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꾸러기가 되어버렸다.
평생에 걸쳐 새해 계획이라는 걸 딱히 세워 본 적은 없지만(혹은 시작과 동시에 뇌리에서 지워버렸겠지만), 졸꾸의 언저리를 맴돌기 시작하면서 올해(2019년)부터는 계획이라는 걸 세우게 됐다. 그 중 월 1권 독서 및 서평 작성하기라는 목표가 있었는데, 3기 씽큐ON의 마지막 선정도서인 <탁월한 인생을 만드는 법>의 서평을 쓰고 있는 오늘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세어 보았더니.. 무려 35권을 읽었다! 그 중 서평이 작성된 건은 29권으로, 어느 새 정통 졸꾸러기(월 평균 2권 독서&서평)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구글 시트로 관리하는 내 독서 목록. 올해는 이것도 개편을 좀 해야겠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졸꾸'라는 가치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용어에는 그다지 편안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굳이 블로그의 제목도 졸꾸의 언저리라고 지어 놓고 계정도 언저리프론으로 - 부상을 자주 당하는 운동선수를 인저리프론이라고 한다 - 만들어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결과를 확인하고 나니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용을 썼나 자괴감 들고 괴롭.. 지는 않고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조금 든다.
일단 12권이 목표였는데 읽은 권수로는 거의 200% 넘게 초과 달성한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따져보자. 우선 생각나는 이유는 12권이라는 목표가 정확한 메타인지에 기반해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2018년에는 그 정도 속도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걸 기준으로 2019년의 목표를 세우긴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독서에 투입할 수 있는지, 서평을 하나 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등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독서하고 서평 쓰는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야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독서의 속도는 이해의 속도이기 때문에 배경지식의 유무에 달려있고, 나에게는 유의미한 속독이 가능할만큼의 교양이 아직 없다). 다만 독서에 투입하는 시간과 서평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은 분명히 바뀌었는데, 당연히 독서 시간은 대폭 늘어났고(체감적으로), 서평은 책의 모든 내용을 요약 정리 후 내 관점을 피력하는 방향에서 일부 주제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 어쨌든 서평 한 편 당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사실은 더 할 수 있었다'와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결과론적인 해석에 조금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대신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환경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어리에 연간 목표에 대한 중간 점검 내용을 기록해둔 바에 따르면 7월 7일 기준으로 10권을 조금 넘겨서, 이때 이미 연간 목표치는 달성했었다. 하지만 35권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1/3 수준을 당시에 달성했다는 것이므로 하반기에는 상반기 대비 두 배의 독서를 했다는 것인데,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씽큐ON>이다. 2기와 3기 씽큐ON에 참여하면서 12권의 - 이번이 12권째다 - 독서와 서평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더해 개인적으로 읽고 싶었거나 읽어야 했던 책들을 더 읽다 보니 생각보다 권수가 많아진 것으로 판단한다. 게다가 이전에 쓴 글 <리더란 게 되어버렸다>에서 밝힌 바와 같이 소파트원들과의 주간회의 시간에 일 얘기는 최소한으로 하고 다 같이 독서를 하고 있는데, 이게 안정적으로 독서 시간을 확보해주기도 하지만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된다. 왠지 <모기> 정도 되지 않으면 2주 연속으로 같은 책을 들고 가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몇 가지나 세웠던 목표 중에 가장 성공한 하나의 예시일 뿐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초과 달성한 목표를 돌아보니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데 있어 동기와 측정 가능성, 중간 점검, 환경 설정이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따로 언급은 안 했지만 상위 목표와 부합하는 정도 또한 매우 중요했는데, 기본적인 실력인 문해력을 키우고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더 효과적인 삶을 살기 위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독서는 목표를 초과 달성한 반면,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떨어져서 한정된 자원을 나누어 투입하기 어려웠던 손글씨 교정이나 영어단어 암기와 같은 목표들은 목표에 미치지 못하거나 거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던 2019년보다 더 나은 2020년을 만들려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까?
