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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해진 미래에 투자하라는데..

 흔히들 ‘정해진 미래’에 투자하라고들 한다. 무엇이 정해진 미래일까? 내가 앞으로 살아갈 최대 60년이나(100살까지 산다면!), 내 아이가 살아갈 세계까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제력이 유지될 2~30년 정도만 내다보자고 하면 제법 명확한 것 같다. 첫째, 앞으로 2~30년간 기후변화의 방향은 역전되지 않을 것 이다. 둘째, 비슷한 기간에 걸쳐 세계 인구는 더 증가할 것 이다. 셋째, 비슷한 기간에 걸쳐 농업 생산은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할 것 이다. 넷째,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먹어야 하고, 아무리 잘 먹더라도 늙으며, 언젠가는 죽는다. 마지막으로, 인류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칠 것이다. 그렇다면 정해진 미래 속에서의 경제적 수혜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곳은 어디일까? 첫째,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그린 산업 은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나 암, 인구 고령화와 관련된 바이오 및 헬스케어 산업 도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셋째, 세계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에 연관된 농산물 가격과, 농업의 중요성 은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투자의 대상은 '나 자신' 이다. '정해진 미래'라는 것은 방향성을 말하는 것이지 과정에서의 무변동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래는 정해져 있을 지언정 내가 충분한 기간동안 충분한 금액을 투자할 수 없다면 내 투자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건강해야 하고, 다음으로 계속해서 소득을 유지해야, 내가 생각하는 ‘정해진 미래’에 ‘투자’라는 걸 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높은 확률로 건강을 유지하려면, 지금 수면과 식사, 운동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더 높은 확률로 소득을 유지하려면, 지금 업무 내, 외적으로 공부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결국, 뭔가 알아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 만이 유일...

야근이 생산성을 망치는 방식

오랜만에 회사에 갔다가 새벽 1시가 다 되어 퇴근했다. 가뜩이나 사람이 부족한 부서에 일이 몰린 와중에 내가 떠날 것이 예정되어 있어 원래라면 내가 했을 일을 떠안고 있는 친구를 두고 그냥 퇴근할 수가 없었다. 사정은 어찌됐든, 회사에서 택시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누운 게 새벽 1시 반, 아침 영어공부를 해 5시간만 자고 일어난 게 6시 반이다. 아무튼 일어난 직후라고 한 시간 영어공부는 어떻게 했는데, 아이 어린이집 등원시키기 전에 아이 밥먹는 옆에서 쓸데 없이 유튜브 피드를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과 10~20분이었지만, 평소에 바빠서 아이와 시간도 얼마 못 보내는 주제에 금쪽 같은 시간을 버렸구나 싶고, 버린 시간에 할 일 못하면 그 일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고, 시간이 모자라면 체력이 부족하고, 체력이 부족하면 괜한 보상심리에 시간을 쓸 데없이 쓰는 악순환이 뻔히 보여서 재빨리 아이에게 사과하고 핸드폰을 껐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하지 못한다고 변명한다. 정말 그런지는 각자 스스로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일이 아닐까. 시간 관리든 데일리 리포트든 마음 챙김이든, 약간의 문제의식이라도 느껴지면 뭐라도 하나는 시도하는 게 선순환으로 들어가는 좋은 시작이 될 것 같다.

