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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읽고 글 쓰기 #3 - 김성일, "마법의 연금 굴리기"

'노후 준비를 한다면서 돈 묶이는 걸 왜 그렇게 피했을까?'
노후, 혹은 은퇴 대비 자금. 인생에서 가장 긴 호흡으로 마련해야 할 돈이고 너무나 중요한 돈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와 은퇴를 꿈꾼다. 명확하게 입에 올리든 그렇지 않든 이게 이건데, 장기 목적 자금을 형성하겠다면서 이상하게 5년 혹은 10년 간 유지가 필요한 형태의 상품에는 부정적이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ISA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5년 유지라는 조건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대출 우대금리를 위해 최소 금액으로 계좌를 만들어둔 것 외에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회사에서 자동으로 들어준 개인연금도, 납입액을 연말정산 세액공제 한도액 근방으로 늘려 놓은 게 내가 은퇴 자금 형성에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개인형 퇴직연금(IRP)? 그런 게 있고 재직 상태에서도 가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알았더라도 당장 나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는 돈을 묶기 싫어 계좌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성일의 <마법의 연금굴리기>를 본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노후 자금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자금 흐름이 묶이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큰 장점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ETF를 활용한 자산배분 전략도 - 전작인 <마법의 돈 굴리기>도 이래서 읽었다 - 일반 주식계좌와 거의 동일하게 할 수 있다. 자금이 묶이는 장점이 여기서도 다시 드러나는데, 주식 비중이 있는 투자를 하다보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변동성을 감내할 수 있는 환경을 설정해준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세법은 이런 개인연금 불입액에 대해서 무려 '세액 공제'로 십수%의 수익률을 확정해준다! 오 마이 갓. 이건 빚을 내서라도 넣어야 해.

물론 어느 정도 주택 구입이나 생활 자금 등에 안정적인 계획이 서 있는 경우라야 위에 언급한 장점이 장점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급하게 쓸 돈이 없는데 연 수백만원이 묶이는 것이 장점일 수는 없다. 하지만, 연간 4~7백만원 정도는 어떻게든 여유 자금으로 마련할 수 있다면, 이를 노후 자금으로 개인연금에 묻어둠으로써 높은 확정 수익률과 노후 준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는 현금 흐름에 여유가 있고 노후 준비에 관심이 한 톨이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일독을 강하게 권한다. 단점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너무 쉽게 풀어 써주려 한 탓에 그냥 넘기는 페이지 수가 제법 많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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