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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욱하게 하는 사람들 (못 참는 아이, 그리고?)

못 참는 아이

아이를 둔 부모라면 오은영 박사의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라는 책을 읽어봤거나, 들어는 봤을 것이다. 아이의 육아를 고민하며 아내와 같이 이런저런 육아 관련 서적들을 사 모으던 시절 - 솔직히, 다 읽지는 못했다 - 아내가 골라온 책이다. 제목도 좋고 내 기억에는 내용도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아내는 각론보다는 이상 - 욱하는 순간 좋은 육아는 글렀다는 느낌의 - 을 강요하는 느낌을 받아 불편하더라고 평했던 책이다.

여기서 핵심은 '각론'일 것인데, 잘은 모르지만 심리학이라는 것이 자연과학처럼 딱 떨어지는 인과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주요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어떤 행동이라는 결과까지 수많은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명쾌한 정리가 불가능한데, '못 참는다' 라는 아이의 행동과 '욱 한다'는 어른의 행동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결국 '아이는 왜 이렇게 못 참는가?'라는 질문과 '나는 왜 이렇게 욱하나?'라는 질문은 풀리지 않는 채로 남는다. 어쨌든 아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부모를 시험한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면서.

말 안 통하는 부모와 직장 상사

사춘기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의 가치관이 형성된 성인이라면 대부분의 부모와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고, 심하게는 좌절스러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인생과 세상에 대한 관점, 특히 정치에 대한 관점에서 이런 충돌이 일어난다.
 건전한 토론이라는 미명 하에 정치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하지만, 서로 자기 말만 끝없이 반복하며 감정만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깨닿는 순간이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자식을 몽매한 철부지로 취급하고, 자식은 부모를 완고한 꼰대로 규정해버린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관대한 인간이라는 존재답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지는 않는다.
 부모-자식 간이 아니라더라도, 가까운 가족 간의 이러한 갈등은 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년간 봐 왔던 아버지들 사이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것을 보면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주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게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묘하게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핵심은 가치관은 충돌하는데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원하게 가족 관계를 끊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떠안으면서 욱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직장에서도 벌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조직이라는 틀을 레버리지 삼아 내 노동력을 돈으로 교환하여 생활한다. 조직의 구성원, 특히 상사와는 조직에서의 역할, 입수하는 정보 및 사회에서의 지위 등으로 인해 관점의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누구와든 관점이 충돌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지만 편하지 않은 일인데, 조직을 통해 레버리지를 만들지 않으면 내 노동력으로 교환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들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조직을 떠나지 못하고 같은 스트레스를 떠안는 것이다. 심지어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적 경제적 능력이 역전되는 부모-자식 관계와 달리, 상사-부하 관계는 어지간해서는 바뀌지도 않기 때문에 쌓이는 화를 폭발시킬 수조차 없다.

이 같이 주변만 조금 살펴봐도,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완고해진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완고함이 관점의 차이를 좁혀질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바꾸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 고통을 만드는 것 같다. 마치 코너에 몰려서 펀치를 맞는 것 같달까.
 그렇다면 사람은 왜 나이가 들수록 완고해지는 것일까?

뇌의 발달 상태에 따른 신경생물학적 운명론

한나 크리츨로우, 2020, "운명의 과학", 브론스테인.

결국, '인간은 왜 이 모양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현 시점에서 최신의 대답은 인문학이 아니라 과학, 그 중에서도 소위 뇌과학에 있는 것 같다. '뇌'라는 것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어떻게 동작하고, 어떻게 발달하며, 어떤 한계를 갖는가? 이걸 이해하면, 아이가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이유와, 부모는 왜 고집불통인가, 상사는 도대체 왜 말이 안 통하는가 등도 아쉬우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관용을 낳는다. 항상은 아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관용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관용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차이를 화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바꿀 수 없는 관계라는 코너에서 날아오는 펀치를 솜방망이로 만들어 나 자신과 내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지켜낼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한나 크리츨로우의 "운명의 과학"은 이와 같은 이해를 돕기 위한 지식으로 가득하다. 저자가 보이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배경에 있는 신경과학적 지식과 그 함의는 생물과 인간의 뇌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 충분하고, 아이의 뇌와 청소년의 뇌, 성인의 뇌와 노년의 뇌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람의 행동이 어떤 '운명적'인 영향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다.