미국 응급실에서 PCR 검사 받기 - 이 악물고 영어공부를 더 해야 하는 이유

출장지랑 큰 상관은 없는 경유 공항에서. (직접 촬영) 4월말에 뜬금포로 미국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일이야 뭐, 늘 그렇듯이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잘 해달라’는 류의 일이라 멋대로 상황 판단하고 해야겠다고 판단한 일들을 멋대로 하면 됐는데, 문제는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모든 입국자에게 요구한 ‘출발 48시간 전에 검사한 PCR 음성결과확인서’였다. 출발 48시간 이내에 검체 체취한 NAAT 기반 검사 결과를 요구한다. (아마도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캡쳐) 미국은 3세 초과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무려 PCR 검사를 해 준다. (월그린 홈페이지에서 캡쳐) 하지만 예상시간(48시간)에 나온다는 보장 없음ㅡ.ㅡ; (월그린 홈페이지에서 캡쳐) 검사는 출발 48시간 이내에 받아야 하는데, 검사 결과는 48시간 이내에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오늘 코 찌르면 내일 아침에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한 우리나라에서나 지킬 수 있는 규정 아닌가? 아무튼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대부분 30시간 즈음해서는 결과가 나온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출발 이틀 전 월그린이라는 약국체인에서 제공하는 드라이브스루 PCR 검사를 받고, 당일 아침까지도 결과 안 나오면 회사에 욕 좀 먹고 비행편을 바꾸지 뭐, 이렇게 편하게 생각했었는데.. 웬 걸, 출발 전날 저녁까지도 결과가 안 나오는 와중에, 먼저 결과 나온 출장자 분들이 ‘너만 못 돌아가면 어쩌냐’며 이런 옵션, 저런 옵션을 찾아주기 시작하니까 당장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역시 사람 마음이라는 건 예측이 불가능하다. 뭐든 마음 굳게 먹는 것으로는 대체로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구글맵에서 캡쳐) 그 와중에 Signature Care Emergency Center라고, 2시간이면 결과가 나온다는 무려 PCR 검사 광고가 ...

삼성의 네트워크 사업이 망하는 날

 4G니 5G니 하면서 모두가 스마트폰을 하나씩은 들고 다니는 오늘에도, 자신의 최신 스마트폰이 정말로 ‘스마트’하기 위해서는 ‘기지국’이라는 무선 연결 네트워크 장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도체와 스마트폰, 티비로 대표되는 삼성전자가 이 장비를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더 많지 않을까. 삼성전자의 네트워크 사업 소개 페이지에서 발췌. 최대한 깔끔한 이미지를 뽑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출처: 삼성전자 홈페이지) 이런 무시무시한 게 필요하다. 맨 위의 그나마 매끈한 게 안테나로, 홈페이지의 제품에 그나마 가까운 것. 이게 우리의 스마폰을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는 인프라다. (출처: 카카오맵 로드뷰) 위의 사진 같은 물건이 필요하다. 전파를 쏴주고, 받아주는 안테나와, 이 입출력을 담당하는 유닛 — 사진에는 딱 여기까지만 있어서, 그나마 깔끔한 것이고, 이거 이상으로 깔끔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 그리고 전파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얼마나 어떻게 주고받을지 관리하는, 일종의 두뇌 역할을 하는 유닛이 존재하고, 이를 또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하여 장비를 관리하고, 가입자 정보를 관리하고, 사용자의 트래픽을 전달하는 등등등… 오만가지 역할을 하는 장비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것이 우리가 스마트폰을 스마트폰답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다. 우리가 집에서 랜선이 꽂힌 PC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때는, 물론 모뎀이라는 게 필요하지만, 이런 장비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물리적인 연결 — 사실 전파도 ‘물리적’이지만, 여기서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리선이나, 광섬유 같은 것만 얘기하자 — 을 통해 인터넷이라는 어떤 관념적인 것에 접속하면, 그걸 실제로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광랜’보다는 ‘LTE-A’가, ‘기가랜’보다는 ‘5G NR’이 그렇게 프로모션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기존의 손에 잡히는 케이블을 통한 연결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인터넷’을 확장시키는 것 자...

