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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개선된다는 것

요런 북마크를 넣을 줄 몰라서, 캡쳐된 이미지에 기사 링크 검ㅡ.ㅡ; 삼성에서 요런 인사제도 개편안을 내놨다고, 기사에 난 걸, 지인에게 카톡으로 받아서, 그제서야 알았다. 왜 이 놈의 회사는 큰 소식은 죄다 이렇게만 받는지... 아무튼 읽어보니 큰 변화이면서, 내가 생각했던 방향성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개편안이 언급되고 있어서 감상이랄까, 소회 정도를 끄적여보려고 한다. 요지는 업적에 대한 보상과 능력에 대한 보상을 분리 하는 것이다. 당해의 성과에 대해서는 연봉 인상률로, 누적된 능력의 보상에 대해서는 승격으로 보상하는 개념인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성과란 능력과 기회와 운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의 능력이라는 요소는 성과를 달성할 확률을 높이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그마저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이 연결고리조차 끊어지게 된다. 반면 회사의 존재 목적은 사업을 영위하여 돈을 버는 것이고, 당연히 어떤 금전적 보상은 회사가 벌어 들인 이익의 범위 내에서, 이익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게 성과에 금전적 보상이 차등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당위인 것인데, 문제는 이런 보상체계만으로는 성과를 달성할 확률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라는 요소를 강화시킬 유인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직원의 연봉이 아니라 능력이 커져야 성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이므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몇 번 기회에서 소외되거나 운이 없어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성과를 인정 받지 못하면 '어차피 안 되는' 상황으로 접어들면? 그 사람은 외적 동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고 이 상태에서 내적 동기를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게다가 이건 제법 민감할 수 있는 얘기긴 한데, 고용이 유연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만큼 사업에 고정적으로 부담을 주는 요소는 없기 때문에, 회사는 망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건비의 상승을 최소화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제한적인 총 추가 연봉인상율을 나눠주는 구조로 성과

누군가에게는 시궁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닌 이유

"***님은 여기 남아서 더 많은 역할을 해 주시는 게 조직에 더 크게 기여하는 선택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기대도 안 하던 해외연구소 주재원 기회가 있어서, 고심 끝에, 그리고 아내와 상의 끝에 도전해보기로 했었다. 아내의 커리어 문제와 아이의 교육 문제, 그리고 해당 연구소 조직과의 협업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나에게는 당연하고, 조직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마음을 굳힌 것인데, 이 기회를 나에게 줄 수 있었던 내 부서장은 나에게 이 기회를 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어느 누구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상대방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 권력의 원리, p26. 위의 사례에서 해외연구소 주재원의 발탁 기회는 나에게 매우 가치 있는 자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으레 주재원 생활을 할 때 주어지는 경제적인 혜택이 상당히 크기도 했거니와,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가 하기 마련인 아이의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이민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나은 솔루션을 제공해준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한국과 시차가 크지 않은 곳이라 아내가 지금의 직장을 유지하면서 원격 근무를 할 수 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은 지역이었고, 40대라는 인생의 전성기에 커리어의 스펙트럼 이동을 극히 낮은 기회 비용으로 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조직이 그 연구소와의 협업 과정에서 낮은 효율을 극복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재원에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조직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주재원 생활이 영원하지도 않고, 나의 향후 10년 목표 중 임금에 관련된 첫 번째는 이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이었던 터라, 지난 10년간 지금의 조직에서 쌓아 온 커리어를 완전히 훼손시키는 선택을 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이는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될만한

