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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개선된다는 것

요런 북마크를 넣을 줄 몰라서, 캡쳐된 이미지에 기사 링크 검ㅡ.ㅡ;

삼성에서 요런 인사제도 개편안을 내놨다고, 기사에 난 걸, 지인에게 카톡으로 받아서, 그제서야 알았다. 왜 이 놈의 회사는 큰 소식은 죄다 이렇게만 받는지... 아무튼 읽어보니 큰 변화이면서, 내가 생각했던 방향성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개편안이 언급되고 있어서 감상이랄까, 소회 정도를 끄적여보려고 한다.


요지는 업적에 대한 보상과 능력에 대한 보상을 분리하는 것이다.

당해의 성과에 대해서는 연봉 인상률로, 누적된 능력의 보상에 대해서는 승격으로 보상하는 개념인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성과란 능력과 기회와 운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의 능력이라는 요소는 성과를 달성할 확률을 높이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그마저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이 연결고리조차 끊어지게 된다. 반면 회사의 존재 목적은 사업을 영위하여 돈을 버는 것이고, 당연히 어떤 금전적 보상은 회사가 벌어 들인 이익의 범위 내에서, 이익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게 성과에 금전적 보상이 차등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당위인 것인데, 문제는 이런 보상체계만으로는 성과를 달성할 확률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라는 요소를 강화시킬 유인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직원의 연봉이 아니라 능력이 커져야 성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이므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몇 번 기회에서 소외되거나 운이 없어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성과를 인정 받지 못하면 '어차피 안 되는' 상황으로 접어들면? 그 사람은 외적 동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고 이 상태에서 내적 동기를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게다가 이건 제법 민감할 수 있는 얘기긴 한데, 고용이 유연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만큼 사업에 고정적으로 부담을 주는 요소는 없기 때문에, 회사는 망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건비의 상승을 최소화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제한적인 총 추가 연봉인상율을 나눠주는 구조로 성과 보상 체계가 디자인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다시 고용이 유연하지 않은 상황과 경제 자체의 저성장 국면, 즉 평균 근속 년수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을 대입하면 성과만을 기반으로 한 기존의 고과-승격 체계가 왜 구조적으로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이 두 개의 체계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모두에게 돌아갈 수는 없는 연봉 인상이라는 당근 대신, 기회가 없거나 운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성과에 대해 인정받지 못해왔더라도 본인의 능력을 갈고 닦아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본인이 증명하고 동료나 부서장들로부터 인정받으면 승격이라는 명예는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당근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건데, 당연히 능력과 성과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존재하므로 성과 없이 능력'만'으로의 승격이 실제로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제도가 이걸 막는 것과 명목 상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의 차이는 명확하다. 따라서 그저 내 개인적인 판단에, 사람들의 관심은 차상위 고과부터의 절대평가 전환이나 페이존 폐지 등 고과와 보상 체계에 쏠리겠지만, 핵심은 역량 평가의 폐지와 역량 진단에 기반한 승격 심사가 될 것이고, 삼성 내 어떤 조직이나 개인의 기회나 혼란은 다 여기에서 기인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삼성의 인사는 바보가 아니다.


그럼 이제 시스템은 그렇다 치고, 이걸 운영하는 문제는 어떨까?

앞서도 언급 했듯이, 문제는 역량진단의 결과나 승격심사의 결과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어차피 보상의 총량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많은 사람을 완벽한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울 수도 없으며, 이제는 다들 알고 있는 가용성 편향과 손실회피 편향을 고려할 때 모두가 공정하게 느끼는 진단 혹은 심사 결과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핵심은 결국 프로세스인 것이고, 결과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 결과를 만들어낸 누군가의 판단에는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그 판단의 총합을 만들어낸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어야만 이 시스템이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프로세스는 삼성의 인사 제도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다. 각 단위의 부서에서 자신들에 맞는 프로세스를 고민하고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이게 말처럼 쉬울 리 없다. 기존에는 시스템의 부조리나 부서장의 무능 혹은 아집을 탓하고 말면 됐던 문제가 모두의 책임이 되는 문제니까, 리더십의 부재를 탓만 하다 리더가 되는 문제를 전사적으로 겪는 거라고 생각하면 설명이 좀 될까 싶다.

수시 피드백이나 동료평가 등의 장치들은 다 이런 고민의 결과로 나온 것일 거고, 특히 제도가 바뀌는 초기에 이런 것들을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개인 및 조직과 그렇지 않은 개인 및 조직이 겪을 혼란이나 가져갈 보상에는 큰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

개인의 수준에서 이런 제도 변화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본인이 어떤 업무를, 어떤 의도로, 어떻게 수행했는지 잘 정리해두는 것일 것이다. 보통은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만 경력을 마무리하겠다고 한다면 굳이 만들 필요는 없었던 '포트폴리오'라는 것일텐데, 이게 되려 괜찮은 인재의 유출을 부채질하지는 않을지... 하는 개인적인 관전 포인트를 가져본다. 다시 평가의 관점에서 이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조직 전체적으로 추가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장치들을 평가의 공정성 제고를 위해 마련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모두가 이 변화에 고통받는 초기에 내가 제공하는 포트폴리오의 질은 곧 내가 받을 평가의 질에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잡설로 시작해서 길어졌는데, 아무튼 어떤 시스템이든 개선될 때는 기본적으로 전체의 효율 향상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스템이 개선되려면 비효율이 제거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모든 개체의 고통 대비 보상 비율이 개선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의 가장 거대한 버전이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언급한 농업혁명이 아닐까?

아무튼, 시스템이 개선될 때 그 안에서 불확실성과 기회가 같이 오는 법이고 당연히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건 식상하지만 명백하다. 나와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 이 변화가 기회이려면 이번에도 또 이 악물고 하는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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