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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일까?

나와 아내는 더 이상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나와 아내는 더 이상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최근에 세 돌을 맞은 아이가 생긴 이후니까 만으로 근 4년이다. 이제 그만 한 것도 아니고 때때로 아내와의 로맨틱한 밤을 보내는 것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도 아내도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시간도 에너지도 언제나 태부족이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섹스리스로 지내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사이 좋게 손 잡고 다니는 부부가 되자고 아내와 한 번씩 다짐한다. 이렇게 잔잔하게 오래 가는 사랑을 하자고 생각하지만, 문득 벌써부터 이렇게 잔잔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열정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이 워낙 보편적이라, 과연 열정이 없는 사랑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식의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아내에 대한 나 자신의 사랑, 나에 대한 아내의 사랑, 나의 사랑에 대한 아내의 생각, 이런 식으로 의심의 대상이 늘어난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사랑에 대한 거의 모든 질문

로라 무차, 2019, 러브 팩추얼리, 비잉

이 책은 저자가 평생에 걸쳐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낸 바를 정리한 책으로, 진지하게 진행된 프로젝트만 10년이 넘는 집착의 결과물이다.
"내 기억이 떠오르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인간관계에 대해 물었다. '심문'을 했고, 비공식적인 '인터뷰'를 했다. ..중략..
 이후 10년 넘게 나는 공항과 상점, 시장, 카페, 레스토랑, 술집, 병원, 공원, 미술관, 도서관, 박물관, 버스, 기차, 비행기, 배 등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 러브 팩추얼리, p5.
저자는 다양한 국적, 인종, 종교, 직업, 나이의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사랑에 대한 그들의 개인적인 삶과 견해를 모으고, 이를 심리학 철학 등의 학문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한 일반화시키려 노력했다. 저자가 어느 정도로 이 주제에 천착했는지 정량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참고문헌의 수이다. 책에 보면 무려 1,112개(!)의 참고문헌이 정리되어 있는데, 내가 '아 이거 좀 많은데, 직접 세어 볼까?' 하고 시작했다가 굉장히 고통스러운 30분을 보낸 끝에 센 수이니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참고문헌의 마지막 페이지. 하나씩 넘버링을 다 하다가 200번 쯤에서 포기하고 10 단위로만 넘버링했다.

이 책은 '사랑' 덕후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질문을 쏟아놓고 이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 자신의 생각, 그리고 다양한 연구 결과를 정리함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 정리한 책이다. 14가지의 큰 주제 별로 챕터가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를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사랑에 대해서 어떤 궁금증을 갖고 있더라도 대부분은 이 중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각 장의 제목과, 해당 장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질문을 내 나름대로 정리한 목록이다.
  1. 내게 약물을 주지 말라 - 왜 사람들은 불륜을 저지르는가?
  2. 사랑, 그 복잡한 말 - 사랑은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3. 열 추적 미사일 - 애착 스타일은 사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나?
  4. 내가 그 무엇보다 원하는 것 -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무엇을 원하나?
  5. 사랑을 찾아서 - 어떻게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까?
  6. 사랑을 찾는 사람들(또는 찾지 않는 사람들) -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가?
  7. 과도한 기대 - 사랑에 대한 환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8. 좋든 싫든 - 길게 이어지는 사랑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9. 이젠 웃을 수 있다 - 불륜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10. 섹스, 백조족 그리고 스윙어들 - 일부일처제는 자연스러운 제도일까?
  11. 좋은 싸움 - 갈등은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 좋을까?
  12. 하수구 위에 엎어진 채 깨어나다 - 폭력이나 학대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3. 모든 게 끝날 때 - 결별할 때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14. 뒤에 남은 사람들 - 사별은 남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나는 아내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잔잔하고 오래 가는 사랑'의 유형이 - 책에서는 동반자적 사랑으로 표현함 -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하며, 많은 경우 로맨틱한 사랑이나 욕정은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즉,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해서 나와 아내 사이의 사랑을 부정할 근거는 전혀 없다는 것.
 그렇다고 앞으로 아내와의 로맨틱한 관계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아내와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우정과도 같은 관계를 쌓아나가고 있지만 동시에 로맨틱한 관계를 더하면 우리의 관계가 더 풍성해질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조금은 어색하고 힘들더라도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 마침 책의 말미에 아주 적절한 말이 있어 나 스스로에게 해 주는 말을 대신하기로 한다.
"그러나 당신이 바라는 게 장기적이고 헌신적이며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그 정도 노력을 기울이지 못할 이유가 무언가?"
- 러브 팩추얼리,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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