비전을 쥐어짜는 힘

'마른 걸레 쥐어짜듯 비전이라는 걸 쥐어짜내야겠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프라나브 미스트리. 이 아저씨랑 일해볼 뻔 했더랬다.. (출처: 위키피디아) 지금의 조직에 강한 문제의식만 느끼던 시절에, 결국 남게 되더라도 이직이 허황된 꿈인지 선택 가능한 옵션인지 가늠해보겠다고 결심한 어느 해의 일이었다. 어쩌다보니 TED에서나 보던 창의력 넘칠 것 같은 아저씨가 이끄는 팀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 덜컥 지원을 했는데, 무려 본인과 면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내가 했던 질문 중 하나가, '당신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한국 사무실과의 소통의 효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 상태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겠는가?' 였다. 이 문제는 당시 해외연구소와 협업 과정에서도 심각하게 느끼던 문제고, 지금의 코로나 시국에서 활성화된 재택근무 시에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문제인데, 당시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 '비전' 이었다. 요컨대 역량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면 협업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는 것이었는데, 당시의 나를 지배하던 문제의식은 '관리의 부재'였던 터라 '아, 이 사람도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흘려넘겼더랬다. 아마도 그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탓으로 그가 말한 '비전이 이끄는 협업'을 경험해볼 기회는 없었고, 또 그 가치에 공감하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 다시 그 때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책을 만났다. 마이클 하얏트, " 모두를 움직이는 힘 ", 로크미디어, 2021. "지도자는 비전을 제시하지만 관리자는 비전을 실행한다." — 모두를 움직이는 힘, p19. '지도자'라, 정치인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보니 거부감이 살짝 들긴 하지만 그냥 '리더'보다는 좋은 번역인 것

'평범하게 행복하기'가 사실은 쉽지 않은 이유

내 생각에 행복이란.. (출처: Pixabay ) 주언규, 신영준, " 인생은 실전이다 ", 상상스퀘어, 2021. < 인생은 실전이다 >를 읽고, 참 좋은 책이긴 한데 80편짜리 에세이 모음집이다보니 나는 뭘 갖고 글을 써보나 고민을 하다가, '평범한 행복' 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나는대로 써 보기로 했다. 아마도 취업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XX 지원자께서는 꿈이 무엇인가요?"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아봤을 것이다(이것도 트렌드를 따라서 요즘에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런 질문을 처음 받으면, 혹은 받을 거라고 처음 알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당황하거나 속으로는 살짝 짜증이 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신이 나서 자신의 꿈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는 걸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요구받을 때, 마치 꾼 적도 없는 돈 갚으라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될 테니까. 이런 질문이라는 건 마치 '누구나 크고 가슴뛰는 꿈을 하나 둘 정도는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 아냐?'라는 태도의 발현인데, 정작 그 질문을 하는 면접관 본인은 이런 꿈이 있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게다가 사실 회사라는 게 직원 꿈 이뤄주자고 존재하는 곳도 아닌데 구인의 과정에 이 질문이 왜 필요한 것인가. 내 경험을 돌이켜보자면, '훌륭한 아버지이자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했다가, '이 회사 다니면서 쉽지 않으실텐데..'로 시작하는 약간의 비웃음 섞인 반응을 샀던 것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개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목표라는 점에서는 내 꿈은 동일하다. 다만 이건 '꿈'이라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꿈이고, 솔직히 꿈이라기에는 조금 막연한 것도 사실이라 내세우는 꿈은 '없는' 상태로 찾고 있는 것

전문가부터 아이들까지, 모두가 알지만 우리만 모르는 것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21세기의 준비된 인재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여전히 지난 세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아이들을 놀게 하라, p340.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대체로 내 아이가 나보다 나은 미래를 살아가길 원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인이라면 대체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뭘 주면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낙관할 수 있는 것일까? 파시 살베리, 윌리엄 도일, " 아이들을 놀게 하라 ", 호모루덴스, 2021. 여기에는 인지 발달, 사회적-정서적 건강, 신체 건강, 주의력 강화, 기억력 발당, 조망 수용 능력, 협동, 협상, 도와주기, 나누기, 문제 해결, 트라우마 극복, 계획 능력, 의사 결정 기술, 배움의 동기, 친목 쌓기, 학습 준비, 사회적 기술 및 나누고자 하는 태도, 순서 지키기, 자기 절제, 공동 작업 및 친구와 원만한 관계 만들기, 창의력과 다양한 사고(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법 생각해 내기), 건강한 두뇌발달, 정서 안정 및 회복탄력성, 공감 능력, 행복감, 운동능력, 빠른 언어발달 및 읽기, 자기 규제, 아이-부모 간 애착 과학 및 수학 학습, 실행 능력 개선 등이 포함된다.  — 아이들을 놀게 하라, p88. 미래까지 갈 필요도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일하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의 특징을 찾아보자. 내 문제에 공감해주는 사람,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 내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를 정리해주는 사람, 여유가 있는 사람, 온화한 사람, 건강한 사람 정도면 어디에서 만나도 환영할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사람이 내 문제만 잘 해결할 리는 만무하니 다른 사람의 문제도 잘 해결해줄 것이고, 나한테만 좋은 사람일 리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일 것이며, 이런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이고,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지금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도 환영

