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다보면 대체로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헤어진다. 내 길지 않은 삶과 넓지 않은 관찰, 상식을 근거한 논리만으로도 이를 성급한 일반화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극단적인 삶을 살지 않는 한, 부모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기로 선택한 배우자를 사랑하고, 나를 닮은 아이를 사랑하고, 혹은 반려 동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하나씩 떠나보낸다. 그들이 떠나가든, 내가 떠나든.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기술을 끊임없이 습득한다. 하지만 그 대상은 대체로 아직 죽음이 구체화되지 않은 사람들이며, 그 주체인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사람과의, 혹은 내가 그런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의 대인 관계에 대해서는 자연스러운 경험을 통해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이런 관계에서의 실수는 만회할 기회조차 없으니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시기에 서로를 대하는 방법을 익히지 않으면 안되는데, 삶이 죽음에의 과정인 이상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란 피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다음이 없는 단 한번의 기회에서 사랑한만큼 더 많이 남게 되는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죽음의 과정과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죽어가고 싶은지 계속 궁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랜 경력의 호스피스 간호사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기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도적이고 편안한 죽음의 방법과, 그 주위 사람들이 그들을 적절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준다. 약 10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그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좋은 죽음'의 과정과 '호스피스'의 도움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길지 않은 시간 뒤에 확정된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호스피스의 도움을 수용하는지, 적극적인 통증 완화를 통해 삶의 마지막 기간을 조금 더 온전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주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떤 기준을 갖고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지, 임종 직전과 임종의 순간을 어떻게 알 수 있고 그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임종 후의 애도 기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저자 본인이 상대한 수많은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되어 있어 그 후 현재까지 나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개념에 가장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매개가 되어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특히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은 죽어가는 환자와의 소통,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 부분이었다. 말기 환자의 가장 가까운 가족은 환자의 마지막 여행에 더 깊이 동참하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모두 어느 정도는 여유를 갖는 것을 우선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전문가, 이웃, 친구, 가족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환자의 가족들이 죽어가는 환자를 걱정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환자 또한 본인의 죽음 이후 남겨질 가족들을 걱정하며, 때로는 그 걱정 때문에 죽음을 늦추고(!) 계속 가족 옆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환자가 죄책감이나 걱정에 시달리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도 지나치게 희생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함께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환자들이 흔히 보이는 특징들, 그들의 의사소통 방식들을 잘 이해하고 대응함으로써 환자와 그 가족들 모두 감정적으로 충만한 경험을 공유하고 평화로운 임종을 맞이한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서 나의 죽음 뿐만 아니라 언젠가 맞닥뜨릴 가족 혹은 친구의 죽음도 그처럼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물론 10년이 지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를 앞둔 지금은 그 기대를 충족하는 좋은 죽음이란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임종 과정은 책에 소개된 것처럼 매끄럽고 편안하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당신의 둘째 며느리이자 실질적으로 유일한 며느리인 내 어머니가 곁을 지켜드리는 중에 큰 고통 없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돌봐주시는 사회봉사자 분들과 가족들 모두와 많은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그 아들들 간의 틀어진 관계가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회복되거나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손자인 내가 그 과정의 가까이에 있지 않았으니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도 없었지만, 그 가까이에 있었다면 과연 책에 소개된 조언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을까 하면 그렇지 않다는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보기는커녕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머리에 담아두지도 않았으니 책을 읽을 때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 만으로는 아무 것도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은 바로 이어서 글을 쓸 같은 주제의 다른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그 전에 이 책을 다시 읽고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10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책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충분히 좋은 메시지와 정보가 있었지만 막연히 좋은 느낌만 갖고 그 내용을 기억하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다.
이 책은 2000 명이 넘는 임종환자를 돌본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과학적인 도구를 이용해서 데이터를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죽음과 그 과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전문가라고 할 만한 저자가 본인이 관찰하고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바와 함께 죽어가는 본인 및 그 가족, 친구를 위한 조언을 담았기 때문에, 충분히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도적이고 평안한 '좋은 죽음'의 실제 사례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줄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이 몇 가지는 있는데, 첫 째는 저자 본인이 매우 헌신적인 호스피스 간호사로써 활동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저자의 경험담이 '호스피스'라는 단어 자체를 필요 이상으로 미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일단 나는 그랬다). 다음으로는 마찬가지로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가족과의 사랑을 회복하거나 확인하고 감정적으로 충만하며 평안한, 소위 말하는 '좋은 죽음'의 전형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이 개인의 '좋은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이것도 역시 나는 그랬다). 마지막으로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혹은 나의 죽음을 대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조언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책의 내용에 일관된 흐름이 없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이 특히 아쉬운데,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책을 읽은 다음 전체의 흐름을 머릿속에 정리하기 위해 몇 번이나 다시 들춰봤음에도 정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문해력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내 수준에서는 이 책의 구성과 흐름이 충분히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창한 제목을 뽑아 놓고 제법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았지만, 요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때 생기는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과정 자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고, 이 책은 그러기 위해 충분히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된 책을 이미 완독한 상태라서 하는 얘기인데, 그 책에 비하자면 이 책이 아주 수준 높은 책은 아니다. 두 책 중에 단 한 권만 읽으라고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만약 집에 이 책이 있다면 뽑아 드는 데 망설일 필요는 없을 만큼 충분히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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