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고, 한 번씩 극단적인 사례로 많은 사람들의 강한 관심을 얻는 주제가 '학교 폭력'과 '아동 학대'다. 조금 많이 극단적인 사례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얼마 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자극한 '정인이 사건'이 대표적인 것 같다.
아무래도 뉴스로까지 다뤄지는 사례들은, 심각한 물리적 폭력의 결과로 신체적 장애나 사망으로 이어지거나, 혹은 정신적 폭력에 못 이긴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소위 우리가 극단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인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과정은 비슷했으나 우리가 주목하는 극단적인 결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수많은 사례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심각한 아동 학대가 일어났지만 신체 장애나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상당한 가정 폭력이 지속됐지만 어찌어찌 살아간다, 학교에서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해 괴로운 마음에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이후로 다시 엄두는 나지 않는다, 등등... 당사자들에게는 차고 넘치게 괴로운 상황이 어떻겐가 지나가고 나면, 어떻게든 사지 멀쩡히 숨쉬고 있으니 나머지는 모두 이들의 정신력 문제가 되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 마음과 몸의 관계를 흡사 종교와 정치 사이처럼 여기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 p427.
뉴스로 다뤄지지 않지만 사실은 심각한 많은 문제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막연한 생각 속에는 분명히 이런 관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유명한 데카르트가 주장한 심신이원론에 따라 마음과 몸은 완전히 별개의 존재이고, 극히 최근까지도 유지된 의학계의 정설에 따라 뇌에서는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는 사실일 것이다. 물리적 폭력 등 어떤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도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마음에 달린 문제일 테니까.
하지만 도나 잭슨 나카자와의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에 따르면 이는 완전히 거짓이다. 최근 10년(!)간 뇌과학이 새롭게 발견한 사실에 따르면, '미세아교세포'라는 존재가 뇌에 존재하는 면역체계의 핵심이며 이들이 몸의 면역계와 정보를 주고받아 뇌의 신경망을 더 효과적으로 가꿀수도, 엉망으로 만들어놓을 수도 있다.
"실제로 요즘에는 분자 수준에서 우울증 발병 경로의 대부분이 미세아교세포에 의한 신경 염증과 연관 있을 거라는 게 학계의 대세 견해다."
-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 p114.
'너무 놀라운'이라는 제목의 표현에 걸맞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걸 받아들인다면 - 사실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 정황증거는 수없이 쌓이고 있었다 -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신체적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 자가면역질환을 갖고 있다면 같은 류의 문제가 뇌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므로 더 조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학대나 따돌림 등 아이들이 처할 수 있는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이 아이들의 정신을 실제로 병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아동의 뇌 구조를 물리적으로도 변화시킨다."
-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 p109.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구의 지배적인 종으로 군림하고, 개체로서의 인간이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기 위한 핵심적인 능력이 뇌에서 형성되는 '정신 능력'이라는 점에서, 학대나 따돌림 등의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은 한 아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뇌발달을 이루어내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퇴행시키거나, 이후의 퇴행 위험을 높인다는 점에서 인생의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최근 전인(全人)적 교육(敎育)이라고 하여 인간이 지닌 모든 자질을 조화롭게 발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철학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거꾸로 이러한 자질을 전반적으로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아동학대나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과 같은 문제는 전인(全人)적 폭력(暴力)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데카르트의 고견도, 300년을 군림한 의학의 기존 정설도 이보다 더 자명하게 틀릴 수 없다."
-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 p432.
기존의 이론을 고수하던 학자들이 다 죽어야 새로운 이론으로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난다는 농담마저 존재하는 과학계에서,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견해 변화가 일어났다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그냥 믿으면 되는 수준의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떤 면에서는 덜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수 있는 아동학대, 학교폭력 및 왕따 문제 등에 대해서,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이러한 전인적 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잘 보이지 않는 폭력적인 요소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
"지난 10년간 쏟아져 나온 최신 뇌과학 지식은, 나는 누구이며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우리 스스로 헤아리는 사유의 틀을 근본보터 다시 세운다."
-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 p429.
여담인데, 꼭 학대나 폭력까지 가지 않더라도 나부터 내 아이가 어떤 스트레스 상황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살피고, 나 자신은 어떤지 살핌으로써 더 나은 삶을 영위할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뇌세포 이야기는 너무 놀라울 뿐만 아니라 너무나 중요하다. 심지어 작가의 글솜씨도 굉장해서 술술 읽히기까지 하니 일독을 권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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