나이 40에 버스에서 엉엉 울 뻔한 얘기

"저는 문을 열어젖혔어요. 얼굴에 귀엽게 주근깨가 난 나의 귀여운 열 살짜리 아들이 벨트로 목을 매 2층 침대에 매달려 있더군요. 아이의 눈은 텅 비어 보였고, 입술은 파랗고 아무 표정도 없었어요." 아이들을 놀게 하라, p218. 어느 날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읽다가 거의 울 뻔 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어느 10살짜리 아이가 주에서 주관하는 이해력 평가에서 거푸 낙제점을 받고 '완전히 좌절한' 나머지 한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아이의 어머니를 인터뷰한 내용 일부인데, 미국의 공교육 강화 정책이 표준 시험의 강화와 학업 스트레스의 증가로 이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다루는 중에 나온 아주 극단적인 사례지만, 그 대한민국에서 6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곧바로 '수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금 당장이든 나중이든 아이를 키운다면 아마도 멀게만 느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는, 아마도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말이 이 '표준 시험'의 밑바탕이 되는 철학과 맥이 닿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일관된 잣대로 평가하여 그에 따른 보상을 관리하거나 학급, 학년, 학교, 지역, 나라 단위의 성취도 자체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정량 평가는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무엇을 대상으로 하냐에 따라, 그 대상이 어떤 맥락에 있냐에 따라 평가가 대상을 반영하는 정도가 달라지며, '평가 결과가 곧 대상의 본질'이라는 태도가 평가의 불완전함과 만나면 부조리가 된다. 예를 들어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정량화의 혜택을 가장 온전히, 그리고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은 내가 사용하는 시간이다. 이는 운적인 요소가 개입하는 산출물보다 투입자원 자체를 관리하는 것이고, 측정하는 대상 자체가 1차원의 양적 요소이므로 숫자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배제되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

가속 팽창하는 혁신 속의 과학과 예술

  가속팽창하는 우주 (from pixabay) "예술에서든, 과학에서든, 혼자서 하든, 팀을 이루어서 하든, 디테일과 씨름하며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은 솟구치는 상상력과 용기 있는 우상파괴적 행동만큼이나 필수불가결한 부분일 것이다." - 혁신의 뿌리, p10. 그렇다. 사실은 이게 전부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을 보면, 수상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예술 쪽의 취미를 함께 갖고 있는 비율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누군가는 이게 직관적이지 않다고 얘기하더라마는, 우리의 뇌에서 어떤 연결이 일어나면서 새로워 보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위해서는 적당한 휴식과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야기인데... 과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까? 혹은 예술적인 취미가 과학적인 성취에 주는 영향은 줄어들지는 않을까? 이언 블래치포드, 틸리 블라이스, " 혁신의 뿌리 ", 브론스테인, 2021. 사실 그럴 것이라는 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야 하는 점인 것 같은데, 거꾸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과 기술, 그에 수반한 산업의 발전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를 안겨줄 것이라는 기대감만을 심어준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은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그 원리를 알지는 못했던 많은 자연현상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설명되는 것에 경탄했고, 그 존재조차 그려보지 못했던 수단을 통해 행동이나 사고의 반경이 확장되는 것에 열광했다. 이 시기의 과학은 모두가 보고 느낀 것을 하나하나 조악하게나마 설명해나가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예술은 과학이 탐구하는 영역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과학이 탐구하는 영역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138억 광년의 반경을 갖는 공간으로 확장됐고, 찰스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생물 다양성의 기본 메커니즘 단계로 깊어졌고, 양자역학으로 인해 우주의 기본입자를 찾아내는

