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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훌륭한 독재자가 될 수 있다

나도 독재자가 될 수 있을까?

"코빌드(Cobuild) 영영 사전에는 '자신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잔인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따라서 왕이 아니어도, 잔인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곧 독재자가 된다."
- 폭군, p255, <역자 후기> 중에서.
아무래도 답은 'Yes'인 모양이다.
 책 읽고 감상을 적는 글에서 첫 번째로 인용하는 문장을 역자 후기에서 찾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너무나 핵심이 담겨 있는 문장이라 넘어갈 수가 없다. 보통 역사 시간이나, 문학 작품, 뉴스에서 만나는 공인된 독재자들은, 그 스케일이 최소 하나의 국가 단위이기 때문에 그 독재자들에 대한 비판은 할지언정 나와 내 주위에 비추어 반성하는 마음을 갖기는 어려운 것 같다. 최소한 나는 대량 학살을 저지르거나, 내 입맛대로 법을 변경하거나 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며 그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적도 가질 리도 없으니까. 그들의 잘못은 어디까지나 나와는 무관한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tyrant'를 검색하면 영영사전 검색결과로 '잔인하고 불공평한 방법으로 자신이 권위를 갖는 사람들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마침 코빌드 영어사전이다.

능력은 그렇다 치고, 마음은 어떨까?
 정치나 사회 뉴스의 댓글로 달리는 주장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만은 이미 훌륭한 독재자인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각종 혐오 발언들이나, 사회 현안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들은, 그럴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누군가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억압하거나, 누군가의 생명을 일방적으로 빼앗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작은 인간관계의 수준에서도, 상대방의 권리나 의사보다는 내 욕구가 우선 충족되기를 바라거나, 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일임에도 상대방의 손해를 바라는 일이 얼마나 흔한지, 스스로의 마음만 잘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당신도 훌륭한 독재자가 될 수 있다

"살인극의 진정한 사주자는 멕베스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다."
- 폭군, p136.
아직은 독재자 꿈나무였던 멕베스에게, 그의 아내는 이미 훌륭한 독재자였다. 멕베스의 아내에게는 무력도 권력도 없었지만, 그녀는 남편의 어두운 욕망 - 모든 어두운 욕망이 다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남편의 약한 마음을 다잡게 할 수 있는 지점 - 사내다움에 대한 의미 부여 - 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남편의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멕베스의 아내는 멕베스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도덕 관념과 왕에 대한 존경심으로 스스로 멈출 수도 있었던 멕베스의 범죄를 강제하는데 그 권력을 사용한다.
 이처럼 사회의 크기에 비하면 극히 작고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조차 권력은 존재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 및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나의 이기심이나 악의의 크기 및 대상이 이러한 권력과 짝이 맞는 순간이 독재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를 왕좌에 밀어 올린 교활한 전략은 국가 경영의 비전이 될 수 없었다."
- 폭군, p120.
앞서 '악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뚜렷한 악의 없이도, 심지어는 선의를 가지고도 독재자는 생길 수 있는 것 같다. 결과로 판단받는 정치나 비지니스 - 그러니까 회사 - 의 영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회사를 예로 들어보면, 회사라는 큰 조직은 다소간의 조정은 가능하나 큰 틀에서 이미 설계된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한 꼭지가 보통 우리가 부서라고 부르는 조직이 된다. 여기서 부서장은 부서원들에 대해서 고과권과 인사권을 부여받게 되는데, 이를 활용하여 부서원들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여 그 결과로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책임을 지게 된다. 특별히 야심을 갖고 창업을 하여 새로운 회사의 대표가 되거나, 대단히 능력을 인정 받아 기존 회사의 중역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부서장'으로서 다수의 부서원들에 대해 어떤 권력을 갖는 경우는 제법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내 일은 아니라고 무시하기는 어렵다.

