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lgguuuuuuuuu~ World!!"이런 느낌일까, 신박사님이 한 번씩 언급하는 '이기적 이타주의자의 커뮤니티'라는 것은? 적당히 가벼운 느낌이 신박사님 취향일 것도 같지만 어찌 보면 너무 날리는 느낌도 있어 실제 채택은 무리겠다. 어쨌든, 망상은 자유니 내 멋대로 이름은 <졸꾸월드>로 지어 놓고, 이 가상의 플랫폼에 대해서 망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졸꾸월드>는 이기적 이타주의자들이 자유롭게 서로와 사회에 도움이 될 어떤 가치를 주고 받는 플랫폼이다. 여기서 교환되는 가치란 Net+Working을 위한 종류 불문의 역량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 그 대가는 다른 역량을 제공하거나, 혹은 가치의 보편적인 평가 기준인 돈을 통해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플랫폼의 참여자들은 각자의 역량과 이타적인 성향에 따라 플랫폼 내에서의 영향력을 갖게 될 텐데, 이기적 이타주의자의 역량이라는 것은 우선 스스로와 주변을 이롭게 한 다음 흘러 넘쳐 사회나 타인을 이롭게 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이런 기준에서 재미 삼아 레벨을 나눠 보자면 위에서부터 졸벤저, 졸꾸러기 및 졸꾸바라기 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 '졸벤저'는 수 차례 소개된 바와 같이 생계 문제를 이미 해결한 이타주의자다. 생계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옛 말로 바꾸면, 몸을 닦고 집안을 잘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니, 이 남는 역량으로 이타심만 발휘하면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크게 도울 수 있는 '졸벤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졸꾸러기'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를 돕기에 앞서 본인과 주변을 도울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단계의 이타주의자다. 이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스스로의 성장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역량과 의도를 갖고 있으면 되겠다.
- '졸꾸바라기'는 이타적인 마음은 있으나 아직 노력의 수준도 높지 않은 단계다. 아직 역량은 충분치 않으며, 노력은 막 시작했거나 아직 일정 수준까지 기울이지는 못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갖고 있는 이타심조차도 모호하다. 아무튼 플랫폼 관점에서는 신규 유저이다.
내가 졸꾸바라기라면?
자, 이제 내가 어찌저찌 이 플랫폼에 흘러 들어온 신규 유저라고 생각해보자.덜컥 가입은 했는데, '졸꾸러기'니 '졸벤저스'니 '졸꾸'니 하는 낯 뜨거운 단어들이 넘쳐나고, 가만히 보니 인력 시장인 것도 같고 협업 공간인 것도 같고 자기계발 모임인 것도 같은 이상한 바닥이다. 게다가 여기서 나는 '졸꾸바라기'라고 불리는 뉴비고, 다음 단계인 '졸꾸러기'가 되려면 1년 동안 최소한 24권의 책을 읽어야 한단다.
지금 제정신인가?
"신뢰는 미지의 대상과의 확실한 관계다."
- 신뢰 이동, p47.
이런 상황에서 내가 <졸꾸월드>를 통해 누군가에게 내 능력을 팔거나 내게 필요한 누군가의 능력을 사려면, 혹은 뜨거운 자기계발의 분위기에 몸을 맡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플랫폼 자체가 운영되는 방식, 플랫폼을 운영하는 주체,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는 사람을 거쳐 최종적으로 그 사람이 나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어떤 가치가 '실제로' 나에게 유용할 것이라는 믿음, 즉 '신뢰'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이 플랫폼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치의 유용함과 그 가치를 획득하는 전체 과정의 안정성을 확고한 것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개념을 신뢰하고, 다음으로 회사를 신뢰하고,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 경우에 따라 기계나 로봇을 신뢰한다."
- 신뢰 이동, p108.
딱 이 말이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이기적 이타주의자' 혹은 그 지망자들이 형성하는 커뮤니티에서 교환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신뢰다. 궁극적으로 서로를 돕고 사회를 돕는 '이타적 마음'이라는 가치에 동의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는, 그럼으로써 호구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는 '이기적 태도'에 대한 공감이다.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는 상대와의 협업에서는 내가 호구로 전락할 위험이 제거된다. 이런 위험이 제거된 관계는 가치의 교환 속도를 높인다.