힘센 개돼지들의 역사

  철거되는 로버트 E. 리 동상, 출처: npr.org "세상은 예산이 지배하는 법이다." 아마도 고등학생 시절에 읽은 수많은 판타지 소설 혹은 만화에서였을 것이다. 아직 머리가 굳기 전에 그저 '쿨'해보이면 좋구나 하던 많은 말 중 하나였을텐데, 그 와중에 이제와 돌이켜봐도 진실을 한 자락 품고 있나보다 하는 그런 말이다. 돈이란 뭐냐고 물으면 '가치의 측정 수단'이라고 답을 하겠지만, 측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환의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에 돈은 '가치의 저장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돈 자체를 가치로 혼동하기도 하는 게 아닐까. 어찌됐건, 사람이란 살아가기 위해 일정 수준의 자원을 필요로 한다. 그 자원은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며, 이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므로 누구의 생활도 돈의 지배 — 지배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면 영향 — 을 받는다고 얘기할 수 있다. 수렵채집인이 살아가던 세계에서, 돈은 자연이 만들어냈다. 자신과 가족, 혹은 무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돈 — 자원 — 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채집하고 소비하고 죽는 것이 그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농업혁명 — 유발 하라리가 얘기하는, 농경 — 이 발생하면서 사람은 땅으로부터 돈을 만들어내고 잉여 생산물이라는 형태로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업혁명은 인류를 더 번성하게 해 주었고 잉여 생산물로만 생활함으로써 문화와 과학을 발전시키는 엘리트 계층으 형성함으로써 과학혁명의 발판을 놨지만, 대부분의 농부는 더 고되게 일하고 더 적은 돈을 손에 쥐었으며, 질병에 더 취약해졌다. 이 시기의 돈은 땅이 만들어냈으므로 한정된 땅에서 나오는 돈 역시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한정된 돈의 생산이나 분배에 문제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만약 땅이 무한하다면? 누구든 자신의 땅을 찾아 충분한 돈을 생산해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한정된 땅에서 생산되는 돈이 삶을 영위하기에 부족해지

창백한 푸른 점

" 창백한 푸른 점 ", from wikipedia.org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칼 세이건 언젠가 이 사진과 함께 칼 세이건의 코멘트를 접했을 때, 절로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저 작은 점 위에서 아옹다옹하는 것에 대한 덧없음, 앞으로 한동안도 우리에게 유일한 터전일 곳을 잘 지켜야겠다는 막연한 사명감 같은 것도 함께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더 이상 장수가 축복이 아닌 사회를 어떻게든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에게 저 작은 점은커녕 대한민국조차도 걱정하기에는 너무나 넓고, 나와 내 가족의 미래를 도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히 저 창백한 작은 점의 - 더 정확히는 그 위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 안녕은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토비 오드, " 사피엔스의 멸망 ", 커넥팅, 2021. 그 와중에 '사피엔스의 멸망'이라니, 복잡미묘한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때 걱정했던 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는 한편 이게 과연 내가 걱정할 일인가 하는 양가적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지난 2주가 평소보다 복잡한 문제들로 더 혼란스러웠던 반면 책에서는 인류가 우리 은하를 가득 채우는 미래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주선 속도가 광속의 1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새 터전을 닦는 데 1,000년이 걸리더라도, 지구가 더 이상 거주할 수 없게 되기 훨씬 전인 1억년 안에 은하 전체에 인간이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사피엔스의 멸망, p311. 제목이 '멸망'인데 왠 장밋및 '미래'냐고? 이게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다. '인류'가 - '인간'이 아니라 - 갖고 있는 잠재력이 어마어마하게 큰 만큼 그 잠재력을 없

