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실전이다>를 읽고, 참 좋은 책이긴 한데 80편짜리 에세이 모음집이다보니 나는 뭘 갖고 글을 써보나 고민을 하다가, '평범한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나는대로 써 보기로 했다.
아마도 취업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XX 지원자께서는 꿈이 무엇인가요?"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아봤을 것이다(이것도 트렌드를 따라서 요즘에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런 질문을 처음 받으면, 혹은 받을 거라고 처음 알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당황하거나 속으로는 살짝 짜증이 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신이 나서 자신의 꿈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는 걸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요구받을 때, 마치 꾼 적도 없는 돈 갚으라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될 테니까.
이런 질문이라는 건 마치 '누구나 크고 가슴뛰는 꿈을 하나 둘 정도는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 아냐?'라는 태도의 발현인데, 정작 그 질문을 하는 면접관 본인은 이런 꿈이 있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게다가 사실 회사라는 게 직원 꿈 이뤄주자고 존재하는 곳도 아닌데 구인의 과정에 이 질문이 왜 필요한 것인가.
내 경험을 돌이켜보자면, '훌륭한 아버지이자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했다가, '이 회사 다니면서 쉽지 않으실텐데..'로 시작하는 약간의 비웃음 섞인 반응을 샀던 것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개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목표라는 점에서는 내 꿈은 동일하다. 다만 이건 '꿈'이라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꿈이고, 솔직히 꿈이라기에는 조금 막연한 것도 사실이라 내세우는 꿈은 '없는' 상태로 찾고 있는 것일 뿐.
사실 개인의 꿈이 꼭 다른 사람 영감 주라고 가져야 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이런 것은 조직의 리더가 만들고 보여줘야 할 '비전'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런 면에서 당시 내 면접관이었던 임원들 본인은 어떤 꿈과 비전을 갖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조직원들을 고무시켰을지 궁금한 마음도 있지만, 이제와서 딱히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는 평범한 행복에 대한 꿈, 이를테면 '훌륭한 아버지이자 좋은 남편이 되는 것', '하루하루 욕심부리지 않고 만족하는 삶', '평범한 행복' 등 누군가 질문하면 마지못해 짜내는 꿈들은 일견 평범하다. 그런데, 이게 정말 '평범'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쉬운' 걸까?
여기에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평범한 사람이 아닐 거다. 아마도 수신(修身)제가(制家)는 이미 했고 이제 나라를 다스리거나 천하를 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리고 책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기에, 평범한 행복이라는 게 평이하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닌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평범함'이라는 가치는 모호하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화하며 자원을 집중하기 어렵다.
- 평범한 건강, 평범한 자산, 평범한 벌이, 평범한 평판, 평범한 배우자, 평범한 자녀 등등.. 평범한 조건이 많아질수록 그 모두가 달성될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한다.
- 그 자체로 복잡계인 세상이 주는 보상은 구조적으로 상당한 노력에 적당한 보상을 주지, 적당한 노력에 적당한 보상을 주도록 되어 있지 않다.
Pareto Distribution (출처: Wikipedia)
1번은 '목표는 명확하며 측정 가능해야 달성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다면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뭐가 '평범'한 것이고, 어떤 조건이 만족되면 내가 '행복'하게 느끼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그걸 추구하기 위해 가용한 자원을 집중하고 부차적인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 테지만, 반대로 옆을 돌아볼 때마다 좋아 보이는 게 계속 바뀐다든지, 내가 무엇에 행복한지를 모른다면,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살다가 문득 이게 아니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2번은 확률이론과 확률프로세스를 배운 정통 공돌이로서 얘기하자면, 평범의 상징과도 같은 가우시안 랜덤 변수 여러 개를 곱하면 이 합성된 변수의 분포는 더 이상 가우시안 분포가 아니라는 말이다. '평범한 XX'의 조건이 많아질수록, 하나라도 평범하지 않을 가능성 – 다른 말로 불행할 위험 – 이 커지는 것이고, 이것을 시간축에서 미래로 계속해서 확장시키면, 음.. 한숨이 나오는 개념이 되는 것이다. 지금 평범하기도 쉽지 않은데, 내일 평범하고, 모레도 평범하고, 평생 평범하게 행복하하다는 흔치 않은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은 확률적으로 굉장히 어렵다는 것.
3번은 2번과 연결된 것인데,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이라는 유명한 개념의 밑바닥에 있는 파레토 법칙 혹은 멱분포(파레토 분포)다. 공저자인 신영준 박사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기도 하고, 나 또한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라는 복잡계를 지배하는 분포는 정규분포가 아니라 이 멱분포이고, 네트워크에서 노드와 연결의 수, 학계에서 논문과 인용의 수, 백화점에서 고객과 매출량, 경제에서 개인과 부의 관계는 모두 이 분포를 따른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중요한 얘기냐면, 중간값과 평균값이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평범함'에 대한 우리의 기준치는 평균값에 맞춰져 있는 반면, 이 평범함을 달성하기 위해 보통의 사람들이 투입하는 '적당한' 노력과 성과는 중간값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쉽게 정리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은 '적당한 노력'으로 '적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지만, 현실은 불확실성 때문에 적당한 노력이 아니라 '충분한' 노력으로 '적당한 보상'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간극만큼 평범한 삶은 현실에서 말어지게 된다.
- 인생은 실전이다, p30.
우리는 '평범'을 얘기할 때, 으레 적당한 노력과 평범한 보상을 떠올리지만 평범한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데, 여기에 던바의 법칙 - 한 명이 실질적으로 맺고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수에는 제한이 존재한다는 - 과 가용성 편향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생각하는 '평범함'의 기준이 되는 비교집단에 따라 보상과 노력의 기준이 모두 맞춰진다면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이 얻는 보상만 뉴스에서 보지, 그들이 투입한 노력은 접하지 못한다. 이렇게 '평범한' 보상에 대한 기대치는 이렇게 미디어에 끌려올라가고, '적당한' 노력에 대한 기준은 내 준거집단에 고정되면, 평범함은 안드로메다로 멀어지는 게 아닐까.
이게 우리가 명확하고 측정 가능하며 내 가치관에 정합되어 있어 기준점이 나 자신인 '꿈'을 찾고 좇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강화하고 정리할 기회로 삼기에 <인생은 실전이다>는 탁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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