앞서 언급한대로, 여기서 교환되는 가치는 역량, 즉 문제 해결 능력일 것이다. 조금 부드럽게 바꾸면 '도움' 정도일까? 문제의 해결은 곧 재화이고, 문제를 해결하고 돈을 받는 것이 곧 비지니스니까, <졸꾸월드>는 비지니스 플랫폼이다. 게다가 지식을 통해서 남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높은 수준의 '지식 인출'이므로 내 지식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이기도 하다. 말인즉슨, <졸꾸월드>는 또한 자기계발 플랫폼이며, 이 관점에서는 내가 풀어낼 문제를 제공해주는 것이 곧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플랫폼에 넘쳐나는 문제해결능력이 해결할 더 큰, 예를 들면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여 제공하는 것 또한 높은 수준에서 문제 해결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전히 어색함은 제법 남았지만, 어찌 됐든 '졸꾸러기'를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자.
열심히 책을 읽고 서평을 공유하고, 책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다 보니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무엇보다 서평을 읽거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나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한 도움의 정도가 점수화되어 <졸꾸월드>에서의 내 평판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받은 도움과 준 도움의 비율은 나의 이타적인 성향을, 내가 준 도움에 대한 평가가 나의 실력을 말해 준다. 평판이 쌓이자 나에게 보이는 문제의 수준도 높아진다. 가만히 보니 알고리즘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수준을 판단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에게만 노출시키는 모양이다.
문제란 곧 비지니스 기회이므로 이 알고리즘이 얼마나 공평하게 기회를 분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느낌 상 아직은 괜찮다. 다만 플랫폼 내에서 교환되는 문제와 도움의 균형이 무너지든 실제로 알고리즘이 일부에게만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동작하든 나에게는 똑같이 기회의 박탈이라는 형태로 느껴질텐데 하는 생각은 든다.
이런 식의 모호한 느낌이라는 것이 어느 쪽으로 누적되는지가 개개인의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결정할 것이므로, 플랫폼이 유지 발전하려면 '기회'의 공정함을 지속적으로 어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플랫폼이 동작하는 방식 혹은 그 결과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다행히 <졸꾸월드>의 적극적 참여자들은 문해력도 높고 통계에도 익숙할테니, 플랫폼이 관리하는 다양한 지표들을 통계 형식으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접근이지 싶다.
앞서 언급한대로, 여기서 교환되는 가치는 역량, 즉 문제 해결 능력일 것이다. 조금 부드럽게 바꾸면 '도움' 정도일까? 문제의 해결은 곧 재화이고, 문제를 해결하고 돈을 받는 것이 곧 비지니스니까, <졸꾸월드>는 비지니스 플랫폼이다. 게다가 지식을 통해서 남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높은 수준의 '지식 인출'이므로 내 지식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이기도 하다. 말인즉슨, <졸꾸월드>는 또한 자기계발 플랫폼이며, 이 관점에서는 내가 풀어낼 문제를 제공해주는 것이 곧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플랫폼에 넘쳐나는 문제해결능력이 해결할 더 큰, 예를 들면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여 제공하는 것 또한 높은 수준에서 문제 해결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어떤 개념이든 결국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어떤 경험이 내 삶에서 가치를 창출할까? 그리고 그 가치를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이런 개념이 남들에게도 매력적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시쳇말로 호구 잡힐 일 없이 남을 도와주면 나도 도움을 받거나 돈을 벌 수 있다니! 보아하니 이미 비슷한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보이고, 뭔가 시너지가 나는 듯한 경우도 제법 보인다. 결국, 약간 오그라드는 느낌이긴 하지만 '졸꾸러기'를 다음 목표로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 신뢰 이동, p126.
졸꾸러기를 향해
"신뢰가 플랫폼에도 있고 공동체 사람들 사이에도 있어야 한다."
- 신뢰 이동, p152.
열심히 책을 읽고 서평을 공유하고, 책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다 보니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무엇보다 서평을 읽거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나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한 도움의 정도가 점수화되어 <졸꾸월드>에서의 내 평판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받은 도움과 준 도움의 비율은 나의 이타적인 성향을, 내가 준 도움에 대한 평가가 나의 실력을 말해 준다. 평판이 쌓이자 나에게 보이는 문제의 수준도 높아진다. 가만히 보니 알고리즘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수준을 판단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에게만 노출시키는 모양이다.
문제란 곧 비지니스 기회이므로 이 알고리즘이 얼마나 공평하게 기회를 분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느낌 상 아직은 괜찮다. 다만 플랫폼 내에서 교환되는 문제와 도움의 균형이 무너지든 실제로 알고리즘이 일부에게만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동작하든 나에게는 똑같이 기회의 박탈이라는 형태로 느껴질텐데 하는 생각은 든다.