느리게 인생 읽기

또 이런다. 처음 책을 읽을 때, 연신 '기가 막히네!'를 내뱉으며 온 페이지에 마구 밑줄을 그어대며 읽긴 하는데, 챕터 두 개 연달아 읽기가 어렵고 걸핏하면 핸드폰에 손이 가곤 했다. 입사하고 처음 연달아 일주일을 쉬는데 어디 여행도 안 가서, 에어컨 튼 거실 소파에 혼자 자리잡고 앉아 몇 시간씩 독서에 부을 수 없었다면 다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서평을 쓰려면 책을 훑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감을 잡아가야 되는데, 아니나다를까 온통 딴 생각 뿐이고 생각이 정리가 안 된다. 나름 한 해에 30권 이상씩은 책을 읽고 서평을 쓴지도 몇 년 되어서, 괜히 욕심 부리다 글이 산으로 가는 경우는 있어도 책을 읽는데 이렇게 산만해지는 경우는 없었는데 환장할 노릇이다. 앨자베스 스탠리, "최악을 극복하는 힘", 비잉, 2021. 문제의 책은 이런 예쁜 표지에 < 최악을 극복하는 힘 >이라는 다소 심각한 제목이 붙어 있는데, 원제는 < Widen the Window >, 즉 '창을 넓혀라'이다. 여기서 창이란 '인내의 창'으로, 스트레스를 다루면서 현실에 머물고 최적의 수행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이게 넓을수록 스트레스를 적절히 다루면서 그 에너지를 이용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고, 상황이 종료되고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회복할수록 이 창이 다시 넓어진다. 또 어린 시절 직계가족 외의 지인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적 학대, 스토킹, 수차례의 폭행, 강간을 당했는데 대부분 대학 입학 전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 최악을 극복하는 힘, p29. 스트레스만 얘기하면 별 것 아닌 느낌이지만 이 책은 스트레스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깊게 다루는데, 저자 소개를 보면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엄청난 일을 겪었다! 책에서 저자는 스스로 심각한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온갖 문제들로부터 스스로 회복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비슷한 일을 겪

꿈 없는 사람의 초생산성

 "말은 쉽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만 빼면." - 언젠가 쓴 내 글에서 발췌 내 인생 최고의 자기계발서 중 하나인 제임스 클리어의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을 읽고 썼던 서평의 첫 문장이다. 빈약한 의지로도 몸에 좋지만 입에 쓴 약을 계속해서 삼키는 습관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알려준 정말 좋은 책인데, 전제는 '몸에 어떻게 좋은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먼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고, 다음으로 '작은 성공들로 스스로에게 증명'하면 변화는 쉽게 만들 수 있는데, 작은 성공을 만드는 습관은 책을 보고 따라하면 된다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내가 정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이게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생산성이란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추구할 자유를 주는 것이다." - 초생산성, p50.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 문제에 마주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도대체 뭐지? 지난 2년간 뻘줌함을 무릅쓰고 부서에 새로 합류한 모든 신입인력 및 같이 일하는 부서원들에게 면담을 핑계로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봤었다. 많지는 않지만 대략 10명 가까이 물어본 것 같은데, 대체로 종합해보자면 '특별한 꿈은 없지만 하루하루 만족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즉, 꿈 같은 거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게 보통이라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건 너무나 보편적이고 막연한 욕구라 우리가 생산성이나 자기 계발을 얘기할 때의 어떤 지향점으로서의 '꿈'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특히 진정한 생산성이란 무엇인지를 더욱 파고들어서 효율적이나 효과적이지는 않은 일들을 쳐내려고 하면 더더욱. 마이클 하얏트, "초생산성", 로크미디어, 2021. 마이클 하얏트의 < 초생산성 >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불편한 책이다. 앞뒤 다 떼고 얘기해