사랑을 베풀기 위해 필요한 것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은 소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소위 훌륭한 고전 문학이든, 싸구려 무협지든. ‘이야기’ 자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머니께서 이런저런 동화를 읽으시는 걸 녹화해둔 카세트 테이프다. 여섯 살 즈음의 기억이어서 형님한테 물어보니 산업의 역군으로 사우디에 나가 계시던 아버지께 보내는 음성편지 개념으로 내가 네 살 즈음 시작해서 힘들이지 않고 동화책을 반복해서 읽어주는 수단으로 변화한 모양인데, 내용도 제목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카세트라는 걸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제법 좋아했었나보다 싶게 거의 3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읽기’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던 건 아마도 초등학교 때였나, 부엌과 화장실을 가르는 벽면에 세워진 책장 가득 꽂혀 있던 수많은 책 중에 세계 위인전, 공상과학소설, 추리소설의 전집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제일 쉬운 위인전부터 — 실질적으로 픽션에 가까운 — 공상과학소설, 그리고 조금 더 어려운 추리소설 전집을 읽어나가면서, 소설의 전개를 참을성 있게 읽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며 극적인 마무리로 이어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그 당시 동네에 많았던 ‘도서대여점’이라는 곳을 통해 무협지라는 장르에 탐닉했더랬다. 나름 3권짜리 장편소설을 하루이틀 밤새 다 읽고 다음 책을 빌리고 하느라 용돈 부족에 허덕였는데, 그 때 읽은 책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신무협’이라는 장르의 초기작으로 분류되는, 거의 신적 존재로 성장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미녀들로 가득한, 약간 B급 작품이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제 깐에 조금 더 문학성을 따졌는데, 결국 다시 무협지와 — 이 때 김용의 작품들이나, 국내 신무협 작가들 중에서도 괜찮은 작가들 작품을 따져가면서 읽었더랬다 — 조금 더 장르를 넓혀서 판타지 소설들이 내 주요 관심사였다. 여기에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유레카 모먼트는 없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모먼트 (from Wikipedia) 유레카 모먼트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철학자라고 해야겠지?) 아르키메데스가 왕으로부터 순금으로 만들었다는 왕관의 순도 증명 방법을 고민하다가 목욕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면서 답을 깨달으면서 외쳤다는 유명한 말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크든 작든 이런 순간을 겪기 때문에 더더욱 직관적으로 잘 와닿는 표현이고, 그만큼 대중적으로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은 — 이 주장을 입증할 시간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 표현이기도 하다. 핵심은 ‘고민하다가’이다, ‘깨달으면서’가 아니라.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신경회로의 연결이 변화하는 — 형성되거나, 강화되거나, 쇠퇴하는 — 과정이다. 우리가 어느 순간 이전에 몰랐다고 생각했던 것을 깨닫는 경험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연결되는 경험이다. 이야기 속의 아르키메데스는 통에 가득찬 목욕물에 몸을 담그기 이전에 이미 부피와 질량에 대해 알고 있었고, 물질마다 이 비율이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단지 순금 왕관의 순도를 측정하는 문제에 있어 왕관과 동일 질량의 순금이 밀어내는 물의 양을 비교하는 비파괴적 검사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자신의 몸이 밀어내는 물의 양을 보면서 원래 알고 있던 지식들이 연결되며 오래 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는 확신을 느꼈을 때 아르키메데스가 얼마나 짜릿했을까. 왕이 의뢰한 것이라 하니, 어쩌면 이 해답에 그의 안녕이 달려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발가벗은 채로 뛰쳐나갈만하지 않을까ㅎㅎ). 그리고 그가 찾아낸 방법으로 왕관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훈훈한 이야기 뒤에 왕관을 만든 장인의 안녕이 위태로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지만, 여기까지는 나가지 말자. 아무튼 이게 혁신의 아이콘인 잡스가 ‘커넥팅 닷’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 것이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연결할 점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대중적으로 간과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 중에 첫째로 태어난 사람 손들어 보세요.” <EBS 하버드특강 ‘정의’ 영상에서 캡쳐> 기억에, 언젠가 마이클 샌댈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어디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EBS에서 ‘하버드 특강—정의’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제작해줘서 이걸 보고 책도 사 보고 했었는데, 그 중에 ‘능력주의’에 대한 수업 중 한 장면이 계속 머리에 남아있었다. 어떤 학생이 ‘하버드’라는 졸업후 소득 기대값이 매우 높은—이걸 명문대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누리는 기회의 어느 정도가 그 학생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 중 샌댈 교수가 “이 중에 첫째로 태어난 사람 손들어 보세요.” 라고 했다. 결과는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느낌상 과반을 훌쩍 넘어선다. 물론 어딘가의 기사에서는 어떤 하버드 강의—이거 아니었을까— 에서 첫쨰가 80%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고, 또다른 기사에서는 입학생 설문 결과 외동을 포함한 첫째의 비율은 55%로 조사됐다는 얘기도 있다. 하버드에 입학하는 인구집단별 가구당 출산율 등을 따져보면 저 체감적 비율이 정당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본인의 ‘능력’을 따지는데 있어서도 출생순서와 같이 전적으로 ‘비자의적’인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한 덕분에 하버드 입학이라는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마치 첫째로 태어난 것이 노력하고 정진하는 능력에도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앤서니 워너, “비만 백서”, 브론스테인, 2022.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의’라는 관념은 단순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는 문제는 사회가 복잡한만큼 한없이 복잡하다. 마찬가지로 ‘비만’이라는 관념은 단순하지만 개인과 사회가 ‘비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우리의 몸 ...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는 착각