이런 식의 모호한 느낌이라는 것이 어느 쪽으로 누적되는지가 개개인의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결정할 것이므로, 플랫폼이 유지 발전하려면 '기회'의 공정함을 지속적으로 어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플랫폼이 동작하는 방식 혹은 그 결과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다행히 <졸꾸월드>의 적극적 참여자들은 문해력도 높고 통계에도 익숙할테니, 플랫폼이 관리하는 다양한 지표들을 통계 형식으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접근이지 싶다.
"부동산 중개업자를 구하든, 변호사를 구하든, 베이비시터를 구하든 신뢰성의 세 가지 특징은 동일하다. 능력 있는 사람인가? 믿을 만한 사람인가? 정직한 사람인가?" - 신뢰 이동, p197.다음으로, <졸꾸월드>에서 나에게 문제를 주거나 내 문제를 풀어줄 누군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떤 문제를 제시하는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도와주려면, 그 문제를 잘 정의해주어야 할 것이다. 문제를 잘 정의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문제가 해결되어버리는 경우도 많겠지만, 반대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제된 문제 자체가 시너지를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제 정의'는 매우 중요한 역량이므로, 어떤 문제를 제시한 사람은 그 문제를 검토한 사람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낸 사람들로부터의 평가를 통해 문제 제공자로서의 평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면, 그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본인의 역량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세상은 넓고 해결할 문제도 많으므로, 내가 풀어내기 적합한 문제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높은 역량이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기에 적합한 분야의 충분한 역량을 내가 갖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모르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제대로 답해야 할 질문이며, 이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기회를 없앨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누군가의 기회를 없앨 것이며, 그 결과로 다른 문제에의 접근이 제한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 판단'이 또한 매우 중요한 역량이므로, 어떤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사람은 그 문제를 제시한 사람으로부터의 평가를 통해 문제 해결자로서의 평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문제 정의'와 '자기 판단'은 각각 문제 제공자와 해결자로서 얼마나 높은 수준의 문제를 제공/해결했는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얼마나 이 플랫폼 전체의 가치에 개인이 기여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곧 불특정 다수의 문제가 제시되고 해결되는 플랫폼에서, 맥락 의존적인 능력과 신뢰를 보완하기 위한 정직의 가치가 아닐까.
<졸꾸 월드>에서 다시 <씽큐ON>으로.
레이첼 보츠먼, 2019, 신뢰 이동, 흐름 출판. |
이제 망상의 나래는 접고 현실로 돌아오자. 현실의 나는 지금 '대교와 체인지그라운드가 함께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의 온라인 버전인 <씽큐ON>에서 읽는 세 번째 책, <신뢰 이동>의 서평을 쓰고 있는 중이다.
"현재 우리는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서 과거의 추천인이나 가까운 인맥에 의지해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던 방법과 유사하면서도 전례 없는 방식과 규모로 접근하고 있다."'관계, 제도, 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가장 작은 규모의 협력에서부터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언급한 '허구의 힘을 통한 대규모 협력'까지, 모든 규모의 협력의 근간에 있는 '신뢰'라는 주제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는 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공동체 안에서의 평판에 기댄 '지역적 신뢰'의 시대에서 계약과 법정에 대한 신뢰 집중을 통해 협력의 규모를 세계 규모로 증가시킨 '제도적 신뢰'의 시대를 거쳐, 다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로 연결된 공동체 안에서의 평판을 활용하는 '분산적 신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또한 '분산적 신뢰'는 빠르고 강력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효율적인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등 위험 요소 또한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신뢰가 향하는 곳과 책임이 존재하는 곳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신뢰 이동, p195.
이 글에서는 '분산적 신뢰' 시스템의 대표적인 형태인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신뢰가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통해 <졸꾸월드>라는 가상의 플랫폼에서의 신뢰가 형성되기 위한 조건을 생각해보는 데 그쳤지만, 책에서는 이를 넘어 블록체인 기술이 분산적 신뢰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어떤 불안 요소들이 있는지까지 다룬다. 저자는 인터넷이 불과 25년만에 대체 불가능한 개념이 되었듯이 불과 10년 정도만 지나도 '블록체인 없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빠르고 저항이 없는 분산적 신뢰의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잠시 차분히 생각하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사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나만의 소박한 방식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 신뢰 이동, p391.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은 마무리다. 하지만,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의 초입에서는 어느 누구도 변화 이후의 보편적인 가치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인의 의견을 저자의 것과 비교해보기 위해서라도 '신뢰'라는 매개를 통해 돌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발전해가는지 이 책을 통해 접해볼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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