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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커브: 페이크다 이 XX들아!

창의성과 천재 크리에이터

"이때부터 노래가 완성되기까지는 거의 20개월에 가까운 기간과 치열한 작업이 필요했다. ..그가 이 노래와 씨름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계속 조금씩 달라지는 그 노래를 듣는 데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p21.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흔히 창의성, 그 중에서도 예술적 창의성이라 하면 '영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폴 매카트니의 꿈에서 시작해 20세기를 강타한 노래가 되었다. 이는 번뜩이는 '영감'이 예술적 창의성으로 발휘된 사례의 고전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창의성에 관한 학문적 정의는 색다른, 그러면서도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만드는 능력이다."
-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p35.
창의성에 따라붙는 또 다른 단어는 '엉뚱함'이다. 사고가 발산하는 아이들의 엉뚱함을, 어른들은 흔히들 창의적이라고 표현한다. 창의성을 무엇으로 정의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그저 극도로 엉뚱한 것이 창의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합의하는 창의성의 정의는 '가치'가 중심이다. 가치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나에게는 매우 창의적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별로 창의적이지 않거나, 전혀 창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의성이란 대중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했는가로 측정된다.

"천재 크리에이터는 그 사람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얼마나 전향적으로 생각하는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드러내는 단순한 징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p103.
대중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천재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예술 작품이든 전자 제품이든 상관 없다. 대중이 그 상품으로부터 가치를 얻고 돈으로 보상하면, 그것이 곧 그 상품을 만들어낸 사람의 창의성에 대한 증거이다. 따라서 '천재 크리에이터'란 사회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

크리에이티브 커브: 대혼란
앨런 가넷, 2018,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RHK.


"친숙성과 색다름을 둘 다 추구하는 성향은 선호도와 친숙성에서 종형 곡선의 관계를 보였다."
-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p130.
크리에이티브 커브. 친숙성과 색다름의 적절한 조화가 상품에 대한 선호도를 극대화시킨다는 주장을 대표하는 개념인 이 곡선은, 나에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접근 반사'와 '회피 반사'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개인의 선호도-친숙성 관계를 나타내는 커브를 설명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대중 레벨의 커브로의 비약이 일어난다. 이 때의 근거는 '에드 하디'라는 단어의 검색량-시간 관계가 개인 레벨의 커브와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 뿐이다. 결과적으로 형태가 유사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중 레벨의 커브는 가로세로 축의 의미도, 패턴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도, 심지어 패턴이 나타내는 대상도 개인 레벨의 커브와는 다른 것 같다. 이런 모호한 개념을 들고 대중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타이밍을 향상'시킨다든지, 크리에이티브 커브를 따라 '움직이게 한다'는 식의 표현을 하니 이 '크리에이티브 커브'라는 모델을 활용해서 뭘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브는 핵심이 아니다.


'페이크다 이 ㅂㅅ아!'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말이다. 책을 처음 읽고, 밑줄 그으면서 다시 읽고, 혼란스러운 머리 속에서 서평을 짜내느라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면서도 왜 이걸 몰랐을까.
제목도 'THE Creative Curve'이고, 1부는 크리에이티브 커브에 대한 설명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크리에이티브 커브는 이 책의 핵심 주제가 아니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단순히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낼 확률을 높이는 행동 전략'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브는 단지 이 전략이 추구하는 기본 개념 - 친숙성과 색다름의 적절한 조화 - 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실제로 2부 '돈이 되는 크리에이티브의 법칙(The Law of the Creative Curve)'에서 설명하는 1) 소비, 2) 모방, 3) 창의적 공동체, 4) 반복 전략 중 크리에이티브 커브 없이는 설명 불가능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반복해서 언급할 가치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결코 통찰력을 가질 수 없다.""
-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p195.
<제 1법칙: 소비>는 어떤 영역에서 대중이 받아들이는 친밀함과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색다름 사이의 균형 감각을, 해당 영역의 수많은 아이디어를 소비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아하 순간'은 무의식의 작용에 의해 의식을 통해 학습된 내용들이 서로 연결되는 현상이다. 연결될 재료가 없으면 연결이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끊임없이 재료를 모으는 작업 즉 소비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첫걸음이다.

"제약은 창작가에게 친숙성을 보장하는 틀을 제공해주는 한편, 조금 다르고 신선한 것을 10, 20, 30%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를 함께 마련해 놓는다."
-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p221.
<제 2법칙: 모방>은 어떤 영역에서 대중이 친숙함을 느끼는 어떤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틀이 된다는 내용이다. 틀이 단단해야 어떤 재료로든 원하는 모양을 잘 만들어낼 수 있듯이, 대중이 친숙성을 강하게 느끼는 양식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월을 거쳐 검증된 양식을 따르는 것이 모방이다. 모방을 통해 창작자는 자신의 창의성을 대중에게 친숙한 양식을 통해 제공하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다.

"그래서 창작가는 끊임없이 측정하고 평가해야 한다."
-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p290.
<제 4법칙: 반복>은 1) 개념화, 2) 압축, 3) 큐레이션, 4) 피드백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소비'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학습하고, 이로부터 최대한의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이후 '제약'을 통해 친숙성이 낮은 아이디어를 배제함으써 아이디어의 수를 줄인다. 주변과 대중의 평가를 통해 아이디어를 보완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상품화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이 어떤 아이디어를 얼마나 친숙하게 받아들이는지, 한편으로 얼마나 새로움을 느끼는지이다. 이를 측정하는 것을 '데이터'라고 한다. 측정을 위해서는 결국 상품을 대중에게 노출시켜야 한다. 한 번의 상품화-피드백 루프가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질수록 더 많은 시도와 보완을 통해 더 빠르게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p230.
<제 3법칙: 창의적 공동체>는 1,2,4법칙의 내용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크리에이터를 둘러싼 창의적 공동체는 1) 마스터 티처, 2) 상충하는 협력자, 3) 모던 뮤즈, 4) 유명 프로모터로 이루어진다. 마스터 티처는 어떤 분야의 제약에 대해 알려주고, 적절한 피드백으로 의식적 노력을 통한 학습 과정을 돕는다. 상충하는 협력자는 다른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만들고 정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모던 뮤즈는 지속적인 반복을 위한 포부와 동기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유명 프로모터는 그들이 갖고 있는 권위를 활용해 창의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 네 요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거나, 이 속에 나를 두는 것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매우 강력한 전략이다.

우리는 모두 크리에이터다 

'크리에이티브 커브'라는 페이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의성의 정의와 창의적 공동체.
창의성이란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을 갖고 있는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창의성을 인정받는 대가로 돈을 번다. 특히 팀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본인의 팀에 마스터 티처, 상충하는 협력자, 모던 뮤즈, 유명 프로모터가 모여 있는지, 본인과 팀이 수행하는 일의 관점에서 점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하면 대체로는 한숨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인은 팀원들에게 마스터 티처, 상충하는 협력자, 모던 뮤즈, 혹은 유명 프로모터인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역할만 수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역할들을 수행한다고 해서 크리에이터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어떤 위치에 있든 어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팀 전체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이는 곧 창의성을 발휘한 증거가 된다. 우리는 모두 크리에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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