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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시궁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닌 이유

"***님은 여기 남아서 더 많은 역할을 해 주시는 게 조직에 더 크게 기여하는 선택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기대도 안 하던 해외연구소 주재원 기회가 있어서, 고심 끝에, 그리고 아내와 상의 끝에 도전해보기로 했었다. 아내의 커리어 문제와 아이의 교육 문제, 그리고 해당 연구소 조직과의 협업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나에게는 당연하고, 조직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마음을 굳힌 것인데, 이 기회를 나에게 줄 수 있었던 내 부서장은 나에게 이 기회를 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어느 누구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상대방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 권력의 원리, p26.

위의 사례에서 해외연구소 주재원의 발탁 기회는 나에게 매우 가치 있는 자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으레 주재원 생활을 할 때 주어지는 경제적인 혜택이 상당히 크기도 했거니와,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가 하기 마련인 아이의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이민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나은 솔루션을 제공해준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한국과 시차가 크지 않은 곳이라 아내가 지금의 직장을 유지하면서 원격 근무를 할 수 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은 지역이었고, 40대라는 인생의 전성기에 커리어의 스펙트럼 이동을 극히 낮은 기회 비용으로 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조직이 그 연구소와의 협업 과정에서 낮은 효율을 극복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재원에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조직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주재원 생활이 영원하지도 않고, 나의 향후 10년 목표 중 임금에 관련된 첫 번째는 이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이었던 터라, 지난 10년간 지금의 조직에서 쌓아 온 커리어를 완전히 훼손시키는 선택을 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이는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될만한 기회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었던 내 부서장에게는 이게 다 무가치한 일일 뿐이었다.

줄리 바틸라나, 티치아나 카시아로, "권력의 원리", 로크미디어, 2021.

줄리 바틸라나, 티치아나 카시아로, "권력의 원리", 로크미디어, 2021.


"일반적으로 힘은 설득이나 강요를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능력을 일컫는다."
— 권력의 원리, p25.

'설득 혹은 강요를 통해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니, 이토록 깔끔할 수가 있을까 싶은 그런 정의다. '일반적으로 일컫는다'는 건 내가 무식했다는 뜻이겠지. 설령 실제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하더라도, 간단하면서 핵심을 담은 '모델'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영향력 자체를 높이기 떄문에 매우 중요하다. 줄리 바틸라나와 티치아나 카시아로의 <권력의 원리>는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 속에 존재하지만 잘 모르는 '힘' 혹은 '권력'이 형성되고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명확한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권력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 힘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힘은 소유할 수 있는가?
  • 힘은 그 자체로 더러운가?
  •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나?
  • 조직도에서 권위와 권력은 같은가?
  • 권력은 어떻게 계층화되고 고착화되는가?
  • 이미 계층화된 권력은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가?
  •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책을 통해 이런 질문들에 대해 저자들이 제시하는 답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맺는 관계 속에 존재하는 힘들을 돌아보게 된다. 예를 들면, 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협박을 하게 되는지라든지, 서로 사랑한다는 연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일들이라든지, 혹은 내가 다니는 이 직장이 이토록 시궁창인 이유라든지.


"사람들은 대체로 권위나 계급을 권력과 동일시하는 실수를 범한다."
— 권력의 원리, p12.

회사의 조직 구조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것을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과연 같은 것일까? 책에 따르면 답은 '아니오'이다. 힘이나 권력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서로에게 가치 있는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부서장이 부서원에 대해 막강한 권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부서원이 힘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나를 고용하는 회사라는 존재는 나의 노동력을 구입함으로써, 안전과 자존감이라는 보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돈'이라는 가치 있는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나에 대해 힘을 행사한다.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 근로 계약 상의 성실 근로 의무에 대한 판단을 통해 근로 계약을 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인데, 마찬가지로 회사가 고용한 직원일 뿐인 내 부서장은 과연 나에 대해서 어떤 자원에 대한 통제를 통해 힘을 행사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부서장이 통제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원은, 평가와 업무 기회 그리고 인정 뿐인 듯 싶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욕하는 부서장들은 인정을 주지 않고, 그들이 주는 업무 기회는 기회가 아니다. 그들이 그나마 줄 수 있지만 그마저도 회사의 인사규정에 메여서 충분히 줄 수도 없는 자원은 평가 하나인데, 이게 과연 나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자원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요컨대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의존도를 높이려면 자원을 제공하는 소수의 무리에 들어 내가 제공하는 자원에 상대방이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도록 하면 된다. 반대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존도를 낮추려면, 상대방이 제공하는 자원의 가치를 약화하거나 해당 자원을 공급하는 대안을 찾아 상대방의 지배력을 낮추면 된다."
— 권력의 원리, p42.

