장수를 위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솔직히 말하자. 이 책을 읽으면 뭐가 문제인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얻은 정보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 카제인A1이 포함된 모든 유제품, 렉틴이 포함된 모든 곡물 및 콩류, 모든 설탕 및 지나치게 단 과일 등을 모두 배제에 가까운 수준으로 줄이면, 주위에 먹을 수 있는 것이 남아나질 않는다. 나의 경우 회사 구내식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제법 이런저런 선택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전의 식습관 - 밀가루 배제, 점심은 삶은 계란과 사과, 저녁은 동물성 단백질 위주의 식단과 약간의 현미밥을 먹는 - 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정보에 따르면 계란을 포함한 동물성 단백질과, 사과에 포함된 과당, 현미에 풍부한 렉틴 모두 피해야 할 식단이 되어버린다. 하물며 일반적으로 외부 식당을 이용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정보는 여전히 유효한데, 내 경우 간헐적 단식과 뇌청소 메커니즘의 지식이 공복 상태를 즐기고 특히 야식을 줄이는 데 감정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다. 막연히 체중 조절을 위해 식단을 조절했을 때의 나는 밤 9시를 기준으로 탄수화물 위주의 야식만 먹지 않는 것을 목표로 했고, 사흘에 한 번은 어떤 종류든 야식을 먹었다. 이것만으로도 체중 조절에는 도움이 됐었는데, 지금은 효율적인 수면을 위해 저녁 8시를 기준으로 어떤 종류의 야식도 최대한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침도 굳이 거르려고 노력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최소 12시간에서 16시간의 공복 기간을 어렵지 않게 높은 빈도로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로 20년간 81~85kg 사이로 유지되던 체중이 최근 한 달 사이에 77~79kg 사이로 줄어들었다.

 실제로 내 몸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방법을 찾는다든지, 리스크가 적으면서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적절한 보충제의 조합을 찾는다든지, 추가적인 식습관 조절을 도모하는 것은 차차 이 책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하나씩 찾아나갈 것이다. 이 때 톰 오브라이언의<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와 데일 브래드슨의 <알츠하이머의 종말>도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겠지. 참 인생은 짧고 공부할 건 산더미다. 이 글을 굳이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도 함께 건강하게 오래 공부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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