2020년 목표는 더 영리(SMARTER)해질 수 있을까?
마이클 하얏트, 2019, 탁월한 인생을 만드는 법, 안드로메디안. |
Your Best Year Ever. 한국어 제목도 제법 자신감 넘치지만 영어 제목은 그야말로 패기가 흘러 넘친다. 당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든 이 책을 보면 인생 최고의 해를 계획할 수 있다니,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정서에 익숙한 정통 한국인인 나로서는 제법 불편한 제목이다. 하지만 뻔한 걸 꾸준히 할 수 있다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최고니 뭐니 하는 제목보다는 뻔한 걸 얘기하는 내용에만 집중하면 될 일이다.
인생 최고의 해를 만드는 계획을 세우는 첫 번째 단계의 주제는 믿음이다. 어디서 본 듯한 전개인데, 고영성, 신영준의 <완벽한 공부법>에서도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했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믿음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제한적 믿음과 해방적 진실이라는 말로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얘기한다.
그 다음으로 반성, 계획, 동기, 실행의 순서로 총 5단계 목표 달성 과정을 얘기하는데,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의 핵심적인 차이는 계획에 있다. 믿음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 반성과 동기는 각각 계획과 실행 혹은 둘 다를 보조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행 또한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이미 실천하고 있는 전략이 있으며, 무엇보다 2020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지금은 계획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이 책은 좋은 계획의 특성으로 SMARTER(Specific, Measurable, Actionable, Risky, Time-keyed, Excting, Relevent)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기존의 SMART 목표 개념에서 R에 해당하는 요소를 현실성(Realistic)에서 위험성(Risky)으로 바꾸고 흥미(Exciting)와 적절성(Relevent)이라는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기존의 SMART 개념이 목표의 달성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SMARTER 목표는 이 세 가지 요소를 통해 목표에 이유와 동기를 추가로 부여한다. 스티븐 코비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언급한 효율성과 효과성의 개념과도 연관지을 수 있는데, 방향 설정 없이 빠르게만(효율성) 가기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빠르게(효과성) 가라는 것이다.
위험성 요소는 너무 안전한 영역에만 머무르지 말고 위험한 영역에 지속적으로 발을 들여놓으라는 것이다. 결구 해낼 수 있지만 다소 버겁다고 느낄 정도의 도전적인 목표를 세울 때 그 목표에 더 집중하게 될 뿐만 아니라 목표를 통해 달성하는 성취도 커진다. 이 책은 이를 안전 지대와 불안 지대로 설명하는데, 이에 더해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인 망상 지대라는 개념을 함께 설명한다. 즉, 불안 지대에 머무른다는 것은 집중해서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렵지만 그러면서도 집중해서 역량을 발휘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칙센트 미하이가 <몰입>에서 얘기한 몰입의 조건과 딱 들어맞는 얘기다. 불안 지대에 머무르되 망상 지대로 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높은 메타인지에 기반한 세심한 목표의 조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안데르스 에릭센이 <1만시간의 재발견>에서 얘기한 의식적 노력이다. 즉, 위험성 요소가 포함된 목표는 더 큰 성취와 이를 위해 필요한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 준다.
흥미 요소는 말 그대로 목표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성 요소가 반영된 목표는 의식적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흥미 요소는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누르고 목표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 즉 내적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해 준다.
적절성 요소는 목표가 나의 상위 목표에 부합하는지 여부이다. 한정된 자원 - 특히 시간과 주의력 - 을 투입해서 달성한 목표가 나의 상위 목표와 부합하지 않거나, 오히려 상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는 셈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적절성 요소를 고려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혹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즉, 가치관이 우선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앞서 소개한 <성공하는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나, 안젤라 더크워스의 <그릿>,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작은 습관의 힘> 등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바이다. 적절성 요소는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목표를 세움으로써 내적 동기를 더 쉽게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시 말하면, 더 영리한(SMARTER) 목표를 세움으로써 각 목표의 달성 가능성 및 기대 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기대 효용 관점에서의 핵심 요소는 SMART 목표 대비 수정/추가된 위험성, 흥미, 적절성 요소, 그 중에서도 위험성과 적절성 요소가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 2020년 목표를 몇 가지만 점검해보자(달성 가능성 요소는 일부러 제외했음).