나는 특별하다는 착각

 "학력을 불문하고,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가 "나는 빼고!"라고 말한다. 그럼 누구도 남의 말을 쉽게 믿는 맹신자가 아니다." - 대중은 멍청한가?, p399 (옮긴이의 글).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이면서 평범한 존재이다. 아이 때는 아이다운 상상력으로 번개보다 빠르게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하늘을 나는 초능력이 자신에게 어느날 생길 것 같은 망상에 빠져들곤 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그런 능력이 생길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는 것이 보통의 어른이 되는 과정일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적 관찰로부터 이끌어낸 주장이기 때문에 틀릴 수 있지만, 만약 틀린다면 어떤 면에서는 내가 특별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이것 또한 재밌는 얘기가 아닐까. 아무튼,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과신하거나 사업 능력을 과신하는 등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인 것 같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정통한 자기 과신은 역시 '대중은 멍청하다, 나만 빼고'인 것 같다. 위고 메르시에, " 대중은 멍청한가? ", 커넥팅, 2021. 위고 메르시에의 <대중은 멍청한가?>는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이 틀렸다는 것을 조목조목 논증한 책이다. 나만 빼고 모두가 멍청하다는 명제가 거짓이라면, 나도 멍청하거나 모두가 멍청하지 않아야 하는데 다행히 이 책의 입장은 후자 쪽이다. "중세 유럽의 농민들은 기독교 계율에 대한 완강한 저항으로 많은 신부를 절망에 빠뜨렸다." - 대중은 멍청한가?, p9. 이 책에 따르면 대중은 멍청하지 않다. 대중은 어떤 신호에 대해서든 그 타당성을 의심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면밀히 따져서 그 신호를 수용하거나, 무시한다. 정치 선동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중이 그에 설득됐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거나, 그 외에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상업 광고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돈

[책 얘기] 돈의 역사는 반복된다

홍춘욱, " 돈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 포르체, 2021. 씽큐ON 9기의 마지막 책 <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를 얼른 보고, 남은 시간에 얼른 읽은 책이다. 재태크니 뭐니 하려면 돈 공부부터 해야겠구나 싶어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져 본 중에 홍춘욱 박사의 < 환율의 미래 >라는 책이 있었는데, 읽을 때는 제법 머리가 지끈지끈했지만 환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던 아주 좋은 책이었다. 그 이후로 <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 < 7대 이슈로 보는 돈의 역사 2 >를 거쳐 이번에 또 책이 나왔는데(이 두 권만 나온 건 아니다), 정말 작정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그리고 잘 모르겠으면 무작정 따라해볼만한 지침을 담으려고 했구나 싶은 책이다. 아주 조악하게 내용을 요약해보면,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세계 최대의 내수 시장이면서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기와 구조적으로 연동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원화로 소비력을 유지 혹은 증대시키고 싶은 국내의 투자자에게 있어 달러 혹은 달러화 표시 자산의 매력도가 어마어마하게 높다는 것이다. 여러 유튜브 채널이나 저자의 여러 저작들에서 다양하게 다뤘던 내용의 축약본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싶은데, 본인이 어느 정도 금융 지식과 자산이 어느 정도 쌓여 있는 분이라면 참고 삼아 가볍게, 그렇지 않다면 각 잡고 보면서 각자의 중장기 투자전략을 다듬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인 것 같다. 특히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후배들이나, 조금은 지엽적인 얘기지만 지난 수 년의 아파트 가격 폭등에 올라타지 못해 조바심이 있는 친구들 혹은 선배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6살짜리 아이에게 지수 개념을 가르칠 수 있을까?

내 6살짜리 아이에게 얼마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큰 수는 '백천무한'이었다. 아직 하나하나 차근차근 세어 나가면 100 넘게도 셀 수 있긴 하지만, 여전히 68 다음은 뭐냐고 물으면 '13?' 이렇게 아무 숫자나 생각나는대로 얘기하는 게 아이의 수준인데, 백 다음에는 천이 있고, '무한'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걸 어디서 줏어들은 모양인지, '엄청 많다'는 얘기는 모두 다 '백천무한개'로 퉁치던 게 불과 한두달 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녀석이 '조'라는 게 있다던데, 이러면서 또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파온다. '억'이라는 단위가 있는 줄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일단 '만'과 '조' 사이에는 '억'이라는 게 있다고 설명은 해 줬는데, 사실 '만'과 '조' 사이에는 '억' 말고도 '십만', '백만', '천만'도 있고, '십억', '백억', '천억'도 있으며, 조 다음도 같은 모양이로 계속 늘어난다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주면 되지? "또한 우리는 모두 머리 속에 일종의 숫자 선, 즉 마음 속 숫자 축을 갖고 있어, 계산할 때 그 축 위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p208. 나름 고등교육을 받아서, 실수 축과 허수 축, 도메인 전환과 같은 개념을 섭렵한 아빠와 달리 이제 6살인 아이는 실수 축에서 정수, 그 중에서도 자연수 영역의 일부에 대해서 이런 심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단계인데, 여기서 1씩 세기로 가기에는 억이니 조니, 너무나 험난한 영역의 얘기인 것이다. "놀랍게도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2차원 지도상에서 데이터를 나타내는 걸 배울 때 이 영역이 활성화된다. 그 데이터가 공

