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주커만,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로크미디어, 2021.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스티브 코헨, 레이 달리오도 이 수치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p16.
1988년에서 2018년까지 꽉 채운 30년간 연평균 66%의 수익률. 제임스 해리스 사이먼스(이하 짐 사이먼스)가 설립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헤지 펀드 메달리온의 수익률이다. 간단하게 30년간 연평균 66%라는 수익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숫자인지 알아보자면, 1988년에 100만원을 투자했다면 - 물론 펀드의 수익을 이런 식으로 완전히 향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2018년에 대략 4조원이 되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성공을 기반으로 짐 사이먼스는 2021년 5월 기준 $25.2B의 자산을 가져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수학자' 또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억만장자'의 지위를 갖고 있는데, 그레고리 주커만의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는 짐 사이먼스와 그가 세운 회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성공을 거뒀는지를 추적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특별 작가이자 최고 수준의 경제/금융 전문 언론인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풀어내는 특별한 성공의 이야기는, 책 앞/뒤 표지에 기재된 '뉴욕 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파이낸셜 타임스, 맥킨지 선정 올해의 비즈니스 도서 최종 후보' 등의 타이틀이나 다양한 추천사에 걸맞게 흥미진진하며 큰 성공에 가려지기 쉬운 피나는 노력과 운의 요소들을 상세히 알려준다.
500 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얇지만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훌륭한 글솜씨로 몰입감 있게 풀어낸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 여기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의미에서 천재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다 - 돈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로 밤낮 없이 노력했음에도 고통스러운 실패의 과정을 기약없이 겪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토록 추구한 성공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인지하는 큰 성공은 사후에 알려지기 때문에 어떤 천재가 어느 날 갑자기 보통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한 성공의 공식을 찾아내서 쉽게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비춰지기 쉽다. 하지만 그 과정을 풀어낸 이런 책을 보면 그게 단단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서 몇 가지 인상적인 구절들을 나눠보려고 한다.
잠복기 - 라고 쓰고 '기약 없는 개고생'이라고 읽는다
"그러나 사이먼스는 훗날 그 일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p80.
1978년 학교를 떠나 자신의 투자 회사를 설립할 때의 사이먼스는 40년 뒤 거둘 거대한 성공에 대해 별다른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학계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그에게는 또다른 도전할 거리가 필요했고, 부에 대한 갈망이 있던 그에게 금융시장은 좋은 도전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소위 '천재' 소리를 들을만한 재능과 업적의 소유자로서 자신에 대한 믿음은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짐 사이먼스는 자신이 도전이 어느 정도 어려운 것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스트라우스는 그 펀드에 무기한으로 투자할 수 있는 특별한 대우를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비슷한 전망을 보이는 다른 펀드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p241.
르네상스의 거대한 성공의 초석이 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산도르 스트라우스는 회사의 이전 등에 대한 짐 사이먼스와의 이견으로 회사를 떠났고, 메달리온 펀드의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를 수 있고, 이러한 요소로 인해 어떤 조직을 벗어나는 결정 자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본인이 노력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던 시스템과 그 조직이 추후에 어떤 성공을 거둘지는 예측이 어려웠던 것 같다. 스트라우스는 본인이 기여하던 시스템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았고, 이후에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브라운과 머서는 패터슨의 편지를 가장 가까이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p256.
IBM에 재직하던 브라운과 머서에게 영입 제안을 하던 당시의 르네상스는 추후 르네상스의 최고경영자까지 올라가는 이 두 명의 영입 후보에게 조금의 기대도 심어주지 못했다. 이 둘은 르네상스에 합류한 이후 르네상스의 자동화된 트레이딩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전까지 성과를 내던 선물 트레이딩을 넘어 주식 트레이딩에서도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회사를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이 중 머서는 르네상스에서의 성공으로 얻은 부를 사용해 '그' 도널드 트럼프를 2016년 대선의 승리자로 만드는 데에까지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이만큼 막대한 성공은 이들이 처음 르네상스의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도, 르네상스에 합류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르네상스의 주식 트레이딩이 온갖 기술적인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 때도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사이먼스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두 번의 비극을 겪었다. 그 사고들은 확률이 아주 낮은 특이한 경우이며 전혀 기대하지 않았으며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p359.
짐 사이먼스는 40년에 걸쳐 금융 시장의 신호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여 시스템적인 트레이딩을 통해 큰 성공을 쌓아가는 동안 - 갑자기 거둔 것이 아니다 - 두 명의 아들을 잃는다. 개인의 영역에서 이러한 비극은 어떤 모델로도 예측이 불가능하며, 비극의 대상이 사이먼스 자신이었거나, 그가 이런 비극에 파묻혀 어떤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심지어 자신의 야망을 잃었다면 지금의 거대한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금융시장 안에서조차 르네상스와 그의 성공에는 수많은 운적인 요소들이 존재하는데, LTCM의 몰락으로부터 모델링을 맹신하는 위험을 깨닫지 못했다면, 모델링과 시스템에 대한 믿음보다도 인간의 인지적 편향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렸다면, 이 배치되는 두 가지 관점 사이의 균형을 어느 순간 잃었다면 마찬가지로 지금의 거대한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복잡계에서 비선형적으로 나타나는 거대한=극단적인 성공은 사후적으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성공의 과정에서는 온갖 실패와 개고생만 보이지 다가올 성공은 보이지도 보장되지도 않는다. 성공하고 나면 비로소 이전의 온갖 실패와 개고생들이 연결되면서 성공의 길이 선명해보이는 것이다. 이게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졸업 축사에선가 얘기했다는 'Connecting Dots'의 개념인데(살아 있을 땐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가 뭘 좀 알게 될수록 참 대단한 양반이다 싶다), 우리가 이런 책을 읽으면서 간접 체험해야 하는 건 이렇게 점을 찍을 땐 연결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고,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앞으로 어떻게 연결될 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해서 점을 크고 분명하게 찍어야 한다는 점인 것 같다.
이 할아버지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사이먼스는 아직 이루지 못한 야망을 충족시킬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일상생활을 계속 유지했다."
-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p471.
여든 살의 억만장자가 아직도 '야망'이라 걸는 위해 매일 운동하고, 건강을 관리하며, 자신의 부를 사용해 어떻게든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을 앞당기려고 시도한다. 이 '야망'이야말로 성공과 그 과정에 지나지 않으면 안되는 잠복기를 이겨내게 하는 동력이 아닌가 싶다.
이미 성공한 사람에게서 보이는 크고 가슴 뛰는 야망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다.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 아이에게 모범이 되는 부모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소박하게 '꿈' 혹은 '희망' 정도로 불러도 상관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인지해야 하는 것은 '야망'이라고 불릴만한 목표가 있다고 경제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성공 자체 혹은 이를 필요로하는 충분히 큰 목표가 없다면 여기에서부터 거대한 성공을 얻을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크든 작든 야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를 충족시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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