나쁜 부서장이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인 평가는 일반적으로 임금 상승이나 직급 상승에 영향을 줌으로써, 돈이나 명예와 같은 가치를 통제한다. 하지만 내가 근로 소득 외에 유의미한 수준의 가외 소득을 가지고 있거나, 회사 내에서의 직급과 무관하게 동료들로부터 그리고 나 스스로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근본적으로 그 부서장이 나에 대해서 가지는 힘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부여하는 수준에 달리게 될 것이다.

사실 어떤 부서장이 그 부서의 대표로서 상위 조직에 혹은 회사에 제공해야 하는 산출물의 양적인 면에서 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꾸로 얘기하면, 그 부서장에게 가치 있는 자원인 산출물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부서원이지 부서장이 아니다. 따라서,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서장과 부서원의 관계에서 부서원이 힘의 균형을 자신 쪽으로 가져올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이 생산해내는 산출물의 양과 질 모두 대체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먼저인 듯 싶다. 이는 결국 실력, 결국 올바른 노력론으로 연결되는 얘기라 불편할 사람도 많겠지만, 아무래도 이게 진실인 듯 싶다.

내가 실력이 있는지에 따라 내 부서장에게 미칠 수 있는 나의 힘은 커질 수 있다. 내가 부서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수록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의존도를 높이는 '통합' 전략에 다가서는 것이고, 내가 부서에 기여하는 바를 부서장에게 명확히 인지시키는 것은 '유인' 전략에 해당하겠다. 거꾸로 내가 부업이나 투자를 통해 안정적으로 노동 소득을 대체해낼 수 있으면 회사가 제공하는 임금이나 부서장이 제공하는 평가에 대한 대안이 생기므로 '확대' 전략을 수행한 것이 될 것이다. 이제 부서장이 줄 수 있는 평가라는 자원은 마음가짐의 문제에 더 가까운 것이 됐다. 내가 여기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철회' 전략을 적용할 수 있다면? 더 이상 특정 부서장이 나의 직장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요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힘에 관한 한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윤리적 결정의 순간과 마주한다. 힘을 얻을 것인가, 어떻게 얻을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 권력의 원리, p52.

물론 여전히 권위의 문제, 동료와의 문제, 그리고 스펙트럼이나 관점의 문제는 남는다. 나에게는 나쁘기만 한 부서장이지만, 사실은 내가 좋지 못한 동료이자 부서원일 수도 있는 것이고, 다소 나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큰 틀에서는 좋은 면이 더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모든 요인들을 다 무시하고 부서장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 힘의 균형을 내 쪽으로 가져오고 싶다면, 결국 실력이 핵심이다. 힘에 대해서 마주해야 하는 세 가지 윤리적 결정의 순간과 마찬가지로, 실력에 대해서도 동일한 순간을 마주할 것이다. 실력을 키울 것인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첫 번째 결정을 했다면, 회사가 아니더라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며, 궁극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함으로써 실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고통을 이겨내고, 부서에서의 힘의 균형을 조정하고자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험에 대한 헷지를 함으로써 모멘텀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졸꾸러기 커뮤니티는 상대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커뮤니티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이름은 조금 챙피하지만..


'남아서 더 많은 기여'라는 지표만을 내세워서 나에게 정말로 가치있었던 자원을 그저 없애버린 그 부서장은 그가 내세웠던 '조직에의 기여'가 장기적으로 훼손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까? 하긴, 어쩌면 그에게 '장기적'인 것들은 무엇이든 의미 없는 일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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