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회사는 평일 야간 근무 후 24시 이후에 퇴근하면 귀가 택시비를 지원해준다. 해서, 최소한 금전적인 부담은 없는 터에, 하는 일이 글 읽고 글 쓰는 것이다보니 다른 사람들 퇴근한 후 조용한 사무실에서 방해 없이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마침 성과를 많이 내야 하는 시기인 것도 있고 해서 체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새벽 1시쯤까지 일을 하고 택시로 귀가한다.
이렇게 귀가하는 택시에서는 어둡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책을 읽거나 읽은 책을 뒤적거리며 서평을 쓰거나 할 마음은 잘 안 들어서 대체로 유튜브로 동영상을 보거나 눈을 감고 음성만 들으면서 약 25~30분 정도 되는 퇴근길에서의 시간을 보내는데, 최근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글 쓰는 기회를 조금 더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떠올라서 즉흥적으로 택시로 퇴근할 때마다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주제들로 되는대로 글을 써서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매번 택시로 귀가할 때마다 글을 하나씩 쓰겠다고 마음먹기에는 내가 그렇게까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목표는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제 곧 2019년도 절반이 지나가는 시점이니 목표대로라면 연말에는 대략 26개의 글이 '잡글' 라벨을 붙이고 있겠지. 그리고 시간제한이 있는 글쓰기니까 아무래도 그 날 쓸 글의 주제와 대략의 흐름 정도는 미리 구상을 해 두었다가 죽 풀어내는 연습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침 미리 주제와 흐름을 생각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으니, 다음 글의 주제로 삼을만한 내용을 이전 글 말미에 적어보는 것도, 해당 내용을 실제로 다음 글에 담지 않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 글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써 볼까 한다. 살면서 글을 통해 자기소개를 할 기회는 별로 없었는데(하긴, 말로도 마찬가지다), 블로그라는 게 일종의 자기소개 채널이라고 봤을 때, 블로그 시작 글과 특정 목적으로 부랴부랴 올린 예전 글들을 제외하면 초기에 적어봐도 좋은 주제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가족 여행을 가면 나는 꼭 어디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깨곤 했다. 그 때마다 조수석의 어머니께서는 좋은 경치는 하나도 못 보고 밥 먹을 때만 일어난다고 핀잔을 주곤 하셨는데, 아무리 깨어 있으려고 해도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난 여지 없이 곯아떨어졌다. 성인이 된 후에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나는 차멀미를 했던 것이었다. 멀미라는 건 눈과 귀 - 정확히는 전정기관 - 에서 감지되는 움직임에 대한 정보 불일치를 뇌가 불편하게 느끼는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얼추 맞을텐데, 차에서 스마트폰을 볼 때 속이 더 메슥거리거나, 운전자는 멀미를 하지 않는 걸 생각해보면 된다. 차멀미를 할 때는 먼 산을 보라거나,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마시라거나 하는 민간요법이 전해지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다 소용 없는 일이다. 달리는 차 창문을 열고 머리 날리게 바람을 맞으면서 볼 것도 없는 먼 산을 아무리 노려보고 있어도, 멀미는 잦아들지 않았다. 조수석에라도 앉을 수 있다면 좀 나았겠지만 조수석에 갈 짬은 전혀 아니었으니 가장 확실히 멀미를 피하는 방법은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는데, 이걸 어느 정도 인지한 다음에는 메슥거림이 느껴질 때는 일부러 눈을 감고 잠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마 이 기전이 몸에 쌓이면서 차만 타면 자는 식으로 몸이 반응한 게 아닐까. ""과학의 속도가 윤리적인 이해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각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표현하느라 애를 먹게 된다." 2004년 하버드 대학교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쓴 글이다." - 유전자 임팩트, p620. 어른이 되면서 멀미 자체에 대한 민감도도 떨어진데다 이제는 어디 갈 때 거의 운전석에 앉기 때문에 멀미에 시달릴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과 기술의 발전을 보고 있으면 가끔 속이 울렁거릴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케빈 데이비스, " 유전자 임팩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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