[책 얘기]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2부. 우리의 뇌가 배우는 법)

 모처럼의 대박 책을 읽고 있어서, 어줍잖은 서평이 아니라 책 자체의 소개 및 조악한 요약을 해두려고 한다. 스타니슬라스 드앤, "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 로크미디어, 2021. 책의 구성을 보면, 1부가 "배움이란 무엇인가?"로, 기계학습이 모방하고자 하는 인간의 학습특성으로 살펴본 배움의 7가지 정의와 우리의 뇌가 기계보다 효율적인 학습 능력을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2부는 "우리의 뇌가 배우는 법"인데,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수준에서 갖고 태어나는 지식과 배움을 통해서 획득하는 지식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특정 영역의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신경가소성이 극대화되는 시기와 교육이 이 시기를 활용하는 방법 등을 설명한다. 3부는 "배움의 네 기둥"인데, 우리 뇌가 지식을 습득하는 메커니즘으로 볼 때 어떠한 학습에 필수적인 네 요소인 주의, 적극적 참여, 에러 피드백, 통합에 대해서 얘기한다. 내 기억 효율을 위해 조악하게나마 요약한  1부 내용은 여기:  [책 얘기]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1부. 배움의 정의) 이번 글은 2부에 대한, 마찬가지로 조잡한 요약이다. 3. 아기들의 보이지 않는 지식 표면적으로 볼 때 새로 태어난 아기는 지식이 전혀 없는, 일종의 백지 상태로 보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생후 몇 개월만 되어도 아기들은 세상이 '일관성 있게 움직이고, 공간을 차지하며,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고, 동시에 서로 다른 두 곳에 있을 수 없는 물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아이들의 직관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거듭 확인되고 있으며, 아기 스스로도 다양한 실험들 - 이라고 쓰고 실수 혹은 사고라고 읽는 - 을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차차 가다듬는다. 아기들은 숫자에 대한 추상적인 직관 또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들려준 음절의 수와 동일한 수의 물체가 담긴 사진에 더 관심을 가지는 실험 결과로 이를

[책 얘기]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1부. 배움의 정의)

모처럼의 대박 책을 읽고 있어서, 어줍잖은 서평이 아니라 책 자체의 소개 및 조악한 요약을 해두려고 한다. 스타니슬라스 드앤, "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 로크미디어, 2021. 책 제목은 <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이고, 부제는 <배움의 모든 것을 해부하다>이다.   "인간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배우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배움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인간의 학습 능력에 관한 모든 것을 철저히 해부하다!" 표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적혀 있는데, 과학이라는 분야에 끝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과한 멘트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마케팅을 생각하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저자는 스타니슬라스 드앤이라는 분인데, 요렇게 생긴 아저씨고 영문 wikipedia에 따르면, 작가이자 인지신경과학자이이자 2017년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이자 INSERM Unit 562 "Cognitive Neroimaging"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Director라고 되어 있다. 뭐 어려운 얘기 할 것 없이, 이 분야에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거고, 이 책 전에도 <숫자 감각>, <뇌의식의 탄생>, <글 읽는 뇌> 등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낸 경력 있는 작가라 글솜씨에 대해서도 충분히 기대할만하다. 중간까지 읽어본 바로도, 흥미진진하게 빠져들게 하는 글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잘 읽히는 글솜씨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책의 구성을 보면, 1부가 "배움이란 무엇인가?"로, 기계학습이 모방하고자 하는 인간의 학습특성으로 살펴본 배움의 7가지 정의와 우리의 뇌가 기계보다 효율적인 학습 능력을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2부는 "우리의 뇌가 배우는 법"인데,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수준에서 갖고 태어나는 지식과 배움을 통해서 획득하는 지식이 어떻게