"도달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종착지라는 개념으로 운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 운명의 과학, p23.
여기서 '운명'이란 으레 얘기하는 '미리 결정되어 바꿀 수 없는 종착지'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어지간한 노력과 운이 받쳐주지 않으면 '대체로 도달하게 되는 종착지'라는 관점에서 일반적인 사용 의미와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얘기하는 생물학적 결정론은 유전적 요인이 이 '종착지'를 대체로 결정하고, 이를 바꾸려는 시도가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기는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실험실의 어떤 쥐에게 부여된 생물학적 '운명'은 그 쥐가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수준의 언어 능력을 개발해서 실험자와 대화하는 종착지는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쥐라는 생명체가 물려받은 유전 정보 내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이므로, '운명'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람을 예로 들면,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극히 일부만이 만성적인 수면 부채을 견딜 수 있고, 대부분은 만성적인 수면 부채로부터 심각한 손해를 입는 '운명'을 타고 난다(따라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양질의 잠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가 한창 짜증을 부릴 때는 가끔 아이의 앞이마겉질과 언어회로를 빨리 키워서 발달 중인 나머지 뇌 영역과 빨리 연결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다."
- 운명의 과학, p44.
'종착지'라는 표현 때문에, 뭔가 긴 시계열에서만 '운명'을 이해해야 할 것 같지만, 내 이해로는 특정 시점의 발달 상태에 있다는 것이 그 시기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의 아이는 생후 12개월 전후까지는 걸을 수 없다는 운명을 갖는데, 거꾸로 얘기하면 이 시기의 아이는 뇌와 신체의 발달 정도에 의해 벌떡 일어나 달릴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해당 시기의 아이는 반복된 실패 - 걷고 싶은데 자꾸 넘어지는 - 속에서 좌절하고 화가 나지만, 이를 적절히 다스릴 수 없다는 운명 또한 지니고 있다. 이는 아이의 뇌 발달 수준에 비해 감정을 다스리는 행위가 너무 고도의 뇌 활동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이는 생후 3년 전후로 비로소 나아질 기미가 보이고, 그 후로도 상당 기간 많은 연습을 거쳐야 나아진다고 한다.
 이걸 이해하면 아이의 주의력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자제력은 왜 또 그렇게 형편 없는지, 어째서 항상 자기 멋대로만 하고 싶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이 그 시점에 아이의 운명인 것이다. 그걸 이해하고 있다면 부모인 나는 도대체 어디에 화를 내야 할까?

"10대들이 생물학을 따라 일어나는 뇌와 몸의 거친 변화들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그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고, 자기 자신의 나쁜 습관들을 고쳐 나가면서 아이들의 운명이 펼쳐지는 모습을 차분히 관찰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 운명의 과학, p69.
'질풍 노도의 시기'라고 흔히 표현하는 사춘기는 뇌의 발달 관점에서도 실제로 질풍 노도의 시기다. 10대 청소년들이 짊어진 운명은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에 대단히 예민'해지지만 '충동 조절 능력과 의사 결정 능력'은 보잘것 없는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뇌는 많이 사용되는 기존의 연결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그렇지 않은 기존의 연결을 대량으로 제거함으로써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데, 이 과정에서 말 혼돈의 시기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대체로의 10대 아이는 봄을 생각하고 중2병에 걸리며, 또래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여 일탈을 저지를 확률이 매우 높은 운명을 갖는 것이다.
 나는 아직 10대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지만, 이 시기가 되었을 때 이런 지식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혜와 경직된 사고를 정반대의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운명의 과학, p72.
노인은 지혜로우며, 한 편으로 고집스럽다.
 지혜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는 힘이고, 그 근본은 효율적으로 동작하는 추상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뇌가 특정 방향으로의 사고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강화되어온 결과로 발현되는데, 이는 곧 다른 방향의 사고는 자동적으로 배제한다는 말과 같다. 여기에 뇌의 가소성은 이를 물리적인 수준에서 확정시키므로, 뇌가 점점 효율적으로 세상을 바라볼수록 그 관점 외의 다른 생각은 해내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즉,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의 입장에서 '지혜'라는 것이 쌓이는 대신, 다른 방식의 생각은 점점 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개인이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지혜'가 보편적이면서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반영할수록 시간이 지나도 '지혜'로서 인정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고집'으로서 비판받을 것이다. 세상이 급격히 바뀌고 사람들이 믿는 가치가 다양화될수록 대부분의 노인들은 '지혜'보다는 '고집'을 갖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인식될 것인데, 개인에게는 '지혜'인 것이 타인에게도 '지혜'일지는 거의 운의 영역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상대적으로 젊은 내가 상대적으로 늙은 부모가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은 단지 내가 더 젊기 때문일 뿐, 부모를 비난하거나 화를 낼 일은 아닌 것이다. 전혀. 오히려 정말로 나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돌이켜보고 더 공부해야 할 것이다.

"신념은 자기만의 독특한 현실감을 통해 형성되고 또 그와 동시에 압축된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좌우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 초기에 습득한 신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 운명의 과학, p199.
모든 사람은 효율을 위해 오류를 수용한 뇌라는 신념 엔진이 만들어내는 자기만의 맞춤형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효율의 추구는 진실의 외면까지도 감수하는데, 소위 유연한 사고 - 사고의 방향 자체를 전환하는 수준의 - 는 비효율적인 사고 과정과 그에 따른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은 각자의 신념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면서 고유의 인생관,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는 고착화된다.
 이것이 인간을 어릴 때는 산만하고 늙어서는 완고해지도록 하는 운명의 정체인 것이다.

지식이 관용을 낳는다

뇌의 '가소성'이라는 특성을 소재로 수많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시리즈의 컨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산만하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아이와 욱하는 부모, 노부모의 경직된 사고를 한탄하는 자식과 여전히 아이를 철부지 취급하는 부모가 서로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고통받는다. 이 밑바닥에 '운명'에 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생물학적인 뇌의 발달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관용을 보이고, 스스로의 변화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위해 인간의 뇌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아주 좋은 출발점이며, 이 책은 현 시점에서의 최선에 가까운 지식을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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