  예를 들면 이런 것. <링크의 한겨레 기사에서 발췌(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802674.html )> ‘정경 분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속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국가에서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특정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정책 운영을 차단하는 ‘정교 분리’라는 표현을 경제에 적용한 것일텐데, 북한이나 일본 등과의 정치적 갈등과 별개로 경제적 협력은 지속적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이나, 혹은 ‘정경 유착’이라고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쌓음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문제의 반대급부로 언급되는 그런 개념인 듯 하다. 이런 개념을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은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 반대급부로 이를 분리하자는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을까. 미리 얘기해두지만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특히 어떤 정치 권력이 특정 경제주체와 결탁하여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정의롭지도 않고, 혹은 누군가 호도하듯이 전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내 관점이다. 재커리 D. 카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로크미디어, 2022년. 하지만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에서 당위성을 느끼는 것만큼 이 둘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는 것은 명확히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했다. 통화 안정의 진정한 원천은 금을 교환 매체로 선택한 정치권력의 공적 정당성에 있었다. 정치권력 없이 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p291. 정의로운 통화 정책을 위해 ‘금본위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둥, 이런 주장이 한 번씩 보인다. 애초에 금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기반한 화폐 발행이야말로 정부가 마음대로 화폐를 발행하여 화폐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실물자산을 갖지 못한 ‘서민’들의 부를 강탈하거나, 고소득층 혹은 자본가...

나에게 확신을 '달라'는 말

  나에게 확신을 줘. 10년쯤 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를 하던 중에 들었던 말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 속 왕자님이 바로 나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분명히 다른 무언가로 마음 상하는 게 있었던 것이었을텐데, 당시의 나는 곧이 곧대로 '확신을 얻는다'는 말에 꽂혀서 '결혼은 상대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지 상대에게 확신을 당하는 게 아니다'는 취지의 입바른 헛소리를 지껄였더랬다. 감사하게도 맥락적으로 헛소리인 것보다 입바른 소리긴 하다는 데 집중해준 아내 덕분에 지금까지 그럭저럭 괜찮게 서로 의지해가면서 살아오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에 아찔한 기분이 든다. 피트 데이비스, " 전념 ", 상상스퀘어, 2022. 이러한 예는 끝도 없이 많지만, 이쯤이면 이미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유대는 느슨해졌고, 신뢰는 얕아졌으며, '선택지 열어두기'가 이 시대의 모토가 됐다. <전념>, p83. 그건 그렇고, 왜 이제와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냐면,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무한 탐색 모드'로 정의하는 문화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의 '전념(Dedicated)'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이 책은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의 장점이 이제는 보다 단점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자발적 헌신을 통해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모의 신분에 종속된다거나, 가업을 이어야만 한다거나, 결혼의 상대를 부모가 골라준다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가 생기면 낳아서 길러야 한다거나, 다양한 모습의 비자발적 헌신과 그에 따른 불행은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고 사회적으로 인정되면서 줄어들었다. 하지만 선택지 열어두기의 문화가 지배적인 문...