- 상위 고과 획득 및 진급:
[위험성] 온통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부서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내고 상위 고과를 획득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도전적인 일이다. 조직이 고령화되고 더 많은 사람이 진급 연차에 도달할수록 더.
[효용성] 재무적인 관점에서 생애 소득의 최대화, 조직 관점에서 내가 이미 받은 상위고과의 효용성 극대화, 주니어들에게 돌아가는 기회의 공정성 제고와 이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동기 부여를 고려할 때, 주어진 기회를 한 번에 결과로 만드는 것은 '떳떳한 사람이 된다'는 상위 목표에 매우 부합한다. - 독서 40권 및 서평 30편 작성:
[위험성]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정량 목표를 세우는 것은 다소 안정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업무 영역에서의 큰 목표에 투입될 시간과 인지 능력 - 둘 다 한정된 자원이다 - 을 고려하면, 올해 수준의 독서량은 결코 안정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아마도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자투리 시간까지 끌어모아야 할 것이다.
[효용성] 문해력과 교양은 실력의 기본이다. 지속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야말로 현 시점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안티프래질 전략 중 하나이다. - TSC(중국어 말하기 시험) Level 4 획득:
[위험성] 2019년 10~11월 두 달에 걸친 독학을 통해 Lv2를 획득했기 때문에 꾸준한 학습과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Lv3는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위험 지대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Lv3에서 목표치를 Lv4로 올렸다.
[효용성] Lv3만 획득하면 승진 가점이 있기 때문에 진급이라는 목표와 그 배경에 있는 상위목표에도 부합한다. Lv4 목표는 이 관점에서 무의미하지만, 중국인 인력들과도 밀접하게 소통해야 되는 업무 특성 상, 중국어로도 조금 더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특히 감정적인 면에서 의사소통의 효율을 높여줄 수 있다. - 운동 프로그램, 식단 구성 전략 및 보충제 구성 조정:
[위험성] 독서 목표 중에 건강 관련 책들을 연초에 배치할 것이고, 운동, 식이, 보충제 섭취 모두 이미 매일 진행하고 있는 습관이므로 세부 내용을 조정하는 것 자체는 위험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도전적이고 위험한 목표만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효용성] 건강은 모든 생산적 행위의 토대로, 같은 시간을 더 밀도 있게 사용하거나, 단기적으로는 더 많은 시간을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해주므로 매우 중요하다.
2020년은 정말 내 인생 최고의 해가 될 수 있을까?
내 2020년 목표를 정량화하고 실천 가능한 형태로 구체화시키는 것을 넘어 - 이건 올해 목표에도 적용한 것이다 - 이 목표가 내 역량을 잠재적인 영역까지 끌어올릴 것을 요구하는지(위험성) 및 인생관에 부합하도록 설계되었는지(효용성)까지 점검해봤다. 그렇다면 이제 내 2020년이 자동으로 인생 최고의 해가 되는 것일까?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것은 보장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목표와 계획을 세웠으면 이를 실행해야 성과가 나오는 것이고, 운이 도와줘야 성공이라는 과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일의 영역은 내적인 성취만으로 성공을 말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 특히 고과와 승진 같은 것을 성취 목표로 작성했다면 더 그렇다 -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는 작용하지 않는다. 운의 영역을 배제하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운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 설정과 의식적 노력을 통해 하루하루 성장해나가다보면, 실력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해가 항상 인생 최고의 해일 것이다. 그리고 실력이 있으면 약간의 운으로 성공의 관점에서도 인생 최고의 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졸꾸만이 답이다.
"당신 인생에서 최고의 해는 편안히 앉아서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이거다 싶으면 당장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코 누리지 못할 비전이다."
- 탁월한 인생을 만드는 법,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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