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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택시에서 #2 - 자기 소개

시작한지 이틀만에 또 다시 택시를 타게 됐다. 일주일에 하나, 라고 해놨으니 안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게으름을 겨우 억누르고 뭐라도 적어보기로 했지만, 결국 메타인지가 떨어져 30분의 귀가 중에 마무리를 못 하고 다시 나흘이 지나서야 마무리를 한다. 오늘의 주제는 나에 대한 것, 그 중에서도 제법 평범한 자기소개다. 글쓰기 연습 삼기도 괜찮고 처음 블로그를 열었으니 누가 와서 보는지와 무관하게 내 소개 정도는 해도 좋겠지 싶다.

나는 2019년 현재 38세인 직장인 남성이다.
요즘 정치나 경제 뉴스에도 나오는 5G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만큼만 얘기해도 회사 이름까지 공개한 것은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좁은 영역의 일인 게 고민이다.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기술표준 문서를 이해하고, 고객사의 니즈와 경쟁사의 동향, 그리고 우리 소프트웨어 구현팀의 여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낸 다음, 이를 위한 소프트웨어 요구동작 및 사양을 문서화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외 잡다하지만 본업보다 훨씬 많아지기도 하는 일들이 있긴 하다. 차치하고, 아무튼 내가 하는 일을 극도로 내 마음대로 일반화하자면,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다.
위에서 '균형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게 제법 부서 간 이해관계가 엮이는 부분이 있다보니 요지경인 경우가 많다. 해서, 자연스럽게 부서 내, 부서 간 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관심이 많고, 사람을 대하고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특히 메일이나 문서 등 글로 소통할 때 나의 짧은 글솜씨와 상대방의 낮은 문해력이 합쳐져 발생하는 부정적인 시너지를 어떻게든 줄여보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으로 나를 밀어넣고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 공간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이어서 내가 무슨 부끄러운 짓을 하든 흉보는 사람 하나 없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는 누군가 찾아와서 내 부족한 글을 읽고 참을성 있게 뼈를 때려주고 가 주면 스스로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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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몹쓸 공돌이 개그  언젠가 돌아다니던 초코파이 초코 함량 계산식. 답은? 무려 약 31.8%다. 이 정도면 빈츠보다도 높은 함량일지도.. 자고로 무릇 공대생 혹은 공돌이라 하면 '일반인' - 여기서는 비 공대인 -이라면 알 필요도 없는 기호로 범벅이 된 수식을 붙들고 밤을 샌다든지, 거기서부터 파생된 온갖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샌다든지,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들끼리' 머리를 싸메고 수시로 밤을 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밤을 샌다는 건 낮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고 곧 '일반인'들과의 소통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면 시나브로 쌓이는 전공 지식과 함께 '바깥 세상'에 대한 환상 그리고 '일반인'들과의 유머적 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씩 키우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비틀어 탄생한 것이 공대 개그 혹은 공돌이 개그이다. 예를 들어 '외국보다 한국의 초코파이가 초코 함량이 더 높은 이유'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도 훌륭한 공돌이일 가능성이 높은데(힌트는 위 수식을 영어로 바꿔보라는 것이고, 답은 마지막에..), 무릇 공돌이라 하면 이렇게 공돌이를 위한 개그를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소양을 갖추게 되고, 일반인들은 해설이 있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개그까지도 즐기면서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시 일반인들과의 유머적 단절은 더 공고해진다. 이런 거에 웃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 출처: 나무위키 ' 공대개그 ' 페이지. 나 또한 정통한 공돌이로서 - 입사 전까지 같은 건물에 10년을 들락거렸다! - 유사한 과정을 거쳤고, 일요일 밤을 지배하던 주류 개그는 1도 모르지만 각종 공돌이 개그에는 피식거리는 단계에 도달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런 상황에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질량이 없는 물질'만 만날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 날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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