친환경 발전과 전기차의 시대에 전봇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풍력 터빈과 태양광 패널 (출처: Pixabay) '에너지'의 정의 (출처: 위키피디아)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간단 명료하면서도 모든 것에 걸쳐 있는 정의다. 기후 변화라는 인류 스케일의 위기를 맞아 기존의 화석 에너지에서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앞으로 2~30년이 왜 격변의 시기가 될 것인지도, 이 정의 하나만 곱씹어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이므로, 인류가 고도의 문명을 건설하고 항성 간 여행이라는 꿈 같은 일을 해내든, 내가 단지 방 구석에 앉아서 숨만 쉬든 이 '에너지'라는 것이 필요 하다. 무한동력을 개발했다는 주장이 왜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인지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의 몸이 에너지를 섭취하는 경로인 음식의 생산이라는 문제 또한 크고 복잡하고 머리 아픈 문제지만, 여기서는 우리의 문명을 지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큰 스케일의 에너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아주 거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은 지구가 속한 계의 주인인 태양이 제공하는 에너지에 의해 일어난다. 우리의 문명도 마찬가지인데,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주요 에너지원이었던 화석연료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대의 동식물이든, 이 화석연료의 주요 대체 에너지로 언급되는 태양광 혹은 풍력이든 결국 태양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어떻게 우리가 사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그리고 화석연료에서 태양광 혹은 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핵심에는 '전기'라는 형태의 '힘' 이 존재한다. 그레천 바크, " 그리드 ", 동아시아, 2021. 그레천 바크의 <그리드>는 우리의 삶 그 자체를 떠받치고 있는 전력망 자체를 '그리드'라는 거대한 기술/법률/문화/경제적 기계로 개념화하여 그 특성과 한계, 그리고 에너지 전환기를 맞이한 도전 과제와 발전 ...

시스템이 개선된다는 것

요런 북마크를 넣을 줄 몰라서, 캡쳐된 이미지에 기사 링크 검ㅡ.ㅡ; 삼성에서 요런 인사제도 개편안을 내놨다고, 기사에 난 걸, 지인에게 카톡으로 받아서, 그제서야 알았다. 왜 이 놈의 회사는 큰 소식은 죄다 이렇게만 받는지... 아무튼 읽어보니 큰 변화이면서, 내가 생각했던 방향성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개편안이 언급되고 있어서 감상이랄까, 소회 정도를 끄적여보려고 한다. 요지는 업적에 대한 보상과 능력에 대한 보상을 분리 하는 것이다. 당해의 성과에 대해서는 연봉 인상률로, 누적된 능력의 보상에 대해서는 승격으로 보상하는 개념인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성과란 능력과 기회와 운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의 능력이라는 요소는 성과를 달성할 확률을 높이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그마저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이 연결고리조차 끊어지게 된다. 반면 회사의 존재 목적은 사업을 영위하여 돈을 버는 것이고, 당연히 어떤 금전적 보상은 회사가 벌어 들인 이익의 범위 내에서, 이익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게 성과에 금전적 보상이 차등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당위인 것인데, 문제는 이런 보상체계만으로는 성과를 달성할 확률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라는 요소를 강화시킬 유인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직원의 연봉이 아니라 능력이 커져야 성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이므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몇 번 기회에서 소외되거나 운이 없어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성과를 인정 받지 못하면 '어차피 안 되는' 상황으로 접어들면? 그 사람은 외적 동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고 이 상태에서 내적 동기를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게다가 이건 제법 민감할 수 있는 얘기긴 한데, 고용이 유연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만큼 사업에 고정적으로 부담을 주는 요소는 없기 때문에, 회사는 망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건비의 상승을 최소화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제한적인 총 추가 연봉인상율을 나눠주는 구조로 성과 ...