차멀미가 날 때는 앞을 봐야 한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가족 여행을 가면 나는 꼭 어디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깨곤 했다. 그 때마다 조수석의 어머니께서는 좋은 경치는 하나도 못 보고 밥 먹을 때만 일어난다고 핀잔을 주곤 하셨는데, 아무리 깨어 있으려고 해도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난 여지 없이 곯아떨어졌다. 성인이 된 후에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나는 차멀미를 했던 것이었다. 멀미라는 건 눈과 귀 - 정확히는 전정기관 - 에서 감지되는 움직임에 대한 정보 불일치를 뇌가 불편하게 느끼는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얼추 맞을텐데, 차에서 스마트폰을 볼 때 속이 더 메슥거리거나, 운전자는 멀미를 하지 않는 걸 생각해보면 된다. 차멀미를 할 때는 먼 산을 보라거나,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마시라거나 하는 민간요법이 전해지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다 소용 없는 일이다. 달리는 차 창문을 열고 머리 날리게 바람을 맞으면서 볼 것도 없는 먼 산을 아무리 노려보고 있어도, 멀미는 잦아들지 않았다. 조수석에라도 앉을 수 있다면 좀 나았겠지만 조수석에 갈 짬은 전혀 아니었으니 가장 확실히 멀미를 피하는 방법은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는데, 이걸 어느 정도 인지한 다음에는 메슥거림이 느껴질 때는 일부러 눈을 감고 잠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마 이 기전이 몸에 쌓이면서 차만 타면 자는 식으로 몸이 반응한 게 아닐까.  ""과학의 속도가 윤리적인 이해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각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표현하느라 애를 먹게 된다." 2004년 하버드 대학교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쓴 글이다." - 유전자 임팩트, p620. 어른이 되면서 멀미 자체에 대한 민감도도 떨어진데다 이제는 어디 갈 때 거의 운전석에 앉기 때문에 멀미에 시달릴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과 기술의 발전을 보고 있으면 가끔 속이 울렁거릴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케빈 데이비스, " 유전자 임팩트 &qu

거대한 성공 뒤에 존재하는 것들

그레고리 주커만, "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 로크미디어, 2021.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스티브 코헨, 레이 달리오도 이 수치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p16. 1988년에서 2018년까지 꽉 채운 30년간 연평균 66%의 수익률. 제임스 해리스 사이먼스(이하 짐 사이먼스)가 설립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헤지 펀드 메달리온의 수익률이다. 간단하게 30년간 연평균 66%라는 수익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숫자인지 알아보자면, 1988년에 100만원을 투자했다면 - 물론 펀드의 수익을 이런 식으로 완전히 향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2018년에 대략 4조원이 되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성공을 기반으로 짐 사이먼스는 2021년 5월 기준 $25.2B의 자산을 가져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수학자' 또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억만장자'의 지위를 갖고 있는데, 그레고리 주커만의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는 짐 사이먼스와 그가 세운 회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성공을 거뒀는지를 추적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특별 작가이자 최고 수준의 경제/금융 전문 언론인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풀어내는 특별한 성공의 이야기는, 책 앞/뒤 표지에 기재된 '뉴욕 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파이낸셜 타임스, 맥킨지 선정 올해의 비즈니스 도서 최종 후보' 등의 타이틀이나 다양한 추천사에 걸맞게 흥미진진하며 큰 성공에 가려지기 쉬운 피나는 노력과 운의 요소들을 상세히 알려준다. 500 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얇지만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훌륭한 글솜씨로 몰입감 있게 풀어낸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 여기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의미에서 천재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다 - 돈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로 밤낮 없이 노력했음에도 고통스러운 실