처음에 알아본 독재자의 사전적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사회의 많은 부서장들은 이미 훌륭한 독재자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SNS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부서장 욕이나 사회 뉴스에서 심심찮게 다뤄지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과로로 인한 사고 등의 기사도 그 수가 훨씬 적었을테니까. 그렇다고 그 많은 부서장들이 무슨 악의가 있어 일부러 그 부서원들을 괴롭힌 것일까 하면,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그럴 리도 없다.
 그저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소시민일 뿐인 부서장들과 그 밑에서 고통받는 부서원들의 악다구니, 이 간극을 메우는 요소 중 하나가 '역량 부족'이다. 여기서 '역량 부족'이란 결과론적이며 의도를 반영하지 않는다. 회사란 태생적으로 비지니스를 하는 조직이고, 비지니스란 곧 경쟁을 의미한다. 경쟁은 결과로 하는 것이지 과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회사란 결과 중심적으로 성과를 보상하게 된다. 문제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자원의 양과 질, 자원의 투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 등의 요소이다. 어떤 부서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투입하는 기본 자원은 부서원들의 근무 시간이다. 여기서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초과 근무를 하거나, 부서원들의 역량이 더 우수해지거나, 업무 자체의 비효율을 제거해야 한다. 여기서 기본 전제는 방향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는 아무리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부서장은 첫 번째로 부서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다음으로, 부서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거나 업무를 효율화하는 것은 또다른 업무이며, 무엇보다 해 오던 일이라는 관성을 거슬러야 하기 때문에 저항이 발생한다. 따라서 부서장은 이런 일들이 또다른 주요 업무라는 관점으로 일이 추진되도록 하기 위해 동기를 부여하고 코칭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많은 부서장들이 어쩔 수 없다는 미명 하에 가장 쉽게 선택하는 해법인 초과근무는, 사실은 가장 조심해서 접근해야 하는 영역이다. 원론적으로는 단기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부서원들의 이해를 구하고 짧은 기간 사용해야 하는 해법이지만, 많은 부서장들이 목적도 없이 으레 초과근무를 사주하고, 강제한다. 그나마 만성적인 초과근무의 결과가 지속적인 성과라도 되면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눈치보기 등으로 목적도 없이 초과근무만 지속하는 경우, 부서원들의 동기, 건강, 역량이 모두 저하되는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된다. 지속적인 초과 근무로 회사 밖에서의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고, 건강 상의 문제가 발생하며, 수면 부족 등에 의해 도덕성과 인지 능력이 모두 떨어지는데다, 일할 의욕도 없어진 부서원들을 데리고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자리에 어울리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부서장이 되었을 때, 그 개인의 의도는 선할지 몰라도 부서와 부서원들에 미치는 영향은 훌륭한 독재자의 그것이 된다. 그리고 아직 부서장이 아닌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고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으며 얼레벌레 연차만 쌓아갈 때, 잠재적인 독재자 꿈나무 혹은 준비된 독재자가 되는 것이다.

독재자에 대한 교양 있는 케이스 스터디

스티븐 그린블랫, 2020, 폭군, 비잉.

셰익스피어 연구의 대가가 전치 - 라고 말하고 돌려까기라고 읽자 - 의 대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빌어 돌려까는현대 정치. 이 책은 이 정도로 소개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의 사회상으로 인해 다른 시절, 다른 나라의 얘기를 통해 은근히 돌려 말하는 작품을 만들어낸 셰익스피어가 처했던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지난 미국의 대선 결과가 나오기 얼마 전에 작가가 지인과 나눈 대화로부터 책의 기획 의도를 밝히면서 끝나는 이 책은, 그 소재인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많은 것들을 돌려서 말하는 듯하다.
 이 '돌려 말하기'라는 개념은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다루는 시대와 인물들이 현대의 개인이 동질감을 느끼기에는 다소 멀 수밖에 없어서, 작가가 조금만 더 직접적으로 일침을 가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느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작가의 직접적인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로 하여금 이런 저런 생각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은 글이라는 생각도 든다.
 차치하고, 이 책은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이런저런 독재자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무대에 등장하며, 어떤 해악을 사회에 미치고 어떤 식으로 타도된다고 생각했는지 알려준다. 책에 소개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멕베스,' '리어 왕,' '줄리어스 시저' 등에 대한 작가의 해설을 통해,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통찰한 여러 유형의 독재자와 그 특성, 사회가 독재자로부터 입는 피해와 피해를 복구하는 방식 등에 대해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를 할 수 있다. 돌려 말하기의 대상은 누구나 될 수 있고, 이로부터 나 자신을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런 독재자들의 사례로부터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덤으로 셰익스피어와 그 작품들에 대해서 조금은 운운할 수 있는 교양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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