누군가에게는 시궁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닌 이유

"***님은 여기 남아서 더 많은 역할을 해 주시는 게 조직에 더 크게 기여하는 선택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기대도 안 하던 해외연구소 주재원 기회가 있어서, 고심 끝에, 그리고 아내와 상의 끝에 도전해보기로 했었다. 아내의 커리어 문제와 아이의 교육 문제, 그리고 해당 연구소 조직과의 협업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나에게는 당연하고, 조직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마음을 굳힌 것인데, 이 기회를 나에게 줄 수 있었던 내 부서장은 나에게 이 기회를 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어느 누구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상대방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 권력의 원리, p26. 위의 사례에서 해외연구소 주재원의 발탁 기회는 나에게 매우 가치 있는 자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으레 주재원 생활을 할 때 주어지는 경제적인 혜택이 상당히 크기도 했거니와,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가 하기 마련인 아이의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이민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나은 솔루션을 제공해준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한국과 시차가 크지 않은 곳이라 아내가 지금의 직장을 유지하면서 원격 근무를 할 수 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은 지역이었고, 40대라는 인생의 전성기에 커리어의 스펙트럼 이동을 극히 낮은 기회 비용으로 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조직이 그 연구소와의 협업 과정에서 낮은 효율을 극복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재원에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조직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주재원 생활이 영원하지도 않고, 나의 향후 10년 목표 중 임금에 관련된 첫 번째는 이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이었던 터라, 지난 10년간 지금의 조직에서 쌓아 온 커리어를 완전히 훼손시키는 선택을 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이는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될만한 ...

비전을 쥐어짜는 힘

'마른 걸레 쥐어짜듯 비전이라는 걸 쥐어짜내야겠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프라나브 미스트리. 이 아저씨랑 일해볼 뻔 했더랬다.. (출처: 위키피디아) 지금의 조직에 강한 문제의식만 느끼던 시절에, 결국 남게 되더라도 이직이 허황된 꿈인지 선택 가능한 옵션인지 가늠해보겠다고 결심한 어느 해의 일이었다. 어쩌다보니 TED에서나 보던 창의력 넘칠 것 같은 아저씨가 이끄는 팀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 덜컥 지원을 했는데, 무려 본인과 면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내가 했던 질문 중 하나가, '당신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한국 사무실과의 소통의 효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 상태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겠는가?' 였다. 이 문제는 당시 해외연구소와 협업 과정에서도 심각하게 느끼던 문제고, 지금의 코로나 시국에서 활성화된 재택근무 시에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문제인데, 당시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 '비전' 이었다. 요컨대 역량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면 협업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나를 지배하던 문제의식은 '관리의 부재'였던 터라 '아, 이 사람도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흘려넘겼더랬다. 아마도 그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탓으로 그가 말한 '비전이 이끄는 협업'을 경험해볼 기회는 없었고, 또 그 가치에 공감하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 다시 그 때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책을 만났다. 마이클 하얏트, " 모두를 움직이는 힘 ", 로크미디어, 2021. "지도자는 비전을 제시하지만 관리자는 비전을 실행한다." — 모두를 움직이는 힘, p19. '지도자'라, 정치인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보니 거부감이 살짝 들긴 하지만 그냥 '리더'보다는 좋은 번역인 것...

'평범하게 행복하기'가 사실은 쉽지 않은 이유

내 생각에 행복이란.. (출처: Pixabay ) 주언규, 신영준, " 인생은 실전이다 ", 상상스퀘어, 2021. < 인생은 실전이다 >를 읽고, 참 좋은 책이긴 한데 80편짜리 에세이 모음집이다보니 나는 뭘 갖고 글을 써보나 고민을 하다가, '평범한 행복' 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나는대로 써 보기로 했다. 아마도 취업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XX 지원자께서는 꿈이 무엇인가요?"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아봤을 것이다(이것도 트렌드를 따라서 요즘에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런 질문을 처음 받으면, 혹은 받을 거라고 처음 알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당황하거나 속으로는 살짝 짜증이 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신이 나서 자신의 꿈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는 걸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요구받을 때, 마치 꾼 적도 없는 돈 갚으라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될 테니까. 이런 질문이라는 건 마치 '누구나 크고 가슴뛰는 꿈을 하나 둘 정도는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 아냐?'라는 태도의 발현인데, 정작 그 질문을 하는 면접관 본인은 이런 꿈이 있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게다가 사실 회사라는 게 직원 꿈 이뤄주자고 존재하는 곳도 아닌데 구인의 과정에 이 질문이 왜 필요한 것인가. 내 경험을 돌이켜보자면, '훌륭한 아버지이자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했다가, '이 회사 다니면서 쉽지 않으실텐데..'로 시작하는 약간의 비웃음 섞인 반응을 샀던 것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개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목표라는 점에서는 내 꿈은 동일하다. 다만 이건 '꿈'이라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꿈이고, 솔직히 꿈이라기에는 조금 막연한 것도 사실이라 내세우는 꿈은 '없는' 상태로 찾고 있는 것...

