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두 분 다 살아 계시는 너희는 절대 몰라."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재테크에 대한 얘기에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한 친구가 자기는 너무 정신없이 일만 해서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돈을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 '정답'을 알려주면, 아니 아예 누가 알아서 돈을 관리해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누가 봐도 헛된 기대라 거기 있던 모두가 저마다의 생각을 꺼내 놓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흘러 흘러 그 친구가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 하고 싶은 마음에 지출이 통제가 안 되는 상황과, 그 이면에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 그리고 그 간병 과정에서 고생하신 어머니께 더 잘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들어보니 능력 있는 프리랜서 통·번역사인 그 친구가 번아웃을 염려해야 될 정도로 일해서 번 돈의 상당 부분이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 현재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소비에 쓰이고 있는 상황이었고, 본인도 그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이 된 다른 친구들이 그 부담을 어머니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먼저가 아니겠냐, 일을 하는 양도 조금은 줄이는 게 어떠냐 등의 의견을 냈는데 거기에 대한 그 친구의 대답이 이 말이었다. 그렇다. 무리가 되더라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어머니께 최대한 잘 해드리고 싶은 친구의 절박함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방법은 우리에게 없었다. 물론 만에 하나 내가 그 친구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 친구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친구의 대답이 논리적으로 적절치는 않았지만, 어찌 됐건 이것 한 가지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어머니도 언젠가 떠나실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떠나신 다음 느끼는 후회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하고 있었다. "애통 과정에는 늘 후회가 따른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