전문가부터 아이들까지, 모두가 알지만 우리만 모르는 것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21세기의 준비된 인재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여전히 지난 세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아이들을 놀게 하라, p340.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대체로 내 아이가 나보다 나은 미래를 살아가길 원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인이라면 대체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뭘 주면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낙관할 수 있는 것일까? 파시 살베리, 윌리엄 도일, " 아이들을 놀게 하라 ", 호모루덴스, 2021. 여기에는 인지 발달, 사회적-정서적 건강, 신체 건강, 주의력 강화, 기억력 발당, 조망 수용 능력, 협동, 협상, 도와주기, 나누기, 문제 해결, 트라우마 극복, 계획 능력, 의사 결정 기술, 배움의 동기, 친목 쌓기, 학습 준비, 사회적 기술 및 나누고자 하는 태도, 순서 지키기, 자기 절제, 공동 작업 및 친구와 원만한 관계 만들기, 창의력과 다양한 사고(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법 생각해 내기), 건강한 두뇌발달, 정서 안정 및 회복탄력성, 공감 능력, 행복감, 운동능력, 빠른 언어발달 및 읽기, 자기 규제, 아이-부모 간 애착 과학 및 수학 학습, 실행 능력 개선 등이 포함된다.  — 아이들을 놀게 하라, p88. 미래까지 갈 필요도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일하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의 특징을 찾아보자. 내 문제에 공감해주는 사람,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 내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를 정리해주는 사람, 여유가 있는 사람, 온화한 사람, 건강한 사람 정도면 어디에서 만나도 환영할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사람이 내 문제만 잘 해결할 리는 만무하니 다른 사람의 문제도 잘 해결해줄 것이고, 나한테만 좋은 사람일 리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일 것이며, 이런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이고,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지금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나이 40에 버스에서 엉엉 울 뻔한 얘기

"저는 문을 열어젖혔어요. 얼굴에 귀엽게 주근깨가 난 나의 귀여운 열 살짜리 아들이 벨트로 목을 매 2층 침대에 매달려 있더군요. 아이의 눈은 텅 비어 보였고, 입술은 파랗고 아무 표정도 없었어요." 아이들을 놀게 하라, p218. 어느 날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읽다가 거의 울 뻔 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어느 10살짜리 아이가 주에서 주관하는 이해력 평가에서 거푸 낙제점을 받고 '완전히 좌절한' 나머지 한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아이의 어머니를 인터뷰한 내용 일부인데, 미국의 공교육 강화 정책이 표준 시험의 강화와 학업 스트레스의 증가로 이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다루는 중에 나온 아주 극단적인 사례지만, 그 대한민국에서 6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곧바로 '수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금 당장이든 나중이든 아이를 키운다면 아마도 멀게만 느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는, 아마도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말이 이 '표준 시험'의 밑바탕이 되는 철학과 맥이 닿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일관된 잣대로 평가하여 그에 따른 보상을 관리하거나 학급, 학년, 학교, 지역, 나라 단위의 성취도 자체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정량 평가는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무엇을 대상으로 하냐에 따라, 그 대상이 어떤 맥락에 있냐에 따라 평가가 대상을 반영하는 정도가 달라지며, '평가 결과가 곧 대상의 본질'이라는 태도가 평가의 불완전함과 만나면 부조리가 된다. 예를 들어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정량화의 혜택을 가장 온전히, 그리고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은 내가 사용하는 시간이다. 이는 운적인 요소가 개입하는 산출물보다 투입자원 자체를 관리하는 것이고, 측정하는 대상 자체가 1차원의 양적 요소이